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소재 한 20평대 편의점의 월평균 매출은 8280만원이다. 반면 전남 영광군에 있는 같은 평수의 편의점은 월평균 4140만원을 번다. 각각 400만원과 100만원인 임차료를 제외하더라도 매출이 두 배 정도 차이 난다. 그런데 두 편의점 모두 알바생에게 시간당 9860원(최저 시급)을 주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도 가장 큰 화두는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다. 27일이 최저임금 법정 심의 시한이지만, 구분 적용 여부를 정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다. 매년 구분 적용 도입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있었지만 장기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어려워지고, 내년에 ‘최저임금 1만원 시대’까지 열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영계에선 구분 적용 도입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최저임금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경영계 “지불 능력에 맞게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을 모든 근로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업종이나 지역, 사업체 규모 등으로 나눠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인건비 지불 여건 등이 제각각 다르니, 이른바 취약 업종에는 낮은 임금을 적용해 사용자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현행법상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법 개정 없이 도입할 수 있고, 지역별·규모별 구분 적용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
경영계에서는 구분 적용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지난 7년간 최저임금이 52%나 올라 자영업이 존폐 위기에 놓여있으니, 근로자뿐만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영세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아르바이트생보다 수입이 적다고 한다. 충북 제천에서 24시간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수씨는 알바생 6명을 고용하며 한 달에 인건비로 약 1000만원을 쓴다. 전기 요금, 월세 같은 비용을 다 빼면 김씨에게 돌아가는 순수익은 월 200만원가량이라고 한다. 김씨는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하루 16시간씩 일하니까 정작 사장인 나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 셈”이라며 “사장도 더 이상 ‘갑’이 아니라 알바생처럼 보호받아야 할 ‘을’의 처지에 있다”고 했다.
특히 법 개정이 필요 없고, 영세 자영업자 보호 취지에 맞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내년부터 도입, 사업주의 지불 능력이 취약한 음식점·숙박업, 운수업, 편의점 등에 먼저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유독 영세 자영업자가 많고, 지불 여력과 사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인건비도 달리 책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노동계 “낙인 효과 우려”
그러나 노동계는 구분 적용에 반대한다. 핵심 논리는 ‘낙인 효과’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특정 업종·지역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임금을 더 많이 주는 업종이나 지역으로만 구직자가 몰려 인건비 줄 여력이 없는 영세 업장은 더 극심한 인력난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비교적 쉽고 몸이 편한 알바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편의점 알바 같은 업종엔 조금 적은 임금을 제시해도 사람 구하는 데 문제없을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구분 적용을 한다 해도 어느 업종에, 어떤 액수의 최저임금을 책정할지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앞서 1988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서 업종별 구분 적용을 시행한 적이 있지만, 1년 만에 사라졌다. 또 구분 적용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경영계와 노동계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경영계 안에서 업종마다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지 35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에 맞춰 구분 적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
최저임금을 모든 근로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업종·지역·규모 등으로 나눠 다르게 정하는 방식. 지난해 기준 주요 41국 중 미국·일본·독일·영국 등 22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업종별 구분 적용만 도입이 가능하고, 지역이나 규모에 따른 구분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