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저평가된 투자 분야는 어디인가요?”

벤처캐피탈(VC)을 취재하는 기자님이나 업계 관계자를 만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농업입니다.” 그러면 “가장 유망해질 분야는 어디냐”는 질문이 따라오곤 한다. 그때도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농업입니다. 어그테크(ag-tech, agriculture tech)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농업 스타트업 중에서 유니콘이 나올 겁니다.”

농업이 유망 투자 분야라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구문이다. 글로벌 투자기관의 농업 분야 투자액은 최근 몇 년 간 빠르게 늘고 있다. 농업·식품 전문 벤처캐피털(VC) 애그펀더(Agfunder)에 따르면 어그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연평균 투자 금액은 2014년 64억달러(8조원)에서 2020년 300억달러(37조원)로 약 5배 늘었다. 피치북에 따르면 민간 VC의 어그테크 스타트업 투자도 2016년 216건 총 12억달러(1조5천억원) 규모에서 2020년 416건 총 50억달러(6조원) 규모로 급증했다.

왜 농업에 투자할까? 투자사들은 투자할 곳을 고를 때 혁신 기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지, 그리고 혁신 기술이 자리잡았을 때 시장 파이가 얼마나 클지를 주로 본다. 오늘날의 농업은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그저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농업과 식품 즉 푸드 밸류체인 전체를 보면 시장 규모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크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아시아의 우리 이웃 국가들이 인구 증가의 주역이다. 인류의 식량 섭취량은 앞으로 30년 후에 지금보다 70% 더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농업의 기술 혁신이 느리고 그보다 기후 변화 속도가 더 빠른 등의 문제로 농업 생산량은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업의 위기는 지금 국제사회가 직면한 것처럼 공급망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고스란히 식품 생산·소비의 피해로 연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으로 연어를 못 먹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편의점 새벽 알바하며 코딩한 대표님…반짝이는 눈빛에 투자했다

에이아이에스 김민석 대표

그러나 창업과 투자에서 위기는 곧 기회 아닌가. 농업 스타트업 하면 최근 시리즈C 투자를 마무리한 ‘그린랩스’를 보통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나라 대형 M&A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배달의민족’이나 스타트업 대형 IPO의 역사가 될 ‘마켓컬리’도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농식품 밸류체인을 혁신하는 스타트업으로 친다. 소풍벤처스는 ‘제2의 그린랩스’, ‘제2의 마켓컬리’를 찾기 위해 농식품 특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임팩트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총 23팀의 비즈니스 성장을 함께했고, 그중 9팀에는 소풍이 직접 투자도 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업을 혁신하는 어그테크 스타트업 ‘에이아이에스’(AIS)도 그중 한 팀이다. 에이아이에스는 2020년 임팩트어스에서 소풍과 연을 맺었다. 에이아이에스 김민석 대표<사진>님의 첫인상은 ‘독특하다’는 느낌이었다. 대표님은 부산대학교에서 식물생명과학을 학부 전공했는데, 농업기상학이라는 수업을 듣다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면 농작물의 수확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진짜 저게 가능하다고?’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 대표님은 여기에 꽂혀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원에 진학해 작물생명과학을 석사 전공했다. 그리고 2016년 졸업과 동시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창업을 준비하는데 사업은커녕 생계를 유지할 돈도 없으니,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고리즘 코딩을 했다는 그다. 대학원을 다닐 때는 사비로 해외 포럼·컨퍼런스를 다니면서 알고리즘 개발에 도움이 될 글로벌 로데이터(raw data)를 확보하셨다고. 이처럼 고생스럽게 창업을 하시고 2년여 만에 소풍을 만났는데, 농업과 소셜 임팩트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피로감 하나 찾아볼 수 없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셔서 인상적이었다. 에이아이에스의 솔루션으로 농가가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까지 계산해오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그테크에서 기후테크(climate-tech)로 뻗어나갈 팀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다.

◇데이터로 분석하니 농가 소득은 늘고 토양 오염은 줄어… 후속투자·해외진출 앞둬

밭을 살펴보는 김민석 대표 /에이아이에스

미국의 ‘클라이밋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는 방대한 기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물·품종별 파종 시기, 예상 수확량, 톤당 가격 등을 예측 및 제시한다. 이 회사는 창립 7년 만인 2013년 다른 글로벌 기업에 약 1조원에 인수됐다. 이처럼 데이터 기반의 농업 경영 솔루션은 더 적은 자원으로 작물 생산성을 극대화해, 농가에는 더 큰 소득을 안겨주고 토양 오염은 줄인다. 경험 기반의 전통산업을 데이터 중심(data-driven)의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에이아이에스가 서비스하는 솔루션 ‘잘키움’ 역시 예측모델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농업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의사결정을 돕는다. 품종 정보, 토양 상태, 미래 기상 등의 데티어를 기반으로 작물의 생장 가능성을 예측해 수확량을 최대화해준다. 이른바 ‘노지(露地) 스마트팜’이자 ‘서비스형 농업(Farming as a Service, FaaS)’이다. 에이아이에스는 어그테크의 소셜임팩트를 두루 창출하는 팀이기도 하다. 초고령화·지방소멸 등으로 취약계층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 농가의 소득을 늘리고, 비료 과투입으로 인한 토양 오염 및 탄소 배출을 절감해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에 기여한다.

소풍의 시드 투자 이후 에이아이에스의 ‘잘키움’은 충북 괴산, 경북 안동의 노지 스마트농업 시범사업에 모두 참여하며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괴산에서는 생산량 상위 1%의 콩 재배 농가와 ‘잘키움’을 도입한 농가가 생산량을 비교했는데 ‘잘키움’을 도입한 쪽의 생산량 증대폭이 28% 더 크다는 유의미한 결과값을 얻었다. 밀양의 한 감자 농가는 ‘잘키움’을 쓰자 생산량이 기존 대비 23% 증대하도 했다. 김민석 대표님이 새벽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낮에는 코딩을 하면서 상상했던 것이 하나둘 현실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국내 사업 확장은 물론 후속 투자에 글로벌 진출까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는데, 대표님은 여전히 “농민분께서 활짝 웃으실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첫 느낌이 틀리지 않은 거 같다. 에이아이에스를 보면서 ‘넥스트 유니콘’은 어그테크에서 나올 거라고 또 한 번 확신했다. 소풍은 올해도 ‘임팩트어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농식품 분야를 혁신할 팀을 찾는다. 올해는 팀당 최대 3억원의 시드 투자를 고려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