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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투자회사 D2SF “우린 창업가만 보고 투자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서울 강남역 삼성전자 서초사옥과 붙어있는 더에셋빌딩에 네이버의 스타트업 창업공간 ‘D2 스타트업 팩토리’가 있습니다. D2SF, 특이한 이름이죠. 개발자를 위한, 개발자에 의한(For Developers, By Developers)에서 D2를 따왔답니다. SF는 스타트업 팩토리의 앞글자입니다. 이곳 400평 규모 공간에는 네이버가 투자한 기술 스타트업 13곳의 임직원 130여명이 일합니다. 입주비용은 1년간 무료입니다.D2SF는 설립후 7년간 85곳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했습니다. 지난해에는 22개 스타트업에 15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퓨리오사AI(AI반도체)·모라이(자율주행)·롸버트치킨(치킨 조리 로봇)·엘리스(코딩교육) 등입니다. 쟁쟁하죠?

네이버의 투자는 여느 벤처캐피탈이나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와는 다를까요. 양상환(49) 센터장은 다르다고 합니다.그는 ‘사람만 보고 투자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투자금 회수에도 관심이 없다고 하네요. 그의 말입니다. “요새 많은 VC들이 사람만 보고 투자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는 창업자 역량은 좀 달라요. 한 두번 보고 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어렵지 않나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창업자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냐 이건 시스템으로 보기가 어렵죠. 그분 특유의 인적 네트워크나 친밀도를 우리가 알기는 어렵잖아요.”

1년에 기술 스타트업 1300여 곳의 투자 검토한다는 이곳은 투자 심사 인력은 양 센터장을 포함해 4명입니다. 가능한 일일까요? 영국 특수수대 코만도 베테랑들도 아닐테고 말이죠.

양 센터장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초기 모바일 벤처기업에 취업했습니다. 이후 이 벤처기업이 어떤 제약회사를 인수했는데, 그게 지금의 셀트리온입니다. 5년만에 회사 상장까지 겪으면서, 벤처기업의 급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학교 다닐때도 독일의 히든챔피언 중소기업, 일본 작은기업의 사장학 등을 탐독하는 별종이었다고 합니다. ‘큰 회사’에 관심이 없던거죠. 이후 NHN(네이버의 전신)에 입사해 한게임에서 게임 퍼블리싱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일이 스타트업 육성과 비슷합니다. 남들이 모르는 게임을 초기에 발굴해 유료화 전략을 짜고 시장에 내놓는 역할이죠. 성공하면 수익도 내고요.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해서 과실을 함께 나누는 비즈니스와 일맥상통합니다.” 결국 양 센터장은 2015년 D2SF를 맡으며 네이버 스타트업 육성을 책임지게 됐죠.

양상환 D2SF 센터장

네이버 D2SF 개요

설립 : 2015년

센터장 : 양상환

인원 : 6명(투자 심사 인력 4명)

투자액(누적) : 약 500억원

투자기업(누적) : 85곳

투자 분야 : AI, 머천트 솔루션, 메타버스, 블록체인, 헬스케어

투자결정할 때 창업가를 보지 않으면 뭘 보나요.

“우리는 기술과 가능성을 많이 봅니다. 기술이 시장에 필요할것이냐 이런 부분들이요. 직관의 영역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네이버 안에 있어서 가능한 일인것 같아요. 기술 다음이 사람입니다. 창업자 한 명 보다는 창업팀 전체를 봅니다. 이들은 자영업자가 아니죠. 원맨팀이 되는건 극도로 경계해요. 대표가 혼자 있고 나머지는 단순 고용관계면 위기 상황에서 힘든 경우가 많아요. 함께 극복하지 못하더라고요.”

네 명이서 일년에 1300개 기술스타트업을 검토하고 투자를 결정한다고요.

“그래서 팀웍이 중요해요. D2SF 내 팀내 커뮤니케이션이 진짜 많고요. 저는 경영학과 출신이니까, 기술 베이스를 가진 심사역은 두 명이네요. 대신 네이버 인력을 통해 아웃소싱으로 검증하죠. 네이버처럼 살아있는 기술경험 집합체가 국내에 많이 없잖아요.큰 경쟁력이죠.”

“빠른 투자 결정합니다. 투자는 첫 미팅에서 사업부와 안면튼뒤, 보통 두번째 미팅에서 결정합니다. 창업팀과 D2SF팀, 그리고 이 사업과 시너지가 날 만한 네이버 현업 부서 리더들과 함께 미팅해요.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보름 안에는 투자 의사 결정이 끝나요. 늦어지는 경우는, 네이버 내에서 그 사업에 관심을 갖는 부서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미팅에 오고 싶어하는 사업부 리더들이 많아지다보니 그분들 일정을 쪼개서 약속을 잡아야 하거든요. 또 강조하고 싶은건, 투자는 팀워크입니다. 우리는 개별 심사역들이 프리랜서로 개인플레이하는 방식 보다는 팀이 함께 결정 내리는 시스템입니다.”

“그다음엔 네이버 조직과 연결망을 만들어주는거죠. 특정 기술을 갖은 스타트업이 한 조직과 만나고, 이게 다른 조직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기술 자체가 단단하면 네이버 내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죠.시너지를 내는 과정입니다. 네이버는 플랫폼이잖아요. 기술 하나를 단순 앱 하나의 측면에서 진단하는게 아니라, 플랫폼 위에서 의미있게 작동할 기술인가를 보는거죠. D2SF는 이걸 수년간 트레이닝한 셈입니다.”

‘사립학교같은 D2SF’라는 말을 하더군요.

“스타트업 만나면 우리도 설문을 하죠. 어떤걸 기대하고 투자 요청을 하시냐고요. 그랬더니 네이버 투자 자체가 기술 기업으로 브랜딩할 수 있는 도장이라는 거예요. 네이버만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국내 기업도 없으니까요.요새 대표님들도 잘 아세요. 네이버가 한번 투자하면, 자기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한다구요.차곡차곡 레퍼런스가 되는 셈이죠. 요새 대표님들 몇분을 인터뷰했어요.’D2SF는 마치 사립학교 같다’고 하세요. D2SF는 시드 투자, 프리A 단계까지만 투자하고 시리즈B, C 이후에는 잘 안하니까, 뒤로 갈수록 만날일이 많이 없죠. 그런데도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고 나서도 D2SF 사무실로 자주 찾아오세요. 한 달에 한 번 CEO 써밋을 열거든요.다 모여서 치맥 한잔 하는 자리죠. 오셔서 ‘마치 담임선생님, 교장선생님이 계속 남아있는 사립학교같다’며 웃으세요. 공립학교는 선생님이 순환근무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계속 한 자리에 있으니까요.”

‘돈’ 회수에는 관심없는 투자자, 그런게 가능한 일인가요?

“D2SF는 회수라는 관점이 좀 다릅니다. 재무적 회수는 거의 해본적이 없네요. 우리가 투자 조합을 운영하지 않죠. 네이버가 바로 본계정이잖아요. 회수를 한다기 보다는 시너지가 나는 전략적 투자. 투자는 수단일 뿐이에요. 우리 목적은 네이버와 시너지입니다. 첫번째는 네이버가 스타트업의 고객이 되는 겁니다. 디지털 라벨링을 하는 크라우드웍스라는 팀에 2017년 투자했습니다. 이후 네이버에서 350여 프로젝트를 수행, 데이터 2500만건을 처리했어요. 에스프레소미디어라는 스타트업의 사례도 있어요. AI 딥러닝을 통해 저해상도 영상을 고해상도로 업스케일하는 기술을 가진 곳인데 네이버와 공동 프로젝트를 했어요. 네이버는 특정 시장에 진출할 때 혼자 가지 않아요. 스타트업과 스크럼 짜고 들어갑니다. 아이크로진이라는 팀은 유전자 분석으로 질병 예측하는데 네이버와 함께 태국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두번째는 역량 내재화요. 한마디로 인수합병이요. 대표적으로는 2020년 말에 인수한 비닷두가 있습니다. D2SF가 투자한 곳인데 이후 네이버웹툰이 인수했죠.웹툰 AI 자동채색 솔루션을 만든곳이 본래 비닷두 창업팀입니다.”

[네이버 D2SF가 투자한 에스프레소미디어의 영상 해상도 업스케일 기술을 활용한 과거 사진 복원 모습]

◇“왠지 자본의 냄새가 나는 액셀러레이터라는 단어, 안 좋아한다”

네이버와 시너지 가능성이 없으면 투자도 안한다?

“매년 20건 정도 투자를 하는데요. 이 중 네이버와 바로 시너지가 나올 각이 보인다 하는 팀이 절반 정도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당장 뭘 같이 하면 좋을지 상상조차 안되는, 각이 안 나오는 팀한테 해요. 우리끼린 화이트 스페이스, 아웃라이어 영역이라고 부릅니다. 재밌는 점은, 이 영역에 투자하는건 당장 뭐가 안 나올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잘 올라오고 있어요.”

화이트 스페이스?

“퓨리오사AI가 대표적입니다.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인데요. 2016년 처음 백준호 대표를 만났는데, 당시에는 AI칩이라는 개념도 생소했고 이걸 스타트업이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시절이었죠. 사람들이 다들 삼성이나 인텔이 만들어야 하는것 아니냐고 했으니까요. 딥러닝 스타트업 정도가 막 발아하던 시기였습니다. 2016년 퓨리오사AI에 투자했지만 한동안 정말 (네이버와 협업) 각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올라오더군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칩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고, 팬데믹 이후 클라우드 비즈니스가 보편화 됐죠. 국내 기업 사이에서도 이런 수요가 생기고 있고요. 네이버도 하고 있죠. 최근에는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만 해도 사내에 헬스케어 관련 조직이 하나도 없었는데요. 이제는 네이버 본사 차원에서도 디지털 헬스케어에 투자하고 있고, 사내 병원도 생기면서 접점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D2SF는 수수께끼같은 투자조직이네요.

“D2SF가 투자 조직이라고 단순히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한 단어로 딱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데요. 점을 찍는 사람들인거 같기도 하고요. 엄청 큰 도화지가 있다고 쳐 봅시다.네이버라는 플랫폼을 원으로 그릴게요. 네이버라는 원에서 1m, 2m 앞에 점을 찍는게 D2SF의 일입니다.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는거죠.원이 점점 커지면 이 점과 만납니다. 점이 만나, 선이 되고 면이 되는거죠.현실적으로 설명하자면 네이버가 직접 투자할때 생길 리스크를 대신 짊어져주는 조직이랄까요. 특히 사업·기술 담당하는 사내 조직이 투자까지 신경쓰기는 부담스러우니까요. 한편으로는 D2SF가 네이버 사내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네이버와 경쟁이 붙을만한 기술기업의 사업을 우리가 사내에 던져주니까요.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거죠.”

경쟁상대는 역시 카카오벤처스인가요? 요즘은 공동 투자도 꽤 보입니다.

“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6~7년전만 해도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곳들이 별로 없었죠. D2SF 단독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지난해부터 시드투자도 공동으로 들어가는 케이스가 많아졌습니다. 초기 기술기업 입장에서도 보면, 여러 곳이 들어오면 좋죠. D2SF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제한적이잖아요. 우리는 네이버와 함께 성장하는 걸 포커스로 두지, 다른건 상대적으로 우선 순위가 낮죠.”

올해는 어떤 스타트업에 찾아 투자할 생각인지요.

“총 5가지입니다. 네이버와 시너지 바로 나는 분야 2개와 화이트 스페이스 3곳. 우선 네이버 AI인 하이퍼클로바를 위한 AI 분야, 소상공인들을 위한 머천트 솔루션 분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네이버가 중심축을 두는 사업들이죠. 여기에 붙일 기술 기업들을 찾고 있습니다. 화이트 스페이스 분야를 보면 메타버스, 블록체인, 헬스케어 세 분야입니다. 이 안에서도 앱 영역보다는 뒷단의 인프라 기술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앱은 트렌드가 확확 바뀌고 시장도 빨리 변해서 우리가 좇아가기 쉽지 않아요. 이것에 구애받지 않는 기업을 찾는게 기술 투자의 재미죠.”

“초기 기술기업에 투자한다고 D2SF를 엑셀러레이터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엑셀러레이터라는 말 사실 안 좋아합니다. 한글론 ‘성장 촉진제’잖아요. 빨리 키워서 시장에 내보낸다는건데, 이건 자본의 논리에 따른 단어 같아요. 테크팀은 이 문법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릅니다. 누구는 대기만성이고, 누구는 빨리 잘 크고. 기업도 구성원이 하나하나 세포인 유기물인데 다들 각자 체질이 있죠. 여기에 촉진제를 놔서 3~6개월만에 키워 다음 라운드를 돌린다? 기술 영역은 이 문법이 안 통한다고 봅니다. 기술 스타트업은 올라오는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