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 거리의 한 골목에는 가게 10곳 중 3곳이 문을 닫고 ‘임대문의’ 안내를 써 붙였다. 이 거리는 주로 폐업한 자영업자들에게 사들인 중고 가구·가전을 새로 개업하는 이들에게 저렴하게 파는 ‘땡처리 시장’이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이 문 닫는 속도를 개업하는 이들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1980년대부터 자리 잡아 호황을 이뤄 온 이 거리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이상한 불황’이 시작된 것이다. 상인회에 가입한 점포도 2021년 115곳이었지만 올해는 96곳으로 3년 만에 약 16.5% 줄었다. 올해 폐업한 곳도 3곳이나 된다.
이곳에서 10년째 주방용품을 파는 이모(60)씨는 먼지 쌓인 스테인리스 그릇을 보며 “폐업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니 매출도 1년 전의 40% 수준으로 줄었다”며 “최신 모델을 사들이려고 창고에 쌓인 구형 모델은 고물상에 폐기물로 갖다 주기까지 한다”고 했다.
15년째 중고 그릇과 주방용품을 매입해 온 정모(70)씨는 올해부터 중고품을 아예 사들이지 않고 있다. 정씨는 “4평짜리 가게 월세가 300만원인데 중고품을 제값 주고 사들여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져 남은 물건만 팔기로 정했다”고 했다. 주방용 그릇을 30년째 파는 이모씨도 “적자는 간신히 면했지만, 올해는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를 받을 정도로 사정은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주방 도구 매장을 20년째 운영하는 권모(62)씨는 랩으로 싸인 1100리터급 업소용 냉장고들을 보며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이 10명도 채 안 되는데 그마저도 그릇 같은 주방용품을 낱개로 사가는 사람들뿐”이라고 했다.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상인회 관계자는 “대부분 월세가 적게는 300만~4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 수준인데, 손님이 줄어드니 저렴한 ‘덤핑(dumping)’ 물건 위주로 파는 고육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입도 코로나 전의 30~40%에 못 미치는 분위기인데 상인들이 이대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