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 김슬아 대표가 9월 29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컬리의 배송 박스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이덕훈 기자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마켓컬리 본사 지하 회의실에 파마기 없는 긴 생머리에 군복색 재킷을 입은 30대 중반의 여성이 들어왔다. 2015년 창업해 ‘샛별’ 배송으로 유통업계에 새벽 배송 붐을 일으킨 마켓컬리 김슬아(37) 대표였다. 창업 5년 만에 연 매출 1조원 달성을 눈앞에 둔 회사 대표라기보다는 일반 사원 같은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민족사관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9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웰즐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후 골드만삭스와 맥킨지 홍콩지사, 베인앤컴퍼니코리아 등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런 그가 2015년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먹는 걸 좋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맞벌이라 매일 장을 볼 수 없었죠. 온라인 주문하면 2~3일 뒤에나 오는데 신선하지가 않아요. 문득 아침에 신선한 식재료를 배달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켓컬리는 오후 11시 전까지 온라인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신선 식품을 현관 앞에 배송해준다. 새벽 배송이 시장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자, 대형 유통 업체들도 앞다퉈 같은 서비스를 내놨다.

마켓컬리 매출 및 누적 회원수

◇창업 5년 만에 매출 1조 전망

마켓컬리 성장은 폭발적이다. 현재 서울·경기 지역 새벽 신선식품 배송 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회사는 추정한다. 회원은 2015년 말 6만명에서 약 100배인 580만명(8월 말)으로 늘었다. 29억원이던 매출은 작년 4289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1조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성장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안 했다. 대신 “고객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게 끝이다” “매출 위에 고객 있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달 중순 추석 대목을 앞두고, 마켓컬리는 자사가 판매하는 우유가 변질됐다는 고객 불만이 접수되자 전액 환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접수된 불만은 80여건, 변질이 의심되는 우유는 4800병이었지만 문제가 된 날을 전후해 판매한 우유까지 포함해 7248병을 환불했다. 판매가는 2950원이었지만, 고객 불편을 고려해 5000원을 보상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신선 식품 특성상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문제가 생기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상해서라도 고객에게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서울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도 자필 사인이 담긴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객의 우려에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전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가 29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열린 상품위원회에서 입점을 앞둔 사과의 향을 맡아보고 있다./이덕훈 기자

◇자나 깨나 ‘고객의 소리’ 확인

김 대표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객의 소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하루만 더 팔아도 하나도 안 버릴 텐데'라는 유혹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면 기대했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럼 마켓컬리에서 물건을 살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마켓컬리는 신선식품에서 화장품, 주방 가전, 생활용품 등으로 판매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 대표는 “시장엔 수천 가지의 상품이 넘쳐나지만, 고객들은 ‘대체 진짜 좋은 건 뭔데’라고 묻는다”며 “'내 돈 주고 살 것만 팔자' ‘제일 싼 거 말고, 제일 좋은 물건은 뭐냐’는 생각으로 판매 상품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를 비롯한 상품 테스터들이 직접 2주간 상품을 직접 써보고,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 인터뷰

김 대표는 “과거 생리대 (유해 물질 검출) 파동 때 고객들이 ‘진짜 좋은 상품을 마켓컬리가 꼼꼼히 알아보고 판매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그 이후 생리대를 다 뜯어보고 검증해서 발굴한 브랜드가 비식품 중 판매량이 가장 많은 상품 중 하나가 됐다”고 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온라인 시장도 커졌다. 마켓컬리의 주문량과 매출도 작년 동기 대비 100%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많은 주문을 받기보다 품질 유지와 배송을 더 잘하자는 생각”이라며 “좋은 품질의 상품과 배송 서비스가 최우선이고, 매출은 마지막”이라고 했다.

마켓컬리는 내년 2월 경기도 김포에 4만여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세운다. 최신식 자동화 기술이 적용된 김포물류센터가 가동되면 주문 처리량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낙 성장하는 기업이다 보니, 시장에서는 “마켓컬리가 곧 팔릴 것이다” “주식시장에 기업 공개를 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팔겠다고 한 적도 없고 사겠다고 온 사람도 없어요.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로서 지분 구조를 바꾸거나 기업을 공개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지금은 그냥 오랫동안 고객에게 신뢰받는 유통 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