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한국무역협회 등 7개 경제단체가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과잉 입법”이라며 이 법의 입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경제 5단체인 경총 손경식 회장, 중기중앙회 김기문 회장, 무역협회 김영주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우태희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권태신 부회장과 대한전문건설협회 우태희 부회장, 중견기업연합회 반원익 부회장이 참석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이들 단체장들이 중대재해법 제정 중단을 촉구하는 자리에 직접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법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기문(왼쪽에서 넷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다. 왼쪽부터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김연정 객원기자

7개 단체 대표들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산재사고 예방은 인식 부족, 관리 소홀, 부주의 등 다양한 원인에 맞는 처방이 필요하지만 중대재해법안은 그 책임을 모두 경영자에게 돌리고 사업주 형사처벌,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경영계도 중대재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데는 깊이 공감하지만 예방 활동이 아닌 CEO 처벌,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형량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사망 사고 시 사업주 2년 이상 징역… 하한 없어

산재 사고의 경우 처벌을 크게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이미 올해 초부터 시행 중이다.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중대재해법은 여기서 다시 처벌 수위를 다시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사망사고 등의 경우 산안법에 우선해 적용된다. 7년 이하라는 하한을 없애고 최소 2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법인(회사)에도 1억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되고 영업정지나 허가취소 등 행정 제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 한번 나면 사업주와 기업이 4중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김기문(왼쪽 세번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경제단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중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장총협회 회장,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김연정 객원기자

국내 수십, 수백 곳에 현장을 두고 있는 건설사들이나 중소기업들의 경우 “예전에 사망사고가 나면 현장 책임자만 처벌받았지만 이제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회사의 존폐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전국 150~200여곳에 건설 현장이 있는 대형 건설사의 경우 근로자 개인의 부주의나 지침 미준수로 인한 사고까지 사업주가 책임지라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떨고 있는 중기...”사업주 구속되면 경영은 누가 하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특히 반발하는 것은 중소기업계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855명)의 94.4%(807명)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중기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 단체 16개가 모인 중기단체협의회는 “중기 99%는 오너가 곧 대표인데 사업주가 구속되면 기업을 누가 경영하느냐”며 “대표가 구속되면 오히려 사고 사후 처리와 재발 방지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중기중앙회는 “현재 산업안전보건 관련 의무 조항은 1222개에 달하지만, 별도의 전문 담당 인력을 두기 어려운 영세 중소기업은 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대재해법의 최대 피해자는 663만 중기가 될 것”이라며 “법안이 시행되면 원·하청 구조, 열악한 자금과 인력 사정 등으로 중기 사업주가 범법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