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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쫌아는기자들 1호가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쑥스러움이 덕지덕지한 20대, 30대 젊은이들이 흔한 사진관에 쓱 들어가 찰칵했을 법한 사진. 또 하나는 40대, 50대 중년인데 왜 하나같이 이렇게도 착한 인상인지. 한 명씩 뜯어보면서 나도 저런 활짝 표정을 짓고 싶다고 부러워지는 사진이에요.

김정호, 이해진, 최재영, 강석호(뒷줄 왼쪽부터), 권혁일, 김보경, 김희숙, 오승환(앞줄 왼쪽부터).
권혁일, 김정호, 최재영, 오승환, 김희숙(뒷줄), 김보경, 이해진, 강석호(앞줄).

네이버 창업 8인방의 사진입니다. 위는 창업 초창기, 아래는 네이버 창업 20주년(2019년 6월) 기념 사진입니다. 본래 20년 전과 같은 연출을 하려고 했는데 옷도 제각각이고, 위치도 바뀌었습니다.

네이버는 1999년 6월 2일 ‘네이버컴’이란 사명으로 법인 등록했습니다. 삼성SDS의 사내 벤처 네이버포트가 따로 나와, 스타트업으로 출발했고요.

창업멤버들은 네이버라는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에 제 몫의 땀과 시간을 남기고, 이젠 네이버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커피빈에서 커피를 시키려고 계산대 앞에 서면 베어베터라는 쿠키가 있는데요, 그 회사 대표는 김정호 씨입니다. 베어베터는 명함도 만들고, 편의점도 해요. 이 회사는 발달장애인들을 채용합니다. 채용을 위한 채용을 하진 않습니다.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굴해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몫의 일을 할 수 있게 돕는 회사입니다. 말하자면, 커피빈의 베어베터 쿠키는 정말 맛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만든 쿠키니까, 맛 없어도 사줘야한다, 이런 발상은 1도 없습니다. 착한 기업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라네요. 물론 돈을 벌기 위한 기업은 아닙니다.

오승환 씨는 가회동에서 100여 평의 부지를 사서, ‘어둠 속의 대화’라는 건물을 올렸습니다. 대림건설이 잘 지었죠. 이 건물은 일반인이 완전히 깜깜한 공간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일하는데, 이 공간에선 시각장애인이 어둠 속에서 헤매는 일반인을 도와줍니다. 종로구청에 기부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쫌아는기자들이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여기엔 레스토랑도 있는데 소년원 출신들을 채용, 자립을 돕습니다. 뭐, 먹을게 풍성한 곳에선 누구나 순해지고 엄마 품을 느낀다고 하네요. 참, 네이버 20주년 모임을 이곳에서 했다고 합니다.

창업 멤버 중 유일한 여성인 김보경 씨는 아동 도서 출판사인 개암나무를 운영해요. 돈 되는 책보단, 해외의 좋은 책인데 돈이 안 돼서 국내 번역서가 안 오는걸 골라서 냅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김보경을 찾아보면, 요렇게 나와있습니다. <오랫동안 IT 분야에서 일하며,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지식인과 주니어 네이버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내 동생은 렌탈 로봇』, 『뚱보의 겁쟁이 탈출기』, 『똥 친구』,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등이 있습니다.>

최재영 씨는 네이버를 나와, 수능을 치고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서울대 컴공과 졸업생인 그가 본래 꿈은 한의사였다는 설은 진실인 듯합니다. 홍대에서 한의원을 개업했는데 코로나 펜데믹이 터지기 전, 그 빌딩이 갑자기 팔렸고, 새로운 건물주님이 나가달라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나왔다고 합니다.

다들 네이버에서 해피빈으로 기부 한 번씩은 해보셨죠? 권혁일 씨는 해피빈을 맡아, 그래도 네이버와 연을 길게 갖고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에 바이오연료와 관련한 공장을 짓고, 환경오염을 막는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폐식용유를 수거해서 친환경 에너지를 만드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정확한 내용까지는 모르겠네요.

시골에 내려가서 10년 넘게 나무 심고 표고버섯 키우고, 배추 농사도 짓는 김희숙 씨는 상문고를 나와,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한옥에 살면서 때때로 지인들에게 재배한 농산물을 보낸다고 하네요. 동네 어르신들하고 아주 잘 지낸다고 하고요. 동네 어르신들을 해외 효도 여행 보내드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은 안 됐습니다.

강석호 씨는 현직입니다. 강석호씨야말로 네이버와 한평생을 지낼 각입니다. 1972년생인 그는 1997년에 삼성SDS의 신입사원으로, 사내벤처 ‘네이버 포트’에 조인했고, 2년 뒤 네이버 창업 때는 사원번호 1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네이버와 라인의 개발 업무 현업을 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해진 GIO는 국내법상 네이버의 총수(동일인)이고, 최근엔 일본 라인과 야후간 합작법인 회장에도 취임, 여전히 현업의 최전선에서 분투기를 쓰고 있죠.

쫌아는기자들 1호는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친해지면 이 사진을 보여줍니다. 성공하면 돈을 얼마만큼 벌 수 있는지, 자극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스타트업 창업 멤버들은 성공과 실패의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입히고 갈등하고, 또 절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창업 멤버보다 나은 직원도 들어오고 결국 창업 멤버가 밀려나는 일도 허다합니다. 네이버 8인방도 다르지 않았을터지만, 긴 시간을 건넜고 치열한 챌린지 속에 행여 있었을 과거의 상처는 아물었습니다. 저 환한 웃음이 증거입니다. 유심히 사진을 보는 창업자들에게 어줍잖지만 조언을 합니다.

“스타트업이란 생명체는 성장통이 너무 커서, 스스로 살기 위해 창업팀 초기 멤버들에게 자신의 거름이 되라고 요구할 거예요. 그게 절친이던 동료의 입을 통해 ‘이제 팀장 자리에서 내려가 달라’라는 언어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창업 20주년 때 활짝 웃는 기념 사진 한 장을 못 남긴다면, 밸류를 아무리 높게 받았다 한들 성공한 창업이었을까요. 싸울 땐 치열하게 서로 싸우더라도, 지금 옆의 창업 멤버야말로 50대 때 평생 친구로 재회할 동료란 걸 잊지 마세요”

아래 사진은 20주년 사진을 찍는 날, 네이버 창업 8인방이 함께 봤다는 20년 전 기사입니다. 1999년 12월 7일자 조선일보, <네이버컴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100억 투자받아>입니다. 기사에서 젊은 이해진 사장은 “기술 개발을 하다가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이 야전침대와 침낭을 사왔다.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알아서 조정하면서 신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주년 사진을 찍는 날, 네이버 창업 8인방이 함께 봤다는 20년 전 기사. 1999년 12월 7일자 조선일보, <네이버컴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100억 투자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