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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테헤란로의 한 빌딩에서 마주한 층별 입주사 명패. 13~18층까지 모두 마켓컬리. 창업하는 날, 다들 이런 꿈 꾸지 않으셨나요? 시작은 4인실이지만 곧 빌딩 서너층을 쓰는 유니콘이 될꺼라고. 꼭대기층엔 라운지를 만들고요.
잠시 빌딩 명패 앞에서 김슬아 컬리 창업가의 성공의 무게를 생각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새벽 배송을 실현한 컬리. 숱한 성공 스토리의 컬리. 하지만 그런 컬리조차도 여전히 누적한 적자나 중소 도시로 확장과 같은 이슈를 떠안고 앞으로 나가려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 건물의 소유주도 컬리는 아니고요.
◇김슬아 대표 “여자인 건, 솔직히 바꿀 수가 없다. 저라서 미안하다”
“창업 2년차때입니다. 피칭 100번 넘게 했어요. 100번요. 모두 실패했죠.시리즈A 될까말까한 시점에 돈은 다 떨어졌어요. 돈이 없으니까, 불러만 주시면 무조건 피칭하러 갔거든요. 한번은 벤처캐피털 찾아갔더니 오피스에도 못 올라오게 하고 그냥 1층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사주고는 ‘아는 분이 소개해 만나긴하는데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안하다, 그냥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가시라’고 하세요. 그건 사실 괜찮죠.
마음에 상처도 있어요. (한 투자자는 피칭끝난뒤)저보고 그랬어요. 사업도 좋고 사람(창업가)도 마음에 들어도, 투자를 안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당신 사업도 잘 모르겠고, 사람을 아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여자라서, 결혼도 해서, 애를 낳을지도 모르는, 그런 리스크도 있는데 내가 왜 투자를 하겠냐고요. 공동창업자 길남 님이 옆에 있다가 그냥 나가자고 했어요. 그때 제가 말씀드린게, 사업에 대한 확신이 안 드시면, 그건 저희가 잘 설명을 못한거고, 저를 모르시는 거는 제가 능력을 보여드려야하는데 못한거고, 그런데 제가 여자인 거는 솔직히 바꿀 수가 없다. 그게 저라서 죄송하다. 만약에 그것까지도 제가 합격을 해야하는거면, 여기선 정말 투자받기가 힘들겠네요. 죄송하다고 말하고 나왔어요. 그게 좀 충격적이긴 했어요.”
이렇게 김 대표와 그녀의 창업 2년차 이야기를 한참 했다. 김슬아 대표는 “돈이 없던 2년차, 그래도 잠이 안 오진 않았어요. 잠을 안 잔다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없다는걸 알기 때문에. 해야할 솔루션들을 쭉 적어놓고 하나씩 해보는거죠. 그 리스트가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살짝 쫄리긴 하는데, 그래도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요”라고 했다.
“결국 힘든건, 사람 관련이었습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편이예요. 왜 성선설이냐 성악설 믿느냐 얘기하잖아요. 모셨던 분에겐 전권을 주고 최선의 보상을 했어요. 당시에 저보다 월급 많은 분들이 전체 직원의 70% 정도였죠. 근데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느끼는 행동을 하거나, 예를 들어 도덕적인 이슈가 있을땐 진짜 힘들었어요. 초창기 멤버 한 분이 구치소에 간 적이 있어요. 아침에 출근을 안 해요. 걱정돼 수소문하는데, 어머님이 전화와서 옛날에 아들이 사고친 것 때문에 구치소 갔다고. 그래서 면회도 갔었고요.”
김 대표는 “참, 그때 대상포진도 걸렸었어요. 웃긴게 그땐 대상포진인줄도 모르고, 그냥 타이레놀 먹으면서 버텼어요. 2016년초요. 워낙 힘든 시절이니, 몸이 아픈게, 피곤해서 아픈거겠지 하고 타이레놀만. 외부 투자받고 2016년말인가 다시 유사한 증상에 병원가보니 ‘대상포진이네요. 근데 이건 대상포진이 전에 걸렸던 건데요’ 이래요. 하지만 그해초엔 아프다고 병원에 누워버리면 딱 회사 망할 것 같은 상황이었거든요. 그 다음해부턴 건강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대상포진 엄청 아프잖아요? 대체 타이레놀을 얼마나 드셨나요.
제가 이렇게 고통에 둔감한 인간이기는 해서요. 예전 직장생활할땐 맹장이 터졌는데, 맹장인지를 모르고 하루 이상을 버틴 거예요. 나중에 응급실 갔고요. (@김 대표의 직장생활은 주로 컨설팅업체다. 그는 민사고와 미국 웰즐리대학 졸업했고 골드만삭스, 맥킨지앤드컴퍼니, 테마섹홀딩스, 배인앤드컴퍼니를 다녔다. 2014년 12월 컬리의 전신인 더파머스를 창업했다. 그녀가 말하는 창업2년차는 주로 2016년을 지칭했다.) 그때 타이레놀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애드빌도 좀 많이 먹었고요. 많은 창업자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그때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할때였어요. 단 하루도 당일날 퇴근한 적이 없었고요. 새벽 2시, 3시에 집가고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사나오면, 이게 피곤한건지, 피곤해서 아프다고 느끼는건지, 아니면 진짜 아픈건지 잘 몰라요. 늘 졸리고 몸은 부어있고. 투자자 한분이 ‘늘 컨디션이 안 좋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분명히 나쁜 의사 결정을 한다. 조금 더 본인을 케어하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했어요. 인생에서 제일 안 건강했던게 2015년 창업부터 2016년말(시리즈A 투자유치)였습니다.
사실 창업 전에 투자은행업이나 컨설팅을 해도, (영양 관리엔) 남들이 약간 독하다고 할 정도였어요. 예컨대 팀이 같이 점심 먹을때, 이것 먹으면 나트륨 많으니 몸도 붓고 오후에 머리가 안 돌아갈 것 같다 싶으면 아예 굶었어요. 배가 아무리 고파도, 굶고 차라리 약 먹고 버티는 한이 있더라도요. 치킨도 1년에 한 마리 미만으로, 라면도 1년에 5개도 안 먹고요. 예컨대 M&A 실사 같은거 하면 사람을 호텔에 가둬놓고 거기서 팀원들이 하루 2시간씩 자면서 엄청 스프린트하면서 짧게 끝내요. 저는 그때도 이 연료(음식)가 몸에 들어가면 안 건강할것 같다 싶으면 안 먹었어요.
엄청 그런 디시플린(훈육) 있는 사람인데, 창업 초창기엔 하나도 안 됐어요. 그때 라면, 치킨, 피자 먹었는데, 평생 먹은 피자의 총량보다 그 시절에 먹은 피자가 많아요. 3박4일 밤새지, 프레셔도 너무 심하고, 간혹 주변을 둘러보면 제가 좋은일 같이 하자고 불러들인 팀원들인데 까딱하면 월급도 못주고 회사 망하겠는데 라고 생각하니까, 약간 밥이, 뭐를 입에 집어넣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건강 잡아준, 번아웃 막아준 투자자?
세마트랜스링크의 박희덕 대표님요. 지금도 저희 주주세요. 이사회 멤버시기도 한데, 첫 미팅하는데 오피스에 막 피자박스가 쌓여있던걸 보고요. 나중에 그 얘기했어요. 고객에게 좋은 먹거리주겠다는 사람들이 맨날 피자만 먹고 얼굴색도 안 좋아보인다고, 아이러니라고요. 그때 투자자 분들이 고기도 많이 사주셨어요. 참, 초기 투자자도 쉽지 않는 것 같아요. 창업자들 멘탈도 챙겨야하고, 심지어 밥도 사줘야하고요.
최악의 창업 2년차였던 김슬아를 지켜준 말이 있을까요.
창업할 때 부모님들이 반대하진 않았어요. 저한텐 유일하게 반대라는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들이 부모님이예요. 근데 제가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들어요. 인생 결정때 부모님 말씀을 참고는 하되, 그래도 제가 해야겠다는 방향대로 했고, 부모님도 지나고보니 맞는것 같다고 하셨고요. 창업할때도 ‘네가 살 건데 네가 알아서 해야지, 대신에 나한테 손 벌리지마’ 이렇게 얘기하신 분들이시죠. 그 시점쯤에는 부모님도 학습이 되셔서, 차마 반대조차도 안 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골 동네 의사셨던 아버님은 “네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해야겠지” 하셨지만, 걱정 많이 하셨다고 해요. 당초 은퇴 계획을 짰다가 안 하셨어요. 은퇴하고 엄마하고 놀러다닌다고 했는데 제가 창업하는걸 보고, 좀더 일을 해야겠구나 했다네요. 부모님한테 참 감사해요. 항상 제가 선택한 인생을 살도록 대비해주셨어요. 실제로 (부모님이 준비한) 그 카드를 쓴 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래도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는거요.
창업하고 2년차, 되게 힘들었을때 간혹 친정집가면, “치킨집 하나는 내주겠다”고 하셔서 그게 마음의 큰 위안이 됐습니다. 먹고는 살겠구나라는. 근데요, 아버님 지금도 의사 계속 하세요. 약간 뻥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 따뜻한 이야기에 아버님 성함을 물어봤다. 울산에서 개원의하시는 김경삼 의사선생님이시다. 김슬아 대표의 어머님과 동생도 모두 의사다. 김슬아 대표는 “집에 저빼고 3명이 의사예요. 되게 소소하고 따뜻한 동네 시골 의사예요. 셋다 울산에서 옹기종기 의사해요. 엄마는 이젠 쉬고 봉사활동하시고요. 가족들은 “어떻게 우리 집에서 너같은게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해요.)
◇ 유통의 본질이 바뀌었다. 더이상 물류가 핵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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