국산 항암제로는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처음으로 받은 렉라자(해외 제품명 라즈클루즈)의 병용 요법이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보다 환자 생명 연장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임상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7일 존슨앤드존슨(J&J)은 먹는 약 렉라자와 주사제 리브리반트를 치료제로 함께 썼을 때 전체생존기간(OS)에서 타그리소보다 앞설 것이라는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OS(Overall Survival)는 환자가 치료를 받은 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측정한 생존 통계 지표다. 이번 임상 3상 연구에 대해 J&J 연구진은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은 타그리소보다 최소 1년 더 생존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래픽=박상훈

◇국산 신약 첫 블록버스터 되나

렉라자는 유한양행이 초기물질을 도입해 개발하고 2018년 J&J에 12억55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에 기술 수출한 비소세포폐암(非小細胞肺癌) 치료제다. 폐암은 암세포가 작으면 소세포폐암(小細胞肺癌), 이보다 크면 비소세포폐암으로 분류한다. 렉라자는 폐암 세포의 성장에 관여하는 성장인자 수용체(EGFR)의 신호 전달을 방해해 암세포 증식과 성장을 억제한다.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를 받아 국산 신약 31호로 기록됐고, 지난해 8월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백신으로 널리 알려진 유럽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타그리소가 사실상 독점했던 치료제 시장에 렉라자-리브리반트가 강력한 경쟁 약물로 떠오른 것이다. 제약 바이오업계에서는 경쟁 약물인 타그리소의 지난해 매출이 약 68억달러(9조9000억원)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렉라자가 국산 신약 최초로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 의약품)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비소세포폐암 완치 도전

렉라자 국내외 임상을 이끌어 ‘렉라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병철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 연세암병원 폐암센터)는 지난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종양학 분야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이전 치료제 대비 전체생존기간을 12개월 이상 늘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J&J가 이번 임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소세포폐암의 완치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조병철 교수

앞서 조 교수는 렉라자 병용요법의 1~3상 임상시험을 주도했고,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각각의 임상시험도 주도했다. 조 교수는 “2016년 임상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한국에서 이런 약을 만들어서 성공하겠냐’는 의심이 학계와 업계 전반에 퍼져 있었다”며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워낙 대세여서 화이자,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슷한 약 개발을 중단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임상을 진행한 원동력은 환자들의 기대였다. 국내에서 연간 3만명 발병하는 폐암 환자의 약 80%는 비소세포폐암 환자다. 이 병은 흡연 경험이 없는 40~50대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 진단법이 없고 특이한 증상도 없어 통상 4기가 되어서야 발견된다. 그만큼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간절한 것이다.

◇“신약 개발이 바이오 주권 지키는 것”

조 교수는 이번 임상 결과에 대해 “전체생존기간이 약 3년인 타그리소보다 최소 1년 이상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뜻”이라며 “임상 참가자들이 사망할 때까지 추적 조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결과값이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1년 이상 생존기간 연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라며 “항암치료에서 5년 이상 치료 없이 생존하는 경우 ‘완치’라고 표현하는데,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으로 전체생존기간이 4년 이상이 되면 일부 환자는 완치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렉라자는 한 달(4주간) 복용 시 500만원 넘게 들지만 보험 급여가 적용돼 환자 부담은 30만원 이하다. 렉라자가 출시되기 전에 환자들이 비급여로 타그리소 치료를 받을 때엔 600만원 이상 부담해야했지만, 경쟁 구도가 형성되며 이제는 함께 급여 적용 대상이 됐다.

조 교수는 “국산 치료제가 있어야 건보 재정이 해외 치료제 비용으로 나가는 것을 줄일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도 약가를 산정할 때 협상력이 강화된다”며 “렉라자의 FDA 승인은 한국이 바이오 주권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체생존기간(Overall Survival)

환자가 치료받기 시작해 사망할 때까지를 뜻한다. 질병이 진행되지 않는 기간을 말하는 ‘무진행 생존율’과 달리, 환자가 치료 시작 이후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