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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투자는 머리로 따질게 많다. 수억원씩 돈이 오가는 일이다 보니 팀 구성이나 시장 접근 전략, 성장성 등을 면밀하게 살피고 뜯어본다. 스스로 납득해도 끝이 아니다. 이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갖추고 다른 심사역을 설득하는 과정을 또 거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대다수의 스타트업에게는 좋은 결과를 전해주기 어렵다.
그런데 2019년 가을 카이스트에서 만난 ‘트루밸류’는 머리로 판단하는 투자 기준에서 보면 애매한 팀이었다. ‘청소년의 꿈을 응원한다’는 사업 아이템은 현실과 동떨어진 듯 보였고, 명확한 수익모델도 찾기 어려웠다. 심지어 팀원들은 군 입대를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정주영 대표는 이름과 달리(?) 사업가보다는 선량하고 열정 넘치는 교육자에 가까운 캐릭터로 보였다. 투자심사 과정에서 우리말고 다른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듯 투자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가득했지만, 트루밸류는 어쩐지 ‘가슴’이 투자해야 한다고 외치는 곳이었다. 당시 이 팀은 앱 같은 정식 서비스도 없이 현장을 직접 뛰며 청소년을 위한 진로교육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들의 피드백을 담은 A4 용지를 산더미처럼 들고왔다. 자료를 한장 한장 넘기며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설명하는 눈빛과 표정에는 정말 그들의 말처럼 꿈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진정성을 갖고 임한다면 결코 사업을 중간에 포기할 것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 투자하려고 블루포인트가 만들어진 것인데…” 그렇게 2019년 겨울 트루밸류에 시드 투자를 결정했다.
정 대표는 흔히 말하는 ‘영재’로 분류되는 삶을 살아온 이였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1기로 졸업하고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에 진학하는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만큼 ‘성적지상주의’의 폐해를 온몸으로 느껴왔고, 학업적 성취가 진로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됐다. 무엇보다 청소년이 필요한 것이 그들의 꿈에 대한 ‘응원’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봉사활동으로 청소년에 대한 진로상담을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업으로 이어졌다. 진로상담은 누구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뾰족한 ‘킬러 솔루션’이 없는 시장이다. 입시라는 거대 현실 앞에서 학교의 선생님들은 진로상담과 진학지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학생들 또한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지상과제에 사로잡혀, 자신의 미래를 면밀히 설계하고 그려가는 과정이 낯설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학생 2만2000여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희망 직업’이 없는 학생 비율은 초등학생 19.3%, 중학생은 38.2%, 고등학생은 27.2%로 나타난다. 현재 30대 중반인 정 대표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교육현장은 변화가 없는 셈이다. 트루밸류는 이런 상황을 청소년들에게 가장 익숙한 플랫폼인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와 ‘응원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A4 용지에 켜켜이 담겼던 정 대표의 진로상담 노하우는 지난해 5월 정식 출시된 ‘드림어필’ 앱으로 이어졌다. 드림어필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를 위한 실천을 기록한다. 마치 WBC의 MVP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만다라트’(Mandal-art)를 작성한 것처럼, 큰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노력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드림어필이라는 SNS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자극을 받으며 실천을 누적해 나간다.
드림어필에서의 활동명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전달해주는 천체물리학자’,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사진작가’ 등 개성을 담을 수 있으면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꿈명칭으로 통한다. 학생들은 스스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록하는 과정 중에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 팬을 하나 둘 만나며 즐거움을 느끼고 서로를 응원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학교 생활기록부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진정성 있는 성장기록이 남게 되는 셈이다.
학생의 미래를 고민하는 선생님이나 실력과 태도를 고루 갖춘 인재를 찾는 기업 입장에서는 학생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즉각 확인할 수 있어, 그야말로 세계 최대의 비즈니스 SNS이자 온라인 이력서인 ‘링크드인’의 청소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포인트가 여러 고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도 이 같은 진로 데이터의 축적이었다. 아이들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심지어 아이들의 성격이나 취향까지 드림어필에 쌓인 데이터를 통해 한눈에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복잡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회사가 원하는 인재를 맞춤으로 뽑을 수 있다. 무엇보다 누적된 개별 데이터를 통해 정밀한 타겟광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SNS로서의 비즈니스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꿈 관련 상품, 학원, 사회적 기금 등 다양한 영역과 연계할 수 있어 확장성도 무궁무진하다. 투자 당시의 우려와 달리 성장세도 가파르다. 드림어필은 지난해 기준 573개 학교에서 3만 명이 넘는 학생이 이용 중이다. 11만번의 실천 인증과 100만회의 응원 횟수에서 볼 수 있듯 작은 실천에도 응원하는 문화속에서 실천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실천의 생활화 및 실천수준의 상향평준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은 활발한 응원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의 팬이 되고, 셀럽이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하고 있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아지트’, ‘따뜻한 공간이자 든든한 지원군’, ‘매일 출석하고 싶은 놀이터’ 등으로 드림어필을 표현하며 서비스에 대한 팬심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정식버전이 출시된 지 불과 7개월 만에 응원의 경쟁력을 증명해낸 셈이다.
전국에 11,700개가 넘는 초·중·고등학교가 있는만큼, 드림어필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진로에 대한 기록이라는 서비스의 특성상 사용주기가 길어 초·중·고부터 이용할 경우 자연스럽게 대학생, 취준생까지 성장에 따라 사용자가 늘어날 수 있다. 현재 드림어필은 성장케어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고 전국 학교 대상으로 영업망을 확대하며 획기적인 스마트 진로교육 솔루션 제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이제 막 꿈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유저들이 더 쉽게 시작해볼 수 있도록 AI 기술을 도입하여 직업별 필수역량과 개인의 선호가치를 고려한 최적의 목표 및 실천사례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며 궁극적으로는 교육과 성장이라는 공통의 언어는 있지만, 유사 서비스가 없는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까지도 준비중이다.
2020년 여름, 마땅한 사무실을 못 찾아 블루포인트 사무실을 빌려 쓰던 트루밸류는 어느덧 많은 학생들의 꿈을 짊어진 기업으로 돌아왔다. 정 대표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서비스처럼 꿈을 이루기 위한 실천들을 꾸준히 보여줬다. 앞으로도 ‘모든 인재와의 필수적인 연결점’이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다가갈 것이라고 믿는다.
드림어필을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린 시절 꿈을 응원받고 이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인재가 되었을 수도? 만약 그때 드림어필을 썼다면 활동명은 어떻게 했을지도 생각해본다. 지금도 항상 노력 중인 ‘어려울 때 생각나는 투자자’로 정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즐거운 상상. 언젠가는 드림어필에서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를 꿈꾸며 실천하던 청소년이 블루포인트에 투자 받으러 찾아오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