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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을 대표하는 스타트업들도 구조 조정에 나설 만큼 업계 전체가 얼어붙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술력과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스타트업은 더 빛이 납니다. 우리는 내년에 올해보다 20% 이상 많은 2500억원가량을 이런 스타트업들을 찾아 투자할 겁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박기호 LB 인베스트먼트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는 혹한기가 역설적으로 창업과 투자에는 최적의 타이밍”이라며 “스타트업 옥석(玉石) 가리기가 이제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지금 같은 불황은 투자자뿐 아니라 창업자에게도 적기(適期)”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불황에 진입해서 호황에 수익을 실현하는 것은 투자와 창업 모두 해당한다”고요.

LB인베스트먼트는 운용 자산이 1조원을 넘는 국내 대표 벤처캐피털입니다.  BTS(방탄소년단)의 기획사 하이브, 글로벌 히트작 ‘검은사막’을 만든 게임사 펄어비스 등이 이 회사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1988년부터 30년 넘는 벤처투자 업계 경력을 가진 박 대표는 2003년부터 LB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해 주요 투자를 이끌어왔습니다. 10년차쯤 닷컴 버블, 20년차에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굵직한 다운턴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가 바라보는 현재 스타트업 시장과 투자 계획을 들어봤습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 /고운호 기자

◇“바닥 아직 조금더 남았지만, 지금이 투자도 창업도 진입할 때”

-한국 스타트업 시장, 유독 더 힘든 것일까요. 글로벌 스타트업들 모두 이렇게 혹한기일까요.

”2020년과 2021년 스타트업 투자금액을 비교하면 2배가 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요. 그런데 한국은 그렇게 늘어나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가 급격하게 침체했습니다. 충분한 실탄을 준비하지 못한 스타트업들에게는 더 힘든 시기가 된 것입니다.”

-지금 바닥 아래 지하실이 더 있습니까? 바닥이 끝나야 스타트업들에게도 자금이 조달이 될 텐데요.

“VC통계를 살펴보면 미국 같은 경우 펀드레이징 규모가 크게 줄지는 않았습니다. 주식시장보다 VC가 선행하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경우 바닥에 근접해가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미국을 제외한, 한국을 포함한 국가에서 다운턴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내년까지는 침체가 계속 될 것이라 봅니다. VC의 경우에도 전부 펀드레이징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극화가 심해질 뿐이지요. 루키 하우스가 재원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고요, 투자사 모두가 어려운 상황은 아닙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스타트업 투자에 어느정도 봄이 찾아올 것이라 봅니다. 우선 한국의 벤처펀드는 만기가 짧은 편이라 마냥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펀드를 만들면 초기에 투자를 해야 수익이 나고요. 물론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급격하게 회복이 쉽진 않겠지만, 유망 분야를 중심으로 굵직한 투자가 하나둘 나올 것이라 봅니다.

그기간  스타트업끼리 수평적인 M&A가 꽤나 일어날 것이고, 진짜 잘하는 스타트업이 오히려 몸집을 불려서 더 잘 될 수도 있고요. 다만 스타트업이 IPO를 통해 수익실현을 하는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계획했던 시점보다 3년 이상 걸릴 수도 있어요. 이미 사이즈가 커진 회사들은 이 기간을 어떻게 현명하게 보낼 것인지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반기 투자를 많이 하셨다. 올해 총 200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고요.

“내년에는 올해보다 20% 정도 더 할 것입니다. 2500억원쯤 투자할 계획입니다. 올해 2000억원 이상 규모의 펀드도 지난달 조성이 성공적으로 됐습니다. 기존 운영하던 펀드도 투자금이 아직 남았습니다. 멤버들에게도 내년, 내후년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라고 했습니다. 시장에서 ‘LB가 왜 이렇게 적극적이냐’는 소리 듣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기회다? 역발상인가요.

“침체기, 불황에서 시작해 견디고 호황에서 수익을 누리는 것은 투자와 창업 모두에 적용되는 공통 룰입니다. 스타트업들에게도 자금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조정기에 LB가 이미 투자했던 회사들이 치고나갈 수 있고, 새로운 포트폴리오사에게도 실탄을 대줄 수 있어요. 기업이 재원이 필요할 때 자금을 투입해야지, 체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나서 자금을 대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긴 파트너십 관계와 시장의 롱텀뷰를 봤을 때, 내년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계속 해야합니다.

창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펀딩이 어렵다고 두려워할 때가 아닙니다. 시장이 어려울 때 펀딩? 어렵죠. 그런데 양면성이 있습니다. 기회도 훨씬 많습니다. 재작년 같은 호황에 창업하면 재원조달만 쉬울 뿐이지 창업기업도 많아 경쟁도 훨씬 치열합니다.  지금 오히려 힘들게라도 펀딩받을 BM과 기술이 있다?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고, 다시 스타트업 호황이 찾아오면 지분 덜 희석시키면서 빨리 성장하는 회사가 될 겁니다.

투자도 창업도 가장 힘든 것이 호황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불황이 오면 다시 회복이 정말 어렵습니다. 작년 한해 유니콘이 글로벌 500개 정도 나왔습니다. 올해 하반기? 20개 이하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포인트는 한번 유니콘이 됐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진 회사들. 또다시 유니콘으로 회복하는 회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케이스 거의 못 봤습니다.

무엇보다 100~150억원 아래의 시리즈 A 이하, 창업 초기 기업들의 가치는 그 이하로 떨어뜨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팁스나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들도 잘 되어 있고요. 투자자 관점에서 이제 창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겐 내년이 충분히 시작할만한 타이밍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향후 유망분야는 SaaS, AI, K콘텐츠”

-그렇다면 올해 유망하게 보고 투자를 많이 한 분야는 어디일까요.

“올해 전체 투자금의 10% 정도를 SaaS 스타트업에 했습니다. 기업들이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보려는 경기 침체기에선 비용 감소는 물론, 업무 효율화까지 도움을 주는 기술들이 각광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B2B SaaS가 그래서 더 각광을 받을 것이고요.

특히 한국의 SaaS 스타트업들은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과거의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 저는 투자 잘 안 했습니다. 솔루션 한번 공급하면 끝나고, 가격 후려치기 당하고, 과거의 소프트웨어 시장은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제 나타난 SaaS 스타트업들은 다릅니다. 클라우드 덕분에 글로벌 진출이 수월하고, 끊임없이 프로덕트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서비스의 개념으로 고객사를 상대할 수 있어요.

비용 절감 차원에선 AI도 유망합니다. 거창한 AI보다는 당장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AI가 유망할 것으로 봐요. 예컨대 물류 AI, 스마트팩토리 AI 등과 같은 기술이요.  단순 연구용 AI가 아니라 뾰족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AI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AI 기업이라면 투자가 수월할 겁니다. 작년 투자의 3분의 1 이상에 AI, SaaS 등 테크 기업이었는데 올해는 그 이상으로 투자할 겁니다.”

-하이브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올해 K콘텐츠 기업의 전망은요?

“여전히 유망합니다. K콘텐츠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요. 단, 과거처럼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K콘텐츠 기업들이 각광을 받을겁니다. 예컨대 콘텐츠와 커머스의 결합, 콘텐츠와 외식 프랜차이즈의 결합, 콘텐츠와 패션의 결합 등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의 영역이 열릴 것입니다. 분명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이 지점을 파고 들어 성공을 거둘 회사가 나올겁니다. 콘텐츠 기업도 투자 대상입니다.”

-소부장 스타트업도 유망 분야로 꼽으셨다

“공급망 위기, 미중 갈등은 소부장 스타트업, 특히 딥테크 스타트업들에게는 큰 기회입니다. 삼성을 중심으로한 반도체 공급망이든, 2차전지 공급망이든 어디든 독자적인 기술을 갖고 확실한 부품을 댈 수 있는 기업은 이번 불황에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기술이 독보적이라면 남들보다 투자유치와 상장에도 유리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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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심사 때 꼭 보는 창업가의 능력은?

-고금리 시대다. 대체투자 성격을 가진 VC 펀드레이징이 계속 잘 될 수 있을까요

-최근 2년간 버블이었다는 말도 많았는데, 투자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투자를 심사할 때, 꼭 보는 창업가의 능력이나 포인트가 있다면요.

-중국에 꽤 이른 시점부터 투자를 하셨다. 계속 해외벤처투자는 유망하게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