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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 대표가 쫌아는기자들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습니다. 1년 사이 해시드는 2호 펀드를 결성하고, 굵직한 여러 프로젝트에 투자를 했는데요. 그래서 2호는 김서준 대표와 최근 지면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오늘 그 기사가 출고가 됐지만, 지면의 한계로 인터뷰한 모든 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이야기를 레터로 남깁니다. 지면 기사를 고려했기에, 필체는 조금 딱딱합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해시드는 운용자산이 4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사다. 지난해 연말 결성한 펀드(해시드 벤처투자조합2호)에는 네이버·SK·LG·하이브·크래프톤 등 대기업·IT기업·엔터테인먼트사 등 기업들이 출자사(LP)로 참여해 해시드에 투자를 맡겼다. 결성 금액은 2400억원. 작년 만들어진 모든 벤처펀드 중 두번째로 금액이 크고, 모태펀드(정부출자) 없이 100% 순수 민간자금으로 구성됐다. 쟁쟁한 기업들이 돈을 맡긴 이유는 해시드가 블록체인이라는 미래 먹거리 기술의 누구보다 빨리 발굴하기 때문이다. 해시드 펀드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에 해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4곳이나 나왔고, 지난 3월엔 세계에서 가장 비싼 NFT(대체불가능토큰) ‘BAYC’를 만든 미국 유가랩스에 지분 투자를 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동남아 등 글로벌 암호화폐 업계에서 해시드는 ‘아시아 암호화폐의 거물 투자사’로 통한다.

회사의 창업자는 김서준(38) 대표. “달러와 짐바브웨 화폐는 매커니즘이 다르지 않고,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권력은 암호화폐로 간다”는 주장을 펼치는 그는 암호화폐와 가장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지지자다. 포항공대를 다니다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김 대표는 2015년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을 만나고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이더리움에 투자를 했고, 당시 이더리움의 1개당 가격은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현재 이더리움의 가치는 2800달러. 그는 업계에서 ‘한국에서 암호화폐로 가장 많은 자산을 번 인물’로 꼽히지만 “현금으로 바꾼 적이 거의 없고, 앞으로 계속 보유할 생각”이라며 자산 규모를 공개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나홀로 암호화폐 쇄국정책을 펼치는 한국은 동남아·인도보다 이 시장의 저변과 기술력에서 뒤쳐지고 있어, 미래 먹거리와 기술 패권을 내주게 될 것”이라며 지적한다.

해시드 김서준 대표. /박상훈 기자

암호화폐에 대한 확신은 어디서 나오나. 가격 상승 때문인가.

“암호화폐는 프로토콜 경제의 수단이다. 프로토콜 경제가 확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용어인 프로토콜은 사전적 의미로 ‘규칙’, 프로그램을 통해 ‘A라는 값을 넣으면 B가 나온다’는 시스템이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 이유는 제멋대로 동작하지 않고 정해진 함수와 코드대로 움직인다는 신뢰에서 비롯됐다. 현실의 경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것이 의사결정권자의 자의적인 판단과 욕심에 의해 결정되고 제도적인 장애물이 많다. 반대로 내가 기여한만큼 투명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경제 시스템, 그것이 프로토콜 경제다.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비트코인이 현실 경제보다 무엇이 낫다는 것인가.

“쿠팡 상장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쿠팡 창업자와 초기 투자 기관뿐이다. 주식이 상장되기 전, 노동자와 이용자들은 쿠팡 주식을 살 기회조차 없었다. 쿠팡 성장에 이들이 기여를 했는데도 말이다. 우버 드라이버도 우버의 성장에 기여했지만 우버 주식을 받지 못했다. 유튜브로 개인 창작자들이 돈을 번다고 하지만 수익 배분율은 구글이 결정한다. 상사를 잘못 만나면 일을 잘해도 승진을 못할 수 있다. 정치인도 공약을 수시로 어긴다. 모두 프로토콜이 아니라 발생하는 문제다.

반면 비트코인은 ‘주식회사 비트코인’이 있던 것도 아니고, 창시자 또한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비트코인은 탄생 시점부터 자신의 컴퓨터를 이용해 연산을 해주는 대가로 누구나 공평하게 비트코인을 분배받았다. ‘비트코인을 송금하는 암호를 푸는데 내 컴퓨터가 기여한 정도’가 블록체인에 남아 증명되면, 약속된만큼 내 계좌에 비트코인이 입금되는 구조다. 비트코인이 탄생한 시점부터 누구나 참여 가능했던 탈중앙화 경제시스템이다. DAO(탈중앙화된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이자, 프로토콜 경제였던 것이다.”

비트코인은 송금 기능 뿐이고, 현실 쓰임새가 없어 결국 비트코인을 현실의 화폐로 바꿔야 한다.

“비트코인은 최초의 모델로서 한계가 있다. 지금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한 다양한 프로토콜 경제가 등장했다. 예컨대 컴파운드 프로토콜이라는 암호화폐 금융시장이 있다. 암호화폐를 시장에 예금처럼 맡길 수 있고, 내 암호화폐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처럼 이자율을 정하진 않는다. 시스템이 매일 예금자의 풀, 대출자의 풀을 계산해 예금과 담보 자산에 대한 이자율을 메기고, 주식처럼 자산구축에 기여한 만큼 암호화폐를 주기도 한다. 은행이 없어도 블록체인으로 모든 참여자들에게 분산저장되기 때문에 나의 예금·대출 기록이 위조되거나 사라질 염려도 없다. 은행을 대체할 새로운 네크워크다.

비트코인과 기존 암호화폐는 초당 수십~수백건의 송금 밖에 처리하지 못해 화폐 자체로서 지불·결제 수단으로 쓰이는데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이 송금 속도를 수만건 수준까지 끌어올린 새로운 암호화폐가 나오고 있다. 페이팔·스퀘어 같은 미국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받을 사람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암호화폐를 수신처에 먼저 송금해주고, 나중에 보낸 사람에게 암호화폐를 받는 송금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기술과 제도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무한한 가능성은 이제 시작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해도, 이렇게 가격이 널뛰는 화폐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이 거품이 끼면 공매도로 거품을 걷어내는 등 가격을 안정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관투자자들은 회사에 공시와 컨퍼런스콜 등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하고 그 정보가 개인에게도 공개된다. 주식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적인 이유다. 반면 암호화폐는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갔다. 소위 ‘작전주’들은 개미를 타깃으로 하지 않는가. 개미만 있는 암호화폐 시장에 거품이 끼고 작전 코인이 성행했던 이유다. 다행히 최근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사들이 암호화폐 펀드를 운용하는 등 기관들이 진입하고 있다. 단, 한국은 기관의 코인 투자가 불가능하다. 암호화폐 붐이 일어났을 때, 한국은 남의 잔치만 구경해야 한다.”

한국에도 암호화폐 스타트업들이 있다.

“한국 암호화폐 스타트업 중 코인을 발행(ICO)한 회사들은 모두 싱가포르 등 코인 발행이 가능한 해외에 법인을 두고 있다. 한국은 코인 발행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회사를 만들고, 기술을 개발했는데도 해외에서 코인 발행하고 세금 내고, 비용을 지불한다. 한국에서 개발자들이 일을 할 뿐, 법인의 핵심은 해외에 둘 수 밖에 없다. 제조업으로 치면 기술은 한국에 있는데, 공장을 해외에만 짓는 셈이다. 한국은 암호화폐의 소비 국가일 뿐, 생산 국가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선 투자자를 보호할 책임도 있다.

“규제를 푸는 것이 투자자 보호일 수도 있다. 예컨대 기관 투자를 허용하고 한국 자산운용사가 암호화폐 펀드를 운용하도록 허용한다. 개별 코인에 투자하는 것보다 개인 투자자에게 훨씬 안전하다. 기관은 개인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수집해 투자하기 때문이다. 국내 코인 발행 기업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한국어로 공시할 의무를 부여할 수도 있다. 작전 코인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암호화폐 쇄국정책 국가’다. 그냥 문을 걸어잠근 것이다. 미국은 옐런 재무장관이 ‘책임감 있는 혁신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해시드 펀드의 절반은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100점이라면 한국은 20점이고, 저변과 기술 모두 인도·동남아에 뒤쳐지고 있다.”

NFT는 디지털 소장품 이상의 가치가 있나.

“세상에는 대체 가능한 자산,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있다. 대표적으로 돈이 대체 가능한 자산이다. 늘 돈으로 다른 무엇을 산다. 돈을 버는 이유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으로 교환하고 싶기 때문이다.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이 집일 수도 있고, 세계여행이나 우주여행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돈으로 독특한 경험을, 누군가는 돈으로 좋은 교육을 받기도 한다. 돈 자체가 목적인 삶은 매우 불행하거나 거의 없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대체 가능한 자산이다. 하지만 개인이 정말 가치있다고 생각하거나, 대체 불가능한 자산을 통해 가치관을 드러내고 싶다면? 그런 활동이 가상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가장한다면 그 매개체는 NFT가 될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면 지상에는 모두 로봇이 다니고, 우리는 어쩌면 집 밖을 나갈 일이 거의 없어질 수도 있다. 재택근무를 하고, 이동은 자율주행이나 도심형항공기로 할 수도 있다. 그런 세상에선 메타버스가 곧 현실과 맞먹는 수준의 공간이 된다. 우리가 멋을 내려고 옷을 사듯이, 메타버스에서 NFT로 옷을 사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다. NFT가 소장이 아닌 소비의 대상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금융, NFT와 메타버스의 게임. 그 너머로 블록체인과 DAO가 확장할 수 있나.

“어린 시절 집에 486, 586 컴퓨터가 있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이 컴퓨터를 게임기로 썼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앱장터에서 게임을 다운받았고, 지금도 게임 매출이 더 크다. 게임은 노는 것, 금융은 가치있는 데이터가 움직이는 시장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글과 사진은 대부분 가치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스마트폰에 배달의 민족도 나와서 모두가 배달을 시키고, 호텔이나 쇼핑도 앱으로 하게 됐다. 블록체인과 DAO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현실의 거버넌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의사결정 체제까지 영향을 줄 것이다.”

블록체인과 DAO가 현실 정치까지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지탱해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정치인들의 공약은 바뀌고, 내가 표를 줄 때 기대했던 정치인과 현실 정치인은 다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엔 불가능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대의민주주의의 제약을 극복하게 해줄 수 있다.

이미 DAO 기반의 암호화폐 예금 시스템에선 새로운 거버넌스를 시험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코인을 연산력을 제공하는 노드에게 일정 기간 맡긴다. 어떤 은행에 예금하는 것과 같은 이치고, 노드는 기간에 비례에 이자로 코인을 준다. 각 노드는 코인의 운영방식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에 보팅 파워를 갖는다. 노드의 보팅 파워는 내가 갖고 있는 자산에 비례한다. 결국 많은 코인을 예금 받은 은행이 더 큰 힘을 갖고 코인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 대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각 노드는 더 많은 보팅 파워를 갖기 위해 이자율을 두고 경쟁한다.

현실 정치에 이런 과정을 대입해보라. 우리가 투표를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차이가 있다면 코인을 맡긴 사람은 언제든 코인을 다른 노드에 예금할 수 있다. 만약 국회를 블록체인과 DAO로 구성한다면? 일 못하는 국회의원, 실망한 국회의원에게 내 한표를 빼서 다른 정치인이나 정당에 다시 내 표를 위임할 수 있다. 그리고 국회에서의 1표의 가치도 다르게 할 수 있다. 1000만표 지지받은 국회의원의 의결권 하나는 다른 의결권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기도 한다. 이런 블록체인 기반 정치 거버넌스는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해시드는 동남아와 인도에도 투자를 한다.

“그 열기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한국은 블록체인과 DAO 기반 개발자 아니라도, 기존 중앙화된 플랫폼의 웹을 설계하는 개발자도 충분히 많은 돈을 받는다. 하지만 베트남, 인도 등 국가에선 블록체인 개발자의 대우가 다른 개발자의 10배 이상에 달한다. 마치 중국이 내연기관차를 건너뛰고 5G,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핀테크로 넘어갔듯이. 인도와 동남아도 개발 생태계가 한 단계를 통으로 건너뛰려고 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가고 있는 국가다.”

한국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국가는 인프라만 깔아주면 된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초고속인터넷을 깔았더니 IT산업이 자생적으로 컸다. 두가지를 바란다. 하나는 암호화폐에 대한 제도화다. 두번째는 교육이다.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도 DAO와 블록체인 기술의 올바른 쓰임새를 이해해야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