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 철거,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의 중앙청 첨탑·건물 철거, 2003년 청계고가 철거….

이 같은 역사적 현장에 빠짐없이 등장한 기업이 있다. 다이아몬드 공구를 만드는 이화다이아몬드공업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로 만든 공구는 건설·자동차·항공·반도체·디스플레이·의료·광물 시추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화다이아몬드는 세계 최초로 화강석 절단용 다이아몬드 갱쏘(Gang Saw·채굴한 천연석을 판재로 자를 때 사용하는 공구)를 개발한 기업이다. 다이아몬드 공구 매출 국내 1위, 세계 4위이다. 창업 이래 45년 동안 다이아몬드 공구만 만들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명문(名門) 장수기업’에 선정됐다.

지난 3일 김재희 이화다이아몬드공업 대표가 경기도 오산 본사에서 다이아몬드 공구를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1975년 설립된 이 회사는 다이아몬드 공구 매출 세계 4위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명문 장수기업'에 선정됐다. /장련성 기자

◇아버지는 기술 개발, 딸은 글로벌 경영

“석재(石材) 산업은 사양 산업이라며 투자를 말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죠. 포기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김재희(51) 대표는 “세상에 레드오션(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업종)은 없다. 사양(斜陽) 산업이란 것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MBA 출신이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다가 2002년 아버지가 만든 회사에 합류했고, 2010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엔지니어가 아니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서도 “다양한 산업에 필요한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회사를 맡게 됐다”고 했다.

3일 경기도 오산 이화다이아몬드공업 본사에서 김재희 대표가 세계지도를 보며 수출 현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이화다이아몬드는 미국과 독일을 비롯해 중남미와 유럽, 러시아, 인도, 동남아, 중동 등 90여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912억원이다. 65%가 해외 수출이다. 국내 5곳,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 해외 5곳에 생산 공장이 있고, 해외 판매 법인만 9곳에 달한다.

이화다이아몬드는 김 대표의 부친인 김수광(80) 회장이 1975년 설립했다. 당시 다이아몬드 공구는 외국에서 전량 수입했다. 김 회장은 다이아몬드 공구 불모지인 한국에서 처음 국산화에 성공했고, 1982년 미국에 석재 절단용 톱날을 수출했다. 지금은 강한 절삭력이 필요한 건설 현장부터 머리카락 굵기(0.1㎜)의 1만분의 1인 0.01㎛(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단위의 섬세함을 요구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인공관절 등 첨단산업까지, 산업별 맞춤형 공구를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 고객이 가장 먼저 찾는 글로벌 1등이 목표

‘제조업 기본은 기술’이란 신념을 가진 이화다이아몬드는 1988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매년 매출의 3% 이상(약 9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다. 기업부설연구소와 사업부 연구 전담 부서에는 62명의 석·박사가 포진해 있다. 특허도 300여건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존 시장에 없던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지 않는다면 결국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 등 경쟁 업체와 단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엔지니어들이 힘들게 개발한 신기술도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영업 직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빛을 보기 어렵다”고 했다.

3일 경기도 오산 이화다이아몬드공업 본사에서 김재희 대표가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 받은 자사 제품을 펼쳐 보이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이화다이아몬드는 1995년 5000만불 수출의 탑과 금탑산업훈장 수상, 2005년 7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2008년 국내 다이아몬드 공구업체로는 처음으로 1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11년엔 정부가 세계적 기술 기업을 육성하겠다며 진행하는 ‘월드 클래스 300’에 선정됐고, 2015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이화다이아몬드라면 ‘이화여대랑 관련이 있나, 보석 만드는 회사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며 “이화(二和)는 회사와 사회, 회사와 협력사, 회사와 고객, 회사와 구성원, 엔지니어와 영업 직원 등 서로 다른 두 주체가 화합해 1등 기업이 되자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고객이 가장 먼저 찾는 글로벌 1등 회사가 되고 싶다”며 “공구 판매뿐 아니라 공구 관리 서비스도 제공하는 회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