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사업이 보일러인 경동나비엔은 최근 SK매직과 가스·전기레인지·전기오븐 3개 사업 분야의 영업권을 약 400억원에 인수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동나비엔은 그동안 공기청정기 같은 환기시스템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이번 MOU 체결로 주방가전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경동나비엔은 생활가전 업체로 거듭나겠다며 ‘나비엔매직’이라는 상표권 출원까지 마쳤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국내 보일러 시장의 성장이 정체한 게 20년이 넘었고, 온수기나 숙면매트 같은 사업으로는 한계가 있어 회사의 사업구조를 생활가전 분야로 확장하게 된 것”이라며 “환기청정기나 주방 후드 같은 환기 시스템 분야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보일러와 가구, 소형 가전 등 내수(內需) 시장 의존도가 높던 기업들이 주력 사업의 비중을 과감히 줄이고, 신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변신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의 성장세가 멈추고,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심해진 탓에 주거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하던 기업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내수 시장만으론 생존이 어려워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늘었다.

◇주력 사업 줄이고, 색다른 제품군에 ‘도전장’

지금까진 주력 사업과 유사한 업종에 진출해 시장 확대를 꾀하는 기업이 많았다. 보일러업체가 난방매트 사업에, 밥솥 제조 업체가 정수기 사업에 진출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한계에 부딪히자 사업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제품군에 ‘도전장’을 내미는 기업이 많아졌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기존 사업만 고집하다가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특히 보일러, 주방가전, 가구 같은 제품은 사용 주기가 길고, 주택시장 경기에 매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내 집 장만이나 이사 같은 ‘이벤트’가 없다면 소파와 침대는 평균 5~8년 이상, 보일러는 10년마다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픽=김현국

밥솥으로 잘 알려진 쿠쿠홈시스는 1분기 중 ‘전기 머리 인두기’(고데기) 상품군을 새로 출시하기 위해 최근 ‘제트스타일러’라는 상표권을 출원했다. 그간 필터형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다가 2년 전부터 LED 마스크, 헤어드라이어를 선보이며 ‘홈뷰티’ 사업을 시작했다. 안마의자 업체인 바디프랜드는 ‘W얼음정수기’를 출시해 최근 싱가포르 등 해외에도 수출하고 있다.

정수기 렌털 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코웨이는 2022년 12월 매트리스와 안마의자 브랜드 ‘비렉스’를 출시하고 사업을 키우고 있다. 1년 만에 매트리스 2종, 침대프레임 2종, 안마의자 3종을 선보이고 전국 6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에프엔가이드는 코웨이는 침대·안마의자 사업이 안착하면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6774억원) 대비 10% 늘어난 747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체를 겪던 보일러업계도 마찬가지다. 귀뚜라미는 지난해 ‘카본보드 온돌’을 출시하면서 건자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카본보드 온돌은 바닥뿐만 아니라 벽면에 설치해 난방 효율을 높이고, 온수 배관 방식의 일반적인 난방 설비보다 공사 기간도 짧다. 반대로 건자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KCC는 실리콘 사업을 강화하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 속 활로를 찾고 있다.

◇반려동물 가전·가구로 새 수요 창출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도 있다. 선풍기와 히터 등을 판매하는 신일전자는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는 것에 주목해 반려동물용 공기청정기·욕조·드라이기 등을 새로 선보였다. 가구업체 에넥스는 지난해 ‘펫토리’라는 이름으로 반려동물이 사용하는 침대, 식탁 등을 출시했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많다. 세라젬은 2022년 미국에 처음으로 안마의자 직영점을 열었고, 지난해엔 시카고 등 4곳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일본과 부탄 등 일부 국가에만 냉·난방제품을 수출하던 신일전자는 북미와 유럽, 호주시장에 새로 도전장을 냈다. 코웨이는 얼음정수기를 앞세워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