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R2D2가 테이블 위 빈 공간으로 빛을 비추자 레아 공주가 3차원 영상으로 나타났다. 공주는 제다이 기사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1977년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이다.
입체 영상으로 허공에 나타난 레아 공주는 홀로그램 기술을 상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를 현실화하려는 인류의 시도가 40년 이상 이어지는 가운데, 홀로그램을 손으로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데 머물지 않고 위치와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어 홀로그램과 생생한 상호작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입체 영상 쓰다듬고 때릴 수도 있어
스페인 나바라 공립대 연구진은 손으로 조작 가능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고 프랑스의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 ‘HAL’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플렉시볼(FlexiVol)’이라고 이름 붙였다. ‘유연한(Flexible)’과 ‘체적 디스플레이(Volumetric Display)’를 합친 용어다. 빛만 보여주는 기존의 홀로그램과는 달리 사용자가 직접 손을 뻗어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3D(차원) 그래픽 디스플레이다.
기존 홀로그램은 주로 단단한 유리나 플라스틱 재질의 ‘광 디퓨저(빛을 분산시키는 스크린)’를 사용해 손을 화면 안으로 넣을 수 없었다. 이번 연구진은 옷감처럼 말랑한 탄성 재질로 바꿔, 손이 화면 안으로 들어가도 스크린이 휘며 부드럽게 반응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손으로 3D 그래픽을 잡고, 밀고, 돌리는 동작이 실시간으로 구현된다. 마치 허공 속에 떠 있는 물체를 그대로 조작하는 듯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연구진은 자동차 입체 모형의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설계 디자인을 수정하거나, 입체 지형을 손으로 밀고 당기며 편집하는 작업을 시연했다. 화면의 꿀벌을 쓰다듬거나, 입체로 시각화한 컴퓨터 파일들을 집어 정렬하는 등 실제 응용 가능한 사례들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플렉시볼 기술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9%가 화면 속 물체를 손으로 직접 조작하는 방식이 더 직관적이고 재미있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해부학 실습 등 원격 교육과 몰입형 게임, 설계 디자인 등에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예컨대 화면 속 게임 캐릭터를 손으로 때리면 넘어지는 식의 반응이 즉시 가능하고, 쇼핑할 상품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만져볼 수도 있다. 연구진은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드래그하는 데 익숙한 세대에게 이번 기술은 3D 콘텐츠를 직관적으로 다루는 도구로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기술에 대해 “동료 평가를 거친 논문이 아니므로 기술의 완성도 등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진의 설문에서 일부 사용자는 손으로 입체 영상을 조작하는 정밀도가 마우스보다 낮았다고 했다. 연구진은 오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 대회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홀로그램 현실화?
플렉시볼은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이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가상 설계도를 손으로 조작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물론 아직 영화처럼 완전히 공중에 입체 영상만 떠 있는 형태는 아니며, 물리적 스크린을 통과하거나 접촉하는 구조여서 기술적 한계는 존재한다.
앞서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연구진이 레이저로 공중에 컬러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3D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지만, 맨손으로 조작하는 상호작용은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메타,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도 홀로그램 기반의 화상회의를 비롯해 원격 협업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이 기술들은 대부분 HMD(머리 착용 디스플레이)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디스플레이 없는 자유 조작이라는 목표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이제 홀로그램 기술은 ‘보는 것’에서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홀로그램에 촉각 상호작용이 강화되면 ‘아바타(가상 분신)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 세계 속 아바타를 통한 사회적 소통이 한층 편리하고 실감 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