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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페트병을 넣으면 돈을 주는 기계를 보신 적이 있나요. 서울 여의도공원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를 보신 분이 있을 겁니다. 신기하게도 돈을 받고 물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받고 돈을 줍니다. ‘캔/페트를 저에게 주세요’라고 적혀진 곳에 쓰레기를 넣으면 현금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기계죠.

임팩트 스타트업 수퍼빈이 만든 ‘네프론’이라는 기계입니다. 쫌아는기자 2호도 1년여 전 이 기계를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문이 남았죠. 이런 기계가 전국에 몇 대나 깔렸을까. 찾아보니 160대밖에 없답니다.

고작 백원도 안 되는 캔과 페트병을 160대 기계로 모아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라뇨.

무엇보다 본질적인 궁금증.

‘과연 쓰레기는 돈이 될 수 있을까?’

찾아보니 이 스타트업, 작년 8월 시리즈 B 투자 200억원을 받았고, 기업가치도 1000억원을 넘겼다고 합니다. 쓰레기가 돈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것일까요.

판교에 있는 수퍼빈 사무실에서 창업자 김정빈 대표(47)를 만났습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 /김연정 객원기자

◇일본에서 돈주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오는 한국

쓰레기가 어떻게 돈이 될까요

사진을 보여 드릴게요. 이 운동화들은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만든 거예요. 100% 생활폐기물에서 나온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었죠. 3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인데도 전부 솔드 아웃(매진)이에요. 파타고니아(아웃도어 브랜드)도 생활폐기물로 만든 섬유로 옷을 만들어요. 불티나게 팔리죠.

사람들이 가치 소비를 해요. 싸고 예쁘다고 사기도 하지만, ‘나는 돈을 더 내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친환경 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들이 있어요. 기업들은 이런 제품 디자인과 품질에 더 공을 들여요. 폐기물 규제도 국제적으로 더 강화되고 있고요.

다시, 쓰레기가 왜 돈이 되느냐. 산업이 원하니까요. 나이키, 아디다스, 파타고니아가 무얼 할까요? 생활폐기물(PCR)로 만든 재생 플라스틱 소재를 납품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요.

글로벌 화학기업은 당연하고, SK, LG, 롯데 국내 대기업 화학회사들이 다 재생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어요. 여기서 나오는 매출이 한 해 수조원이에요. 쓰레기가 산업이 되는 비즈니스가 움직이는 거죠.

아디다스(위)와 나이키(아래)가 생활폐기물(PCR)을 통해 뽑은 소재로 만든 운동화
아디다스(위)와 나이키(아래)가 생활폐기물(PCR)을 통해 뽑은 소재로 만든 운동화

쓰레기 모으는 기계 이름이 네프론이었죠.

네프론은 계획의 일부예요. 네프론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의 목표는 쓰레기 선순환 경제를 만드는 것이죠. 경기도 화성 4천평 부지에 공장을 짓고 있어요. ‘플레이크’를 만드는 공장이죠.

투명한 페트병을 모아 씻은 다음 잘게 부수면 눈송이(플레이크)처럼 작은 플라스틱이 됩니다. 이 플레이크가 화학회사로 가서 플라스틱 재생 소재가 되죠.

플레이크는 상상 이상으로 귀하고 비싼 소재에요. 1kg에 1500원 정도 하는데요, 같은 무게인 단순 플라스틱 쓰레기 뭉치의 10배 정도 가격이죠.

국내는 아직 플레이크를 만드는 회사가 없어요. 한국은 1년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주고 이런 플레이크를 유럽과 일본에서 사와요. 한국 기업들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품’이라고 홍보해도, 그 플라스틱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분리수거한 페트병이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번씩 분리수거했는데, 왜 한국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안 되나요

오염돼서요. 분리수거에 대한 환상을 깨뜨릴까요?

유리병 재활용될까요? 하나도 안 됩니다. 전부 매립장으로 가요. 환경부에 ‘유리병 모아서 누가 재활용하느냐’고 물어보면 아마 답 못할 거예요. 맥주캔도 한국에서 재활용 못 해요. 소각장으로 가거나, 알류미늄캔만 모으는 업체가 해외로 그 캔을 수출해요.

알류미늄 캔도 꼭지, 중앙부 전부 성분이 달라요. 캔을 납품한 업체마다 알류미늄 순도조차 전부 다르죠.

생활폐기물이 재활용되려면 누군가 돈을 주고 사야 해요. 돈을 주고 사는 기업, 구매자가 있어야 하고 기업이 원하는 소재 스펙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스펙이 안 나오게 버리고, 스펙에 맞도록 가공해주는 업체도 없어요. 산업의 니즈를 맞추지 못하고 있죠. 페트병은 라벨을 떼야 하고 뚜껑을 분리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버리지 않잖아요. 그걸 사람이 전부 다 할 수도 없고요.

라면봉지도 마찬가지예요. 라면봉지 안에 알류미늄과 플라스틱이 다 있어요. 이론적으로는 재활용이 가능하죠.

라면봉지에는 거의 소스나 음식물이 묻어 있어요. 음식물이 묻으면 재가공 처리가 어려워요. 한국 쓰레기는 화학회사들 입맛에 맞지 않죠. 다시 분류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인건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사업성이 안 나오니 누구도 이런 사업을 제대로 하려고 하지 않아요. 수퍼빈은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유럽과 일본에서 쓰레기를 사온다?

일본은 우선 분리수거를 정말 잘해요. 분리수거가 효율적이에요. 불에 타는 쓰레기, 불에 안 타는 쓰레기를 구분하고 확실하게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만 따로 버려요. 상자 종이, 페트병 같은 것들이죠.

한국처럼 분리수거를 여러 소재로 나눠서 헷갈리게 하지 않았어요. 대신 일본인들은 분리수거 룰을 확실하게 지켜요. 그래서 일본에서 수거한 쓰레기들로는 순도 높은 소재가 나올 수 있어요. 전 세계에서 아마 일본에서만 가능할지도 몰라요.

유럽은 플라스틱을 가져와서 화학 가공을 해요. 대충 분리수거를 해도 화학 촉매제를 이용해 플라스틱만 남겨요. 화학회사의 규모와 기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설비 비용이 비싸고 약품을 많이 써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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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원문에 실린 사진과 그래픽입니다.


수퍼빈의 쓰레기 수집 로봇, 네프론

◇쓰레기와 전쟁, 그 끝판왕 “김대표, 누군가는 이 문제 해결해야돼”

수퍼빈이 운영했던 쓰레기마트.
김정빈 대표가 찍은 재활용 선별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