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아이 민홍기 대표가 24일 경기도 시흥 본사 3층 연구소 잉크 개발실에서 독자 개발한 필기구용 중성 잉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왔지만, 지금은 일본을 뛰어넘어 필기용 중성 잉크 시장에서 세계 최고가 됐습니다. 그래도 저희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24일 경기 시흥시 유엔아이 본사에서 만난 민홍기(64) 대표는 “앞으로는 휴대폰·TV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안료 부문에서도 국내 시장을 장악한 일본산을 대체해 세계 1위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유엔아이는 민 대표의 부친인 민병일 대표가 1958년 서울 남대문에 설립한 공성염료가 전신이다. 당시엔 일본에서 섬유 날염(捺染)용 고급 안료를 수입·판매하는 도매업 위주의 작은 회사였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섬유 날염용 가공 안료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했고 이 기술력을 토대로 필기용 중성 잉크 개발에 성공,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명문(名門) 장수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활 건 업종 전환

1978년 아버지 회사에 취직한 민 대표는 1988년 서른두 살 때 선친의 유고(有故)로 가업(家業)을 물려받았다.

“처음엔 뭐든 다 잘될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렇지 않았어요. 수입·판매만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산업 현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 대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1993년 글로벌 화학 기업인 일본잉크화학공업(DIC)과 기술 제휴에 성공했다. 연구원과 생산 직원을 일본에 보내 기술을 배워왔고, 결국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섬유 날염용 가공 안료를 국내에서 생산⋅수출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정작 섬유 산업은 쇠퇴기로 접어든 상황이었다. 매출도 급락했다.

민 대표는 과감한 업종 전환을 택했다. 그는 “적은 인원으로 고부가 가치 제품을 만들 방법을 고민하다 1997년 필기용 잉크 제품화에 도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잉크 개발 인력이나 경험, 기술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민 대표는 2002년 연구소를 세웠다. 전문 연구원도 고용해 연구·개발에 나섰다. 초기엔 잉크가 굳어버리거나 흘러버리고, 색이 변하거나 부패해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수십만 번 실험 끝에 결점을 극복할 수 있었고, 2002년 중성 잉크 개발에 성공했다. 2005년엔 0.4㎜ 미세 필기가 가능한 중성 잉크도 개발했다.

수성 잉크는 물에 번지기 쉽고, 유성 잉크는 필기감이 뻑뻑하고 추우면 얼어붙어 잘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 중에 찌꺼기(일명 ‘볼펜똥’)가 많이 나온다. 수성과 유성 잉크의 단점을 모두 개선한 겔(Gel) 형태의 중성 잉크는 끊김이 없고 매끄럽게 쓰여 필기용 잉크의 ‘혁신’으로 불린다.

유엔아이 민홍기 대표가 24일 경기도 시흥 본사 집무실에서 기업 현황과 비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유엔아이는 중국·인도·베트남 등 세계 15국에 수출하고 있다. 2016년엔 ‘1000만불 수출 탑’을 수상했고, 2016년에 이어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하는 ‘글로벌 강소 기업’에도 선정됐다. 지난해엔 2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수출 비율이 83%에 달한다. 직원 43명 중 11명이 연구원이다.

민 대표의 두 딸도 가업을 잇고 있다. 큰딸(37)은 기술 교류를 위해 일본잉크화학공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민 대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만이 살길”이라며 “창업한 지 반세기가 넘었는데 앞으로 50년도 명문 장수 기업으로서 사회·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는 가치 있는 회사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명문 장수기업

중소벤처기업부가 해당 업종에서 45년 이상 사업을 유지한 중소·중견기업 중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성실한 조세 납부, 사회 공헌 등 모범 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2017년부터 19개 기업이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