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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2018년의 이야기다. 티비티는 당시 첫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원칙은 ‘성장 시장에서 가치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에 투자하자’였다. 또 인생을 걸고 그 문제를 풀려는 창업자를 선호했다. 인생을 걸지 않는다면 사업이 어려워질 때 쉽게 포기할테고 그의 열정을 전파해 결속력 있는 팀을 만들기도 어렵다. 그때 엔씽을 만났다. 소개는 네이버의 이주원 투자심사역이 했다(그는 이후 엔씽의 CFO로 옮겼다).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혜연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 입구엔 수경재배시설을 진열했다. 로메인 상추, 바질 등이 자라고 있었다. 엔씽은 2014년 설립했으니, 당시에도 이미 5년차였다. 스마트 화분, 수경재배키트, 사물인터넷(IOT) 센서, 그리고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플랜티큐브를 차례로 선보였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의 토마토 농장에서 비닐하우스 농장 조성 사업을 맡은 경험을 있었다. 여기에 전자부품연구원에서 Iot 플랫폼을 연구한 경력이 합쳐진게 스마트화분이었다. 세상 어디에서든, 심지어 화성에서도 신선한 채소를 재배하는 기술를 만들자는 꿈이었다. 세상을 먹여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꿈이 있을까.

김혜연 대표 /엔씽

◇2000억원 투자받은 미국 스타트업과 경쟁할 수 있을까

농업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 문제는 농업이 사실 불확실성이 큰 산업이라는 점이다. 수확량과 품질을 좌우하는 자연환경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기상, 병해충의 증가로 농업 환경이 악화하는데다 농업 인구의 고령화, 경작지 감소까지 겹친다. 식량 수급 문제는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에겐 위기 요소다. 채소는 특히 기후에 민감하고 보관이 어렵다. 가격 변동폭이 300~1000%다.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채소를 재배하자는 도전은 진즉 관심을 끌고 있었다. 미국에는 소프트뱅크에서 2000억을 투자받은 플렌티(Plenty), 골드만삭스 등에서 1400억을 투자받은 에어로우팜(Aerofarm) 등이 거대한 창고형 수직 농장을 건설했다.

막 씨드투자를 받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이런 선두주자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엔씽의 차별화는 컨테이너를 활용한 모듈형 스마트팜이었다. 당시 서울 미아동에 농장 3개동을 구축해 테스트 재배하는 김 대표에겐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1)저비용으로 1동을 설치해 성과를 빠르게 입증한 후 시장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고, (2)온도, 습도 등을 균일하게 제어하기 어려운 창고형 농장과 달리 컨테이너형은 균일한 제어가 용이하며, (3)병충해 발생시 전체가 오염될 우려가 있는 창고형 농장과 달리 컨테이너형은 해당 모듈만 분리하면 된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용이하다. 무엇보다도 재배 데이터의 고도화다. 왜냐하면 작물의 종류나 성장시기(육모, 성장기, 수확기)에 따라 최적의 재배환경은 달라지는데 창고형 스마트팜에서는 환경을 분리해 제어하기 어려운 반면, 엔씽은 각 컨테이너 모듈별로 세분화된 환경값을 설정할 수 있다.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면서 생산 효율도 높일 수 있었다. 맛을 달콤하게 하거나 식감을 아삭하게 만들 수도 있고, 채소의 질산염 성분을 줄이는 등 다양한 생육 데이터를 모듈별로 구현할 수 있었다.

플랜티큐브 내부 모습/엔씽 제공

◇엔씽의 차별화 3가지 포인트... “먹힌다!!”

엔씽은 시장의 니즈에 맞는 채소를 생산하고 그 효율성을 높이는 레시피를 개발하는 ‘콘텐츠’ 기업을 지향한다고 했다. 엔씽의 차별화는 납득할 수 있었다. 제품력 검증도 마찬가지였다.

미아동 농장의 신선 채소는 미슐랭 쉐프에게서 최상급 식자재 평가를 받았고 그 중에는 국내 재배가 불가능한 타이바질도 있었다. 엔씽의 수경재배키트로 사무실에서 상추를 직접 키워봤다. 아삭한 식감에다 싱싱한 상태로 오래 보존할 수 있었다. 질산염 성분 감소도 각종 시험으로 확인했다. 엔씽 팀은 Iot 기반의 센서 모듈과 재배환경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운영체제(CUBE OS)를 개발하였고, 작물 생장용 LED 조명, 재배모듈 등도 모두 자체 개발했다.

엔씽의 기술은 사실 존버의 산물이었다. 엔씽은 2014년 설립 이후 막연한 비전을 실현하려는 열망 속에 4번의 단계적 피봇을 했다. 식물 재배 활동 기록 모바일 앱을 통해 작물 재배 데이터를 축적했고, IoT 기반 스마트 화분에서는 토양의 수분, 온도 등을 감지하여 원격 재배를 시도하였고, 모니터링 IoT 센서를 개발해 딸기 농장에 적용했고, 흙이 아닌 배지에 씨앗을 키우는 수경재배키트를 개발했다. 이 결과물의 합이 2018년에 모듈형 스마트팜 플랜티 큐브에 모인 것이다.

2018년 초 엔씽의 팀원들이 미아동 컨테이너를 직접 공사하고 있는 모습/엔씽 제공

인상적인 것은 5년에 가까운 연구개발 기간 동안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멤버들이 아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KITECH 출신 백경훈 CTO, 레드닷 어워드 수상자 정희연 CDO와 창업팀을 꾸렸고, 무역사업체를 운영하던 한승수 CSO 등이 합류했는데, 각자 다른 이력을 가진 이들이 ‘모든 사람들이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김대표의 꿈에 공감하고 똘똘 뭉쳤다. 벤치마크할 모델이 없어 BM을 구체화하기까지 긴 경험의 축적이 필요했지만 한 명도 이탈하지 않았다. 매출이 거의 없이 5년을 버텨왔어도 지친 기색이 없는 팀원들을 보면서, 티비티가 바라던 ‘자기 인생을 걸고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창업팀’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합적으로 티비티는 엔씽이 마주하는 시장의 크기, 해결하려는 문제와 제품의 차별우위, 그리고 무엇보다 팀원들의 결속력, 문제해결력을 확인한 후 반드시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투자 후 약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엔씽은 우리가 기대한 바를 현실로 만드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엔씽은 2019년에 투자금을 바탕으로 용인에 16동짜리 플랜티큐브를 구축하고 연간 30t의 신선채소를 생산해 프리미엄 레스토랑과 대형마트에 전량 공급해왔다. 식품기업들의 수요가 계속 커지면서 2021년부터 국내 모 대기업 물류센터 인근부지에 컨테이너 38개동을 설치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가동될 농장에서 재배된 신선채소는 곧바로 물류센터를 통해 대형마트의 각 지점에 배송될 계획이다. 농산물의 생산, 집하, 포장, 배송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농업방식이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CES2020에서는 엔씽에 스마트시티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여하였는데 이는 스마트팜 기업 중에서 세계 최초라고 한다. 모듈형 스마트팜의 차별성을 CES도 평가한 것이다. 또 엔씽은 아랍에미레이트에 2020년 총 10동의 컨테이너를 수출하였고 곧 대규모 농장 시스템 수출 계약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에서는 포스트 오일 산업을 키우기 위해 농업 분야를 국가 발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엔씽의 멤버들은 ‘세상을 먹여 살린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더 깜짝 놀랄 일들을 준비할 것이다.

아부다비 플랜티 큐브. 총 10개동. /엔씽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