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왼쪽)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여야 원내대표를 찾아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법안 처리를 요청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다./연합뉴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전면 시행될 상황에서 정부와 중소기업계가 재차 적용 유예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대로라면 중소기업뿐 아니라 5인 이상을 고용한 빵집, 찜질방, 식당 등 83만여 곳이 새로 이 법을 적용받는데, 대부분 제대로 모르고 있고 알더라도 준비가 안 돼 큰 혼란이 예상된다. 법안 시행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라 25일 오후 열릴 본회의가 사실상 법 시행 전 마지막 유예 기회인데, 여야가 책임 공방만 계속해 법안이 처리될지 미지수다.

정부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을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유예를 재차 촉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세 부처 장관은 “50인 미만 기업 대상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이 이제 단 사흘 남았다”며 “24일 국회 법사위는 지난해 9월 7일 발의한 50인 미만 기업 추가 적용 유예에 관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이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반적 경기 위축 등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현장의 절실한 호소에 귀 기울이고 반영할 마지막 기회를 앞두고, 다시 한번 간곡히 국회에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도 이날 국회를 찾아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고,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경제계도 한목소리를 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하면 사업주가 징역이나 벌금형의 처벌을 받게 하는 법이다. 이 법의 확대 시행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은 현재(24일 오후 6시 기준) 여야 간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국회 법사위에 묶여 있다. 이날 법사위 전체 회의가 열려 광주광역시와 대구를 잇는 달빛철도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내용은 논의조차 안 됐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25일 오전까지라도 최대한 협의해보겠다”고 했지만 국회 본회의 상정이 사실상 무산될 판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적용유예 개정안 입법 촉구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뉴스1

이대로 법이 시행되면 오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가 5~49명인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를 갖춰야 한다. 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가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개인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고, 법인은 50억원 이하 벌금과 손해액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만 한다. 당초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 시행됐는데 5~49인 사업장에 대해선 2년 유예 기간을 뒀다. 이번에 새롭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을 받게 되는 사업장은 총 83만7000곳으로, 전체 사업장의 24%에 이르고, 종사자는 800만명이다.

그래픽=양인성

경제계에 따르면 대다수 중소기업은 이 법에 대응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절대적인 시간, 인력, 비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안전 관리인을 뽑거나 시설을 교체하는 현장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고금리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 소기업들은 “언제 범법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느끼며 경영 활동이 더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폐업하거나, 법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 상근 직원들을 해고하는 일도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모호해 제대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재해 예방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해야 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인지 명시되지 않아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하는 자영업자들이 대비는커녕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이창호 전국호프연합회 회장은 “많은 호프집에서 알바생을 포함해 직원을 5명 이상 고용 중인데, 대부분은 이 법이 대기업에나 해당하는 남 얘기로 안다”며 “동네 식당엔 손님들도 오가고, 크고 작은 사고를 모두 사업주가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별다른 지침이나 홍보도 없이 갑자기 적용한다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부분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자인 줄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처벌보다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전북에서 직원 15명을 고용해 전기안전관리업을 하는 전안균(64)씨는 “자영업자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명이 함께 가야 하는 현장에 1명이 가 인건비를 줄이거나, 노후 설비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며 “낡은 설비를 교체하고, 사고를 막을 제도부터 먼저 갖춰 놓고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