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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그리고 창업멤버의 꿈과 비전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정말 꿈과 목표만 있다면 투자자들은 그 꿈에 얼마의 값을 매겨줄까요.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2020년 9월 창업 이후 11월 기업 밸류 285억원을 인정받고 55억원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 당시 시제품, 그러니까 소위 MVP 테스트를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5명의 코파운더, 그리고 무얼 만들어 어떤 시장을 노리겠다는 목표뿐이었습니다. 창업 멤버들의 쟁쟁한 이력 때문일까요?

박성현 CEO - 인텔(Intel Labs),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MIT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오진욱 CTO - 뉴욕 IBM TJ왓슨연구소 리드 아키텍트/ 카이스트 전기공학 박사

김효은 CPO - 의료AI스타트업 루닛(Lunit) CPO, 삼성전자/ 카이스트 전기공학 박사

물론 이들의 이력이 주는 무게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요. 창업가 박성현 대표가 내세우는 꿈은 “제2의 삼성전자, 제2의 초격차 주인공, 그게 바로 리벨리온”입니다.

반도체는 설계만 전문적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이 따로 있습니다. GPU(그래픽카드)를 만드는 엔비디아, 모바일 반도체를 만드는 퀄컴이 대표적인 팹리스입니다. 이들은 반도체 설계도만 그리고, 설계도를 가져가면 그대로 반도체를 찍어주는 전문적인 공장이 따로 있습니다. 이걸 파운드리라 부르고 세계 1등이 대만의 TSMC죠. 삼성전자는 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회사지만, 주력은 메모리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입니다. 물론 파운드리도 하고 있습니다. 리벨리온은 그래서 어떻게 저런 거대 기업들과 싸워 어떤 시장을 어떻게 뺏어 올 수 있다는 것일까요. 바로 AI(인공지능) 흐름을 타고 AI에 최적화된 칩(반도체)을 누구보다 빨리, 잘 설계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 시장에는 주인이 없다고요.

“고(故) 이건희 회장이 1970년대, 80년대 반도체에 투자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다들 미쳤다고 했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삼성전자입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제 고향 울산 앞바다에 조선소 짓겠다고 했을 때도 아마 똑같은 소리 들었을 겁니다. 저 양반, 제정신 아니라고요. 우리가 지금 컬러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 배를 어떻게 만드느냐고요. 스페이스X에서 근무했을 때, 사내 와이파이 패스워드가 ‘Life on Mars(화성 위의 삶)’ 였습니다. 일론(머스크)을 비롯한 팀원들은 화성에 인류를 보내고, 내가 화성에 살겠다는 믿음으로 일합니다. 그게 사업적인 뻥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꿈과 비전에 도취해서 일합니다. 다들 미쳤다고 해도 그게 된다고 생각해야 스타트업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의 엔비디아, 퀄컴 같은 회사를 제치는 반란(rebellion)을 꿈꿉니다.”

엔비디아의 이력을 찾아봤습니다. ‘1993년 4월, AMD 엔지니어 출신인 젠슨 황과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 3명이 설립.’ 그들이 넘어서겠다는 엔비디아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2022년 시즌1 딥테크 스타트업의 세번째 주인공은 스스로를 ‘딥테크의 하드코어 메탈 같은 기업’이라 소개하는 리벨리온의 박성현 창업가입니다.

리벨리온 창업가 박성현 대표. 오른쪽은 발달장애 청년작가인 정민우님이 그린 커리커쳐.

◇CPU, GPU 다음 반도체 전쟁터는 NPU

인공지능을 위한 반도체, NPU가 뭔가요.

여기서부터 어려워서 독자분들이 스크롤 내리는 것을 멈추면 안 되는데요. 최대한 쉽게 설명할게요. 그래서 약간의 왜곡도 있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세서, 그러니까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크게 CPU, GPU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숫자를 셀 때 1 다음에 2를 세고, 그다음 3을 세지 않습니까? 이렇게 작업의 순서를 매겨서 순차적으로 해내는 구조에 최적화된 반도체가 CPU입니다. 그 다음 그래픽, GPU는 벡터 개념이 들어갑니다. 왜 3D 게임을 하면 상하좌우로 캐릭터가 움직이고, 위치에 따라 표현되는 그림자도 다 다르지 않나요? 3차원의 공간에다 그래픽을 표현하려면 동시에 많은 좌표에 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로 여러 연산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GPU입니다.

NPU는 그걸 넘어 인공지능이 수행할 무수히 많고 복잡한 연산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주는 전문 칩입니다. 인공지능은 텐서 연산에 기초하죠. (텐서 연산은 벡터, 스칼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니 따로 검색을 추천합니다. 상대성이론 등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연산이랍니다. 물론 2호도 이해 못 했습니다) 문제는 텐서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가 과거에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글의 초기 알파고도 CPU와 GPU를 썼어요. 나중에 구글은 자신들이 직접 NPU(구글은 이걸 TPU, Tensor Processing Unit라 부름)를 만들어 알파고에 장착했고요. 다만, NPU는 다른 알고리즘 계산은 잘 못합니다. 인공지능이 원하는 계산만 잘하는 녀석이죠. 이제 걸음마 단계고요.

결국 수많은 알파고가 튀어나오고, NPU도 엄청 쓰게 된다?

자율주행은 AI가 운전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도 주식 주문을 AI가 합니다. 사람이 그 룰을 짤 뿐이고요. 결국 AI는 경제적 임팩트가 큰 모든 산업에 다 들어옵니다. 그러면 정말 빠른 연산이 필요합니다. 테슬라 자율주행을 켜고 도로를 달리다 앞에 차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연산이 0.2초 빨라서 브레이크를 0.2초 빨리 밟았다 쳐요. 그 찰나에 자율주행이 목숨을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상이 올 거예요. 그런데 GPU가 너무 비쌉니다. 인공지능 연산을 GPU가 전부 대신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죠. 지금 전 세계적인 GPU 품귀 현상 때문에 PC 사려면 가격 100만원이 넘어요. 비트코인 채굴 전용 반도체가 나왔는데도 그렇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사업을 해도 지금 비용 구조로는 수익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일 거예요.

이게 다 시대의 수요에 반도체 공급이 못 따라가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GPU는 가격도 비싸고, 두 기업(엔비디아와 AMD)이 독점한 시장이고, 전기도 엄청 먹습니다. 결국 NPU가 뜹니다.

근데 그 NPU. 구글 같은 대단한 회사들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바둑을 위한 인공지능이 알파고였듯이, 인공지능도 목적에 따라 다양합니다. 리벨리온은 금융 AI에 최적화 NPU, ‘아이온’을 만들었습니다. HFT(High-frequency trading), 한국어로 하면 초단타매매를 위한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고요. 사람 대신 정해진 연산을 처리해서 나스닥 같은 시장 오더북에 주문을 넣어주는 칩입니다. TSMC 7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합니다. 밝힐 수 있는 고객사는 JP모건이고, 월스트리트와 한국에도 저희 칩을 사가서 쓰기로 한 회사들이 더 있습니다. HFT는 엔비디아의 GPU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리벨리온이 설계한 NPU 아이온은 GPU보다 속도가 10배 빠르고, 전력은 절반 수준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시장을 타깃으로 한 다른 NPU가 없나요?

아까 NPU는 특정 알고리즘에 최적화된다고 했죠? 그래서 GPU, CPU처럼 범용 반도체로는 쓰기 어렵다고요. 그래서 아직 블루오션입니다. 원래 ‘하바나 랩스’라는 회사가 금융 NPU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인텔에 인수됐고요. 그런데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 근무 시절에 유명 헷지펀드에서 ‘자신들 알고리즘에 맞춰 칩을 변경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에 인텔에 넣었는데 단호하게 ‘No’ 했습니다. 인텔이 왜 금융 NPU에 목숨을 걸지 않았느냐면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번째, 시장이 작다. 두번째, GPU가 아직도 세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 비해서 금융용 반도체는 아마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전체 수요를 다 합치면 4 조원쯤 됩니다. 크다고요? 아니죠. 인텔이나 엔비디아 같은 회사들에게 정말 작은 시장입니다. 클라우드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수백조원 시장인걸요. 둘째, 대부분 금융기관은 아직도 AI 연산에 GPU를 씁니다. NPU가 나오기 전에 GPU가 더 오래전부터 나와있었고, 퀀트 등 여러 투자 소프트웨어 연산에 GPU를 써왔던 것이죠. 엔비디아가 만든 GPU 기반 금융업계 소프트웨어에 다들 익숙해진 것입니다.

예컨대 저희는 운전석 오른쪽에 기어박스를 두고 탑니다. 그런데 영국이나 일본에 가면 기어박스를 왼쪽에 두고 운전해야 합니다. 만약 비슷한 성능 수준의 차라면 한국 사람은 오른쪽에 기어가 있는 차를 탑니다. 익숙해서 편하니까요. 그런데 성능이 압도적으로 더 좋은, 그러니까 페라리 기어를 왼손으로 조작하면서 타야한다고 해봐요. 그러면 불편해도 운전자가 스스로 적응해서 페라리를 탈 겁니다. 페라리가 아이온이고 운전자가 세계 금융기관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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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온 실물은 이렇게 생겼다. 패키징을 해서 실제 판매하는 제품 /리벨리온
리벨리온 팀원들 /리벨리온
스페이스X 근무 시절 로켓 앞에서 사진을 찍은 박성현 대표. /박성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