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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임팩트 닷의 사무실은 가산디지털단지에서도 가장 외곽, 독산역 바로 앞에 있습니다. 최근 스타트업들의 본거지가 다양해지고 있다지만, 강남 테헤란로와 판교, 핫하다는 성수동도 아닌 서울의 서쪽 끝에 자리 잡았죠. “고향(경기도 안양)이 가까워서 이쪽에서 시작한 것도 있고요, 계속 있다 보니 인재수급이 원활하더군요. 판교와 강남 모두 동남권이잖아요. 그런데 경인권인 인천, 수원 사는 개발자들도 많거든요. 동남권에서는 엔지니어 뽑기 경쟁이 훨씬 치열하지만, 상대적으로 서쪽에서는 경쟁이 덜 해요. 나름 인재 수급의 블루오션이랄까요?”

6년차 스타트업 닷과 창업가 김주윤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해 주는 점자시계(닷워치)를 비롯한 점자기기를 내놓았었죠. 작은 스타트업이 직접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수십년간 풀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겠다며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TV창업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 칸 국제광고제 수상 등 수많은 상을 받고, 김 대표도 언론에 수차례 등장했죠. 그 선한 의도와 시도만으로도 박수를 받은 셈입니다.

닷 창업가 김주윤 대표 /닷 제공

하지만 닷이 큰 투자를 유치했다거나 매출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획기적인 성과를 냈다는 뉴스를 한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뜸했다고 할 정도로요. TBT 이람 대표의 닷 인터뷰 추천을 받고 첫 반응은 ‘엇, 닷 아직 살아있구나! ‘였습니다. 쫌아는기자들은 선한 의도만으로 덤볐던 소셜 임팩트 스타트업들이 냉정한 시장의 반응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을 지난 몇 년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김주윤 대표를 만나자마자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습니다. ‘너무 소식이 뜸해서 닷이 망한 줄 알았습니다’라고요.

“아, 저 군대 다녀왔어요. 작년 4월 전역했어요. 광명시에 있는 51사단에서 상근예비역요. 제가 결혼했고 5살 난 애도 있거든요. 예비역 훈련 군수물자 담당으로 창고 관리했어요. 그때 회사 상황도 좋지 않았거든요. 공동창업자 성기광 CTO가 공동대표로 회사를 지켜줬고요, 저는 휴직했어요. 그래도 퇴근하고 연락 주고 받으면서 회사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죠. 주말에는 회사에 들르기도 하고요. 적자 회사를 두고 군대 가는 마음요? 장난 아니죠. 정말 극한의 압박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창업하고 애도 낳고, 군대도 가고, 회사도 아직 한 번도 흑자가 난 달이 없어요. 익스트림하죠, 아주.”

김 대표는 지난 2~3년 사이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담담하게 웃으면서 몇 문장으로 쏟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지난주까지 미국에 있었다며 사진 몇장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6월 디지털 촉각 패드인 닷패드를 미 교육부에 300억원 공급하기로 하기로 했어요. 다음 스텝은 닷패드를 기반으로 시각장애인이 쓸 수 있는 태플릿 PC를 내놓을 거예요. 미국의 초대형 테크 회사와 협업 때문에 다녀왔거든요. 공식 발표는 내년 초쯤 할 거예요. 다들 깜짝 놀랄만한 뉴스일 겁니다. 지난 6년은 R&D(연구개발) 기간이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확할 시간이죠.”

소셜임팩트 닷.

◇닷은 네번째 창업, 장애인 룸메이트와 가족의 원룸에서 다시 시작

25살에 닷을 창업하신 셈인데, 닷이 네번째 창업이라고요?

첫번째 창업은 2011년에 했어요. 제가 시애틀에서 유학했거든요. 워싱턴대 사회과학전공으로 09학번이에요. 학생 때부터 손정의, 잡스 같은 창업가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자서전, 기사 다 찾아 읽었죠. 혁명적인 것을 내놓아 세상을 바꾸는 아이돌 스타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창업했죠. 학교 친구랑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대학생들이 이력서를 제대로 쓸 줄 모르잖아요. 페이스북 타임라인처럼 이력서를 깔끔하고 관리가 간편한 UI로 보여주는 플랫폼, 일종의 링크드인을 꿈꿨죠. 8개월 만에 무산됐고요. 두번째 창업은 바로 다음해에 했었는데, 미국 유학생과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을 연결해서 멘토와 멘티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었어요. 그것도 학생 비자 취업 문제가 복잡해서 접었죠. 배운 것이 있다면 창업자가 코딩을 직접 할 줄 알아야 IT창업이 가능하더군요. 독학으로 세번째 창업은 프론트엔드 코딩을 제가 했어요.

세번째 창업은 공유트럭 플랫폼이었죠. 웨건이라는 서비스고, 2013년 세 개 도시에서 서비스로 시작했어요. 창업 멤버가 되니까 영업도 뛰어야 하더군요. 어느 가구점을 들어갔는데 ‘왜 당신들 서비스를 써야 하나, 다른 플랫폼도 많다’며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이런 영업을 3개월을 하니 회사를 나가기 싫더군요. 다른 코파운더들은 회사에 남고, 저는 회사를 나왔어요.

김주윤 대표가 창업했던 웨건의 서비스 안내. 이 아이콘들도 김 대표가 직접 디자인했다. /닷 제공

그다음 아이템이 닷인가요. 가족이나 주변 지인 중에 시각 장애인이 있나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교회를 나가게 된 이야기와 룸메이트 Sean을 이야기해야 하는데…하루는 대학 후배가 밥을 먹자고 했어요. 저를 보더니 불쌍하대요. 밤을 새서 아침 7시까지 코딩하다가 폐인처럼 회사를 나가고, 영혼 없이 돌아오는 모습. 악악대면서 발악하는 것 같고, 제가 툭하면 폭발할 것 같대요. 그런데 제 상황이 그렇더군요. 절박함과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달려들었죠. 그래서 같이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한결 낫더군요. 그때 세번째 회사 웨건을 나왔어요.

크리스천이 되면서 다른 시각을 갖게 됐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의 생활이 눈에 들어왔죠. 회사 나오고 1년 동안 창업을 잊고 교회를 열심히 나갔죠. 그러다 룸메이트 Sean과 방을 쓰게 됐는데 이 친구가 지체장애인이에요. 1년 반동안 같이 살았는데 이때 다양한 장애인 친구들을 알게 됐죠.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까워지고 추수감사절에 친구들 부모님댁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그러다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시각 장애인 친구가 점자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봤죠. 저희는 성경책이 한 권이지만 이 친구들은 여러 권, 정말 두꺼운 책을 봐요. “너 이렇게 힘들게 성경을 봤다고?”라는 의문에서 닷이 시작된 셈이죠.

뭐랄까, 다음 창업을 한다면 이 친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어려운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 그게 모티베이션이 됐어요. 사실 닷을 창업하고도 어려운 순간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전 창업처럼 번아웃 같은 것이 오지 않더군요. 동기가 달라서 그런 것 일지도요.

닷을 열심히 해야 하는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 아버지 사업이 어려울 때 유학을 떠났거든요. 원래 안양에 평범한 32평 아파트에 살았어요. 그런데 한 번씩 한국에 오니 집이 이사를 가 있더군요. 유학 1년차에는 아파트에서 투룸 빌라, 그리고 유학 2년차에 한국 돌아가니 집이 원룸이 됐어요. 어머니는 공장을 나갔고요. 열심히 해야겠다,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래서 닷을 시작했고, 공동창업자와 원룸 하나 얻어서 시작했어요. 이런 것들이 동기 부여와 책임감이 됐던 것 같네요.

2012년, 김주윤 대표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유튜브 코파운더 채드 헐리(가운데)와 스티브 첸과 함께 찍은 사진. 그는 이때 수많은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을 가슴 깊이 존경하고 창업에 미쳤었다고 한다. /김주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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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원문에 실린 사진과 그래픽입니다.

점자가 한줄로 배열된 기존 점자 기기(왼쪽)과, 패널 전체가 점자를 표현할 수 있는 닷패드(오른쪽) /닷 제공
닷 기술의 기본이 되는 모듈, '닷 셀(왼쪽)'. 오른쪽 사진은 세라믹을 이용한 기존 모듈과 닷 셀의 크기 비교. /닷 제공
소셜임팩트 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