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콜마 공장 - 17일 오전 세종시 전의면 한국콜마 관정화장품공장 포장실에서 근로자들이 선크림 제품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K화장품의 인기 상승과 함께 한국콜마의 수주 물량도 늘어나면서 이날 포장 공정에 쓰이는 컨베이어 벨트 11개 전부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신현종 기자

지난 17일 오전 10시쯤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한국콜마의 관정 화장품 공장 제2제조실. 믹서와 원리가 같은 1t짜리 대형 제조 설비 9개엔 MNF-○○○○, GML-□□□□ 등 모두 다 다른 ‘암호’가 적혀 있었다. 고객사와 제품 품목명을 표시한 것으로, 각 설비에서 M사의 선크림, G사의 로션, A사의 아이크림 등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분홍색 선로션을 제조하던 직원은 “원료들을 한데 넣고 섞는 단순한 작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잘못 제조하면 층 분리 현상이 일어나거나 점성이 달라져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한 제품을 만드는 데 30~40개 원료가 들어가는데, 어떤 비율로 배합할지, 어떤 순서와 속도로, 어느 온도에서 원료를 섞을지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기술이 들어간다”고 했다.

축구장 6개 크기(약 4만㎡)의 이 공장의 주요 생산 시설을 이날 본지에 공개됐다. 이곳에선 연간 국내외 900여 고객사의 기초 화장품 4억5000만개가 생산된다. 매출로는 7000억원 규모다. 이날 방문한 공장은 제조실 33개 설비, 포장실 11개의 생산 라인이 쉼 없이 ‘풀가동’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로레알, 에스티로더, 아르마니, 키엘 등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용기에 포장돼 전 세계로 수출된다.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 면세점, 영국 런던 해러즈 백화점,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 등 세계 주요 ‘뷰티 성지’에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팔리는 것이다. 한국콜마가 ‘화장품 업계의 TSMC’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래픽=김현국

◇한국엔 ‘화장품계 TSMC’가 있다

한국콜마는 반도체 업계의 TSMC처럼, 자체 브랜드는 없지만 기술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주문자들의 주문을 받아 위탁생산을 맡는 일종의 파운드리 업체다. 다른 말로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업체라고 한다. 전 세계 화장품 ODM 3대 기업인 한국콜마, 코스맥스, 인터코스(이탈리아) 중 두 곳이 한국에 있다. 1990년대 설립된 두 회사는 여러 글로벌 ODM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종합 화장품 회사로 변모하는 동안에도 ODM만을 고집해왔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경영 철학처럼 자체 브랜드를 만들면 장기적으로 고객사와 신뢰가 깨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ODM 업체들은 꾸준한 연구개발(R&D)로 독보적인 자체 기술력도 키워가고 있다. 두 업체 모두 전체 매출의 5~7% 수준을 R&D에 투자하며 전 세계 고객사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피부를 연구하고 있다. 수년간 각각 1000곳이 넘는 고객사 제품을 위탁 생산하면서 쌓은 데이터베이스양도 방대하다.

이 때문에 한국의 ODM 업체를 찾는 고객사들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콜마는 전년(170곳) 대비 48.8% 증가한 253곳과 신규 계약을 맺었다. 한국콜마 영업 담당자는 “월 평균 100여 고객사에서 오는 문의와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있고, 공장으로 투어를 오는 잠재 고객사도 늘어 직원들의 야근이 잦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콜마는 올 하반기 세종시 관정 화장품 공장을 2배 규모로 증설하고 미국에도 2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코스맥스 역시 올해 신규 문의가 폭증하면서 약 300곳 이상의 고객사를 추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문의가 폭증하면서 2022년 ‘코스맥스 재팬’을 설립한 데 이어 올해 중동, 인도, 아프리카, 남미 등 4개 지역을 대상으로 TF를 꾸리고 시장 개척에 나섰다.

◇‘K화장품’ 수출에 날개 달아준 ODM 업체

두 ODM 업체는 ‘K화장품’ 수출에도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최근 국내에선 인지도가 없던 ‘조선미녀’ ‘달바’ 등 중소·신생 화장품 브랜드까지 좋은 수출 실적을 내고 있는데, 이 배경엔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춘 콜마 같은 화장품 ODM 기업이 있다. 누구라도 아이디어와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그 아이디어를 ‘세계 최고’ 화장품으로 탄생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ODM 기업이 한국 중소 화장품 브랜드의 든든한 ‘뒷배’가 돼 주니, 작은 화장품 브랜드들은 생산이나 기술력 걱정 없이 ODM사의 기술력이 들어간 좋은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 덕에 국내 중소기업의 올해 1분기 화장품 수출은 15억5000만달러(약 2조원)로 30.1% 급증하며 수출 1위 품목에 올랐다. 1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수출국 역시 아시아, 북미, 중동 지역 등으로 다변화돼 국가별 화장품 수출은 미국 60.5%, 일본 18.3% 증가하는 등 수출 상위 10국 중 8국에서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화장품은 중국 경기가 안 좋은 와중에도 수출 다변화에 성공해 성과를 내고 있는 모범적 수출 품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