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 2호가 ‘게임과 콘텐츠 시장의 미래’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로 꼽는 것은 레디 플레이어 원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덕후력을 몽땅 쏟아넣어 만든 영화고, 레터에도 이미 수차례 등장했죠. 이 영화에는 재밌는 장비가 등장합니다. 다름아닌 햅틱 수트, VR 게임 유저들이 가상 세계에서 느끼는 통증을 비롯해 온도 변화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영화 속에선 2등 게임사가 주력으로 출시하는 장비로, 상당히 고가로 묘사됩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된 미래 사회에선 고소득 부자들이 생생한 VR 햅틱 장비를 사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햅틱 장비가 없거나 장비 수준이 낮은 것들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요.
이런 VR 햅틱 장비를 만드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아니, VR도 보급이 안 됐는데 벌써부터 VR 웨어러블 햅틱 디바이스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시장의 1등이기도 하고, CES에 나가 매년 주목을 받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주목도에 비해 여전히 시장이 작고, 매출도 수십억원 수준입니다. 하지만 2호가 비햅틱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VR 햅틱의 기술 표준을 퍼뜨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기술과 분야의 업사이드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비햅틱스의 곽기욱 창업자를 인터뷰했습니다.
1. 진동이 시청각과 만다면 ‘촉각’으로...일종의 감각 간 일치감 극대
“VR과 AR에서 시청각이 아닌 촉각을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저는 박사과정에서 시청각 기반의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에 언제쯤 촉각이 더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왔어요. 그러다 2014년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인수를 계기로 이제는 HCI에 촉각이 도입될 때가 됐다고 판단했죠.그래서 2015년, VR이나 게임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HCI에 촉각을 접목시키고자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촉각을 전달하기 위해선 웨어러블 기기가 필요하고, 이 기기와 기존 시청각 콘텐츠를 연결할 소프트웨어, 표준, 프로토콜 등이 뒷받침돼야 해요. 그래서 현재 하드웨어 개발과 함께 소프트웨어 및 생태계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제품으로는 장갑형 햅틱 기기인 ‘택트 글러브(Tact Glove)’와 조끼형 기기 ‘택트 수트(Tact Suit)’가 있어요. ‘촉각’을 뜻하는 ‘Tactile’에서 이름을 따왔죠.”
-VR 환경에서 촉각을 준다면 별도의 기술이 필요한가요? VR 환경에서의 촉각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이고, 왜 필요한지가 궁금합니다.
“트래킹이나 입력 기술 개발은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로 HMD나 대형 플랫폼 회사들의 표준을 따르고 있죠. 대신 저희는 키보드나 마우스 대신 몸의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인터랙션에서 피드백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예전엔 마우스 클릭에 굳이 손이나 몸에서 느낌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지만, VR/AR이나 몰입형 콘텐츠에선 직접 몸을 움직여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서 실제로 잡거나 부딪히는 느낌이 부재합니다. 비햅틱스는 이 갭을 메우고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개발 중이에요.
실제 VR 사용자들의 니즈를 보면, VR에서 360도로 둘러보고 위아래로 살펴보는 공간 몰입감은 충분히 느끼지만, 실제와 같은 환경에서 온전한 인터랙션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있어요. 예컨대 VR FPS 게임에서 뒤에서 총을 맞았을 때, 시각적으로만 정보를 주기엔 한계가 있죠. 과거 1인칭 2D 게임에선 화면 UI로 간단히 피격 정보를 줄 수 있었어요. 체력바가 줄어들거나 화면에 빨갛게 변하거나요. 몰입감이 중요한 VR 환경에선 UI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에 몰입된 환경에서 자신이 피격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럴때 촉각이 새로운 정보가 됩니다.”
-VR 게임에서 굳이 촉각을 통해 피격당하는 정보를 줄 필요가 있을까요? 청각이나 체력 게이지바 등으로도 묘사가 가능한데요.
“VR 게이밍 환경에서는 총알에 맞는 등의 피격 정보를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 전달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시선은 한 곳만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시야 밖의 정보는 청각이나 촉각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특히 피격 여부 판단은 촉각의 역할이 크죠.사실 이런 피격 감지의 대체 수단이 마땅치 않았기에 초기에 택트 글러브가 VR 아케이드나 게이머들에게 주목 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피격뿐 아니라 VR 내에서 물체를 잡거나, 바람이 불거나, 음료수를 마실 때 등 다양한 상호작용이 촉각과 함께 전달되어야 실제같은 몰입감을 줄 수 있고, 실제 같은 몰입감을 주려고 했고, 글러브가 아니라 수트 방식을 개발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단순히 진동을 촉각으로 인지한다? 일종의 착시 같은 현상이 아닐까요.
“촉각을 시청각처럼 정확히 모사하는 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택스트 개발 초기부터 실제 감각을 100% 재현하기보다는, 시청각 콘텐츠와 잘 일치된 진동 패턴을 설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촉각만 따로 보면 그저 위치, 세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진동 패턴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시청각 정보와 적절한 타이밍에 제시되면 우리 뇌가 마치 실제 감각을 느끼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되죠. 시각적 자극이 위아래로 이동할 때 촉각 자극도 그에 맞춰 위아래로 변화하면, 뇌는 그 유사성을 바탕으로 실제감을 판단하는 거예요.
물론 그 진동 패턴 자체가 실제 총알 맞는 느낌, 음료수 캔 여는 느낌, 벌에 쏘이는 느낌 등과 100% 일치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영상, 음향과의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충분히 현실같은 경험으로 느껴질 수 있죠. 비햅틱스의 제품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감각 간 일치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실제 감각과의 물리적 유사성보다는, 인지적 몰입감 강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죠.”
2. VR 햅틱 기술의 표준을 제시
-고객 설득의 어려운 점, ‘VR용 햅틱 디바이스가 없으면 생기는 불편함이나 허전함’을 말해도 사용자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없으니까요.
“이 분야 사업이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한데요. 사용자 반응을 보면 한 번만 햅틱 장비를 경험한 분들은 장비 없이는 VR을 제대로 즐기기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치 촉각 피드백이 사라지면 그저 버튼만 누르는 것 같고 몰입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거죠. 하지만 문제는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에겐 이 효과를 설명하거나 상상하도록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VR처럼 고가형과 저가형의 몰입감 차이가 크듯, 촉각 기기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고가형 기기 중에는 통증까지 느낄 수 있는 수준도 있다고 하던데, 저희 제품은 인증 기기로서 통증까지 전달하진 않습니다. 다만 조끼에 앞뒤로 20개씩 총 40개의 모터가 부착돼 강력한 진동을 전달할 순 있어요. 전시에서 햅틱 기능이 있는 총과 없는 총을 동시에 준비해 체험할 기회를 주곤 하는데, 햅틱이 더해지면 현저히 몰입감이 높아진다는 피드백을 많이 듣습니다. 단순히 총을 쏘는 행위인데도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한 번 경험해 보면 바로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지만, 아직 직접 써보지 않은 분들에겐 VR 촉각의 중요성과 효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가장 큰 난제죠.”
-진동으로 촉각을 전달한다면, 이 진동이 매우 단순하다면 게임 이용자들은 금방 지루함을 느낄 겁니다. 이 정도 기기를 살 고객이라면 대단한 매니아일테니까요. 어느 정도 진동의 디테일이 있나요.
“맞아요, 조끼뿐만 아니라 팔 기기까지 착용하면 총을 쏠 때 손과 어깨에서 동시에 반동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죠. 한 손으로 잡나 두 손으로 잡나에 따라서도 진동 패턴이 달라집니다. 이런 디테일한 표현력이 택트수트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기존에도 소리에 맞춰 진동을 주는 조끼 등은 있었지만, 대부분 저음에 반응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반면 택트 수트는 총을 쏘는 순간에만 정확히 진동을 주고, 잡는 방식에 따라 진동 패턴을 달리하는 등 콘텐츠에 맞춰 섬세한 진동을 보내주죠. 물론 이걸 구현하기 위해선 게임 개발 단계부터 촉각 표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데, 아직 업계에 촉각 표현을 위한 표준화된 개발 방식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발사들이 촉각 디자인을 손쉽게 적용하기 어렵죠.”
-기술 표준을 만들고 보급한다는 것은, 시장 개척의 이점도 있지만 비용과 어려움의 문제도 따릅니다. 그 상대가 글로벌 게임 개발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더더욱요.
“첫번째 원칙, ‘절대 자동화로는 안 된다’ 였습니다. 자동화라함은 예를 들어 게임 내 오디오 인식, 총 소리를 듣고 총소리로 인식해서 진동을 주는 방식 같은 것은 절대 안 된다였습니다. 화면 인식으로도 안 되고요. 비슷한 연구를 해봤지만 모두 오류가 존재했고, 결국 실제 콘텐츠 개발 단계에서 진동을 주는 코드가 들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개발사가 직접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부터 택스트 SDK를 활용해 촉각 표현을 설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죠. 외부에서 억지로 촉각을 입히려 들면 자연스러운 경험을 기대하긴 힘들 테니까요. 그래서 개발자 친화적인 SDK 제작에 공을 들였고, 포토샵 같은 직관적인 햅틱 에디터도 개발해 제공했습니다. 아무리 사용이 간편해도 햅틱 디자인에 시간을 별도로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그 부담을 최소화했고요. 비즈니스적으로는 VR 아케이드 시장을 노렸습니다. 개인에게 우선적으로 햅틱 디바이스를 대중화하기 어려우니, VR방이나 VR설비를 둔 아케이드 시장은 선도적으로 제품과 기술을 도입할 니즈가 있었으니까요,”
3. VR게임사들을 위한 CES 부스, 개발사와 윈-윈 전략
-시작부터 메타의 퀘스트와 같은 B2C 기기를 노린 시장이 아니었군요.
“네. 아케이드 사업자들에게 차별화된 재미를 위한 디바이스를 공급했고, 이를 계기로 VR 콘텐츠 개발 업체들 사이에서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9년 메타의 퀘스트가 출시되면서 사업도 B2C 영역으로 확장됐습니다. 다행히 아케이드 시장에서 비햅틱스의 햅틱 맞춤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본 개발자들이 시장에 점점 늘고 있었고, 이 분들이 자연스럽게 VR 게임 개발이나 여러 시장으로 뻗어 나가면서 마니아 영역에서 점차 대중화가 됐습니다. 메이저 개발사들도 이를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택트 수트를 도입하기 시작했고요. 저변을 또 넓힌 계기는… CES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CES 같은 대형 전시회에서 개발사 게임을 직접 시연해주는 식으로 홍보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죠.”
-그렇다면 CES에서 대형 부스를 비햅틱스가 열고, 햅틱 게임을 개발한 게임사들의 게임을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홍보해준다?
”네. 그 방법입니다. 개발자들에겐 CES가 매력적인 전시회이지만 게임 쇼가 아니다 보니 참가할 명분이 부족했는데, ‘우리가 부스를 차릴게, 게임을 업데이트해서 오면 돼’라고 제안하는 것이죠. 게임 개발사 입장에선 CES에서 제품을 홍보할 기회가 되니까 윈-윈 마케팅입니다. GDC(게임개발자대회) 같은 글로벌 쇼에도 자주 나가고요. 유튜브 쪽으로도 개발사와 협업을 하거나 공동 마케팅을 하면서 접점을 늘여가고 있습니다.”
-개발사를 설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수십만원의 햅틱 부가 장비를 구매하는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고객 베이스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VR에 열광하는 게임 매니아가 얼마나 되는가’입니다. 예,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최고 500달러까지는 비햅틱스의 햅틱 디바이스에 지불할 의사가 있는 분들이고요, 한번 빠져들면 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충성고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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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대한 심플하게 기술 표준 제시...핵심은 개발자들이 쓰기 편하게”
-햅틱 개발을 위한 SDK를 제공했다면, 일종의 기술 표준이나 양식도 없던 시장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그 표준과 기준을 제시했다는 이야기고요. 전 세계 개발사를 대상으로요?
-제품 가격이 상당히 고가입니다. 적어도 생생한 체험을 위해서 200달러 이상은 지출해야 하는군요.
-누적 판매량 혹은 매출은요?
5. VR게임 이용자 0.01%의 시장...그만큼 업사이드도 크다
-이 시장의 가장 큰 리스트는 ‘우리가 잘했다’와 관계없이 VR과 AR 등 장비의 대중화, 보급이 이뤄져야 시장이 커진다는 겁니다. 비햅틱스의 선전과 판매량 증대에 앞서, 메타와 애플의 VR, AR 기기 판매량 증가가 선행되어야 시장이 커진다는 것이죠.
-메타 VR 기기 사용자의 몇 % 정도가 비햅틱스의 장비를 경험했을까요.
-VR 게임 이상의 니즈가 시장에 숨어있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