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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나눔재단은 2011년 10월 약 6000억원의 기금으로 설립했습니다. 10년간 1253개 스타트업 창업팀을 지원했습니다. 10년간 투입한 금액만 1090억원인 공익재단입니다. 흔한 잡음이나 스캔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실 선입견, 없지 않습니다. 아산나눔재단은 한국 고도성장기를 이끈 재벌인 현대가(家)가 설립했기 때문입니다. 운영을 책임지는 상임이사는 정남이(1983년생)씨입니다. 그는 고(故) 정주영 창업가의 손녀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의 2남2녀 중 장녀로,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이 그의 오빠입니다.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아산나눔재단 제공

“정남이 이사는 꼭 만나보세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죠”라고 말한건, 플래텀의 조상래 대표입니다. 작년 10월쯤 아산나눔재단이 10주년 기념 행사했을 때입니다. 찾아보니 축하 메시지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도 했더군요. 첫 문장은 “대기업이 재단을 만든다 했을때 ‘과연 어느 정도로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걸어온 길을 보면 괜한 걱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출처/아산나눔재단의 10주년 임팩트 리포트

작년 12월 30일 서울 역삼역의 마루360에서 정남이 상임이사를 만났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 인터뷰 사전 조사를 일부러 안 했습니다. 가뜩이나 선입견이 더 커질까봐, 정남이 이사의 말을 선입견 탓에 곡해할까봐. 사실 묻고싶은 건 딱 하나였습니다. “이걸 왜 하는지”입니다.

◇Not my crime, Still my sentence... 재소자 자녀의 삶도 소중하다

“질문이 까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은, 그러니까, 이걸 왜 하세요” 앞도 뒤도 없는 단도직입에 정남이 이사는 듣자마자, ‘하하하하’ 웃었다. 웃음소리 덕분에 회의실 분위기가 환해졌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봐요. 10년 후에 뭘 이루겠다라는 지점을 찍어놓고 달려가는 사람,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요. 저는 하루하루 쪽요. (2013년초) 재단에 왔을 때는 9년 후에도 재단에서 일할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당시엔 재단에서 맡아할 일이,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왔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냐는 관점에서 보자면, 아산나눔재단은 할아버지(고 정주영 창업자) 서거 10주기때 설립했고 아버지(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가 가장 큰 출연자셨어요. 근데 설립땐, 진짜 ‘시작이 반이다’라는 현대 정신으로 세웠어요. 할아버지를 기리는 의미있는 일을 하자고 일단 재단을 만들었지만, 뭘 할지 정하고 재단을 시작했다기보다 재단을 하면서 뭘 할지 찾자는 거였어요. 전 그때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중이었는데, 설립 1년쯤 됐었을때도 재단 차원에서도 너무 많은 선택지 탓에 뭘,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기획팀장으로 왔어요. 제 눈엔 재단이 초기 투자를 아주 크게 받은 스타트업으로 보였어요. 굉장히 기금은 크게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아직 뭘 해야할지, 비즈니스모델은 안 만들어진 스타트업요. 배우는 것도 많고 의미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영감을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살면서 존중하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많이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분들요. 금전적 보상 같은 게 없는데도 사회 변화를 위해 그렇게 노력하시는 분들요. 보석 같은 분들요. 예컨대 이경림 대표가 만든 세움은 재소자 자녀들을 지원하는 곳이예요. 2015년만해도 우리나라에 그런 단체가 없었어요. ‘Not my crime, Still my sentence’라는 문구로 활동하세요. 예를 들자면 생계형 범죄 때문에 아버지가 갑자기 잡혀 들어가요. 보통 그런 분들이 가정 환경 어렵잖아요. 아이들이 미성년자인데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죠. 몇 개월 부모가 살다오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삶이 완전 파괴되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에 아는 아저씨한테 맡겼는데 그 아저씨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이런 식으로요.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 있는 아이들인데도, 실태조사조차 없었어요. 세움이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국내 교도소에도 아동 친화적인 접견소가 생기고 있어요. 재소자 자녀들 전수조사도 하고요.”

아산나눔재단은 마루180과 마루360이란 건물 공간을 스타트업 입주사에 거의 무료로 주죠. 왜요?

“스타트업은 그러니까 영리 창업가든, 비영리 창업가든, 사실 창업의 여정이라는건 고통이잖아요. 예전에 마루180에 망고 플레이트와 센드버드가 입주해 같은층을 썼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진짜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하는 창업팀이었어요. 두 창업팀이 새벽 3~4시에 누가 불 더 늦게 끄고 가는지 경쟁했었어요. 서로 옆 자리였거든요. 창업 기업은 다 자원이 희소하잖아요. 창업팀이 모두 한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런 문화가 소중하잖아요.

기본적으로 창업은 영혼을 갈아넣는 것 같습니다. 투자자들은 거기에 배팅하고요. 아산나눔재단은 커뮤니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공간에 입주한 창업팀들이 심리적인 위안과 안정을 받았으면 합니다. 마루180을 졸업한 알럼나이(동문) 분들한테도 항상 물어봐요. 이 공간에서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하고요. 나 혼자 이렇게 늦게까지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옆에서 눈 앞에 바로 볼 수 있는 거잖아요.”(@아산나눔재단의 입주사였던 센드버드는 2021년 유니콘 기업이 됐음)”

“글로랑이라는 창업팀은 본래 유학생을 위한 플랫폼 기업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에 비즈니스가 완전히 망가졌죠. 직원도 많이 뽑았다가 다 내보냈죠. 피벗을 했어요. 꾸그라는 원격으로 유아 교육하는 곳으로요. 완전 바꾼건데, 그 과정에서 엄청 힘들었거든요. 이분이 남긴 명언이 ‘고통은 나의 힘’이예요. 옆에서 이런 창업가를 돕는 일은 오히려 저희가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배우고 습득하는 일이었습니다.”

◇페이백이 아닌, 페이잇포워드. 그말 들을때 감사해요.

남 돕는 일은 잘난체한다는 소리듣기 십상입니다. 창업도 안해본 분이 아는체 조언한다는.

“아, 저희는 기본적으로 창업팀에 투자를 직접 하진 않고요. 정주영 엔젤투자기금을 통해 펀드에 출자를 합니다. 벤처캐피털처럼 투자하고 뭔가 직접 관여하는일 없어요. 아산나눔재단의 프로그램이란게 우리가 멘토링하는게 아니라, 그걸 잘할 수 있는 분들과 연결하는겁니다. 저도 사실 그분들한테 조언할 건 아니고 분야별 전문가를 섭외해 연결시켜드립니다. 사실 스타트업은 동료 스타트업이 제일 잘 이해해요. 그래서 마루180과 마루360에서 동료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분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게, 재단에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자문하거나 조언할 필요도 없고요. "

◇MARU180와 시인이 꿈이있던 할아버지 정주영

건물 이름이 마루180, 마루360입니다. 재단 최대 출연자인 아버지(정몽준)가 지은건가요?

“아산(娥山)은 할아버지 아호입니다. 산이죠. 마루엔 여러 뜻이 있는데, 하나는 산마루예요. 큰 산의 마루인거죠. 그래서 아산나눔재단과 마루가 잘 연결되죠. 또 마루는 옛날 가옥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곳의 이름이기도 하잖아요. 일을 한창하는 상태라는 뜻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루라는 마을에 모여서 서로 교류하고 열심히 해서 높은 산 정상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재단 초대 이사장 정진홍 교수님이 지어주셨어요.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님이신데 재단 출범 당시 정신적 지주셨고 할아버지하고도 교류가 있던 분입니다. 할아버지가 예전에 시인이 꿈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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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리멤버(회사명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 창업가 카톡 프사 캡쳐. 최 대표는 "리멤버 서비스 1년차때 마루180에 입주했었다. 그때 2층인가 3층에 저 문구가 계단 벽에 써있었다. 마음에 너무 새기고 싶고, 또 당시 제 마음 같기도 해서 찍어놓고 두고두고 되새겼던 추억이 있다" 했다./성호철 기자



마루360의 한 회의실에 걸린 정주영 창업가의 젊은시절 사진/성호철 기자


정남이 상임이사의 책상. 별도 사무실은 없다. 사실 조금 더 지저분했는데 사진 찍겠다고 하니, 본인이 후다닥 가서 정리하는 바람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놓쳤다. 인터뷰한 12월 30일은 연휴 직전이라 직원들은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 /성호철 기자
1940년대 창업 초기에 동료들과 금강산에서 기념 사진 찍은 고(故) 정주영 창업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스타트업 창업가 시절이다./아산나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