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오늘 기고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 10주년을 맞아 이용관 대표가 투자 소회와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기술 창업자의 야심을 믿고 시작부터 함께했던 10년
“발명가들이 야망을 갖도록 자극받는다면,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기술적 해법에 의해 개선될 수 있다.” 세바스찬 말라비의 ‘투자의 진화’라는 책에 인용된 구절로, 실리콘밸리를 지탱하는 신조라고 한다. 이 말은 10년 전 블루포인트를 설립할 때 우리가 품었던 믿음과도 닮아 있다. 기술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혁신가들의 순수한 이념을 존중하며, 그들의 시작부터 함께하겠다는 다짐으로 과학자의 도시 대전에서 블루포인트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기술 스타트업의 파트너가 되어 그들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고자 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과거 반도체 장비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M&A를 경험하면서, 창업 초반 방향 수립을 잘못해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매우 아쉬웠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는 시장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 충분한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이 응축된 시기이다. 그러나 많은 기회가 ‘죽음의 계곡’에서 소멸되는데, 이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뿐 아니라, 창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여 산업 전반의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창업가는 초기부터 시장 전문가를 만나 시행착오를 줄이고, 그로 인해 시간과 자원이 낭비되는 실패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혁신가를 돕기 위한 투자사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들
“초기 기술 스타트업 성장을 효과적으로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고민을 해소하려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게 되었다. 딥테크 스타트업은 초기 방향만 잘 설정하면 글로벌 확장성이 용이하고, 기술 기반 사업으로 경기민감도가 낮아 비교적 안정적인 장점이 있다. 이에, 10년 전 플랫폼 홍수 속에서도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에 집중하면서 이들을 밀착 지원하기 위해 연구계와 산업계의 전문가를 심사역으로 채용하고, 그로스(Growth) 조직을 구성했다. 회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극초기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해 만기의 압박이 덜한 고유계정과 펀드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투자 모델도 고민했다. 또한 늘어나는 포트폴리오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개발자를 채용하여 투자 관리 IT 솔루션을 자체 개발하는 등 초기 투자업을 하면서 문제를 발견하면 이를 돌파할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갔다.
초기의 신선함이 아마추어리즘으로 변할 때
지난 10년 동안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이제 초기가 아닌 성장기를 달리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많아졌다. 330여 개의 스타트업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승세나 하락세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있다. 창업가가 사업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3년 미만)와 성장기(7년 미만)에 요구되는 역량과 마인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상투적인 말일 수 있지만, ‘혁신’이 중요하다. 고객과 투자자들은 초기 스타트업에게 우리의 일상과 밸류체인에 변화를 가져다 줄 신선한 기술과 아이템을 기대한다. 자원이 부족한 초기일수록 단순한 개선보다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아이템에 집중하는 것이 초기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이다. 특히 딥테크 스타트업에게는 혁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이를 보완하는 ‘메타인지’도 중요하다.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액셀러레이터와 같은 시장 전문가의 조언을 수용하며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장기에 중요한 것은 ‘팀 리빌딩’이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운영 역량이 강조된다. 스타트업 초기의 신선함이 성장기에 접어들면 아마추어리즘으로 변질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창업 초기엔 혁신적인 시도가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도에 그치고 제대로 실행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성장기 스타트업이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사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경험이 풍부한 운영 전문가를 영입하고, 그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회사들이 결국 한 단계 더 도약한다. IT 플랫폼의 경우 산업 역사가 비교적 짧아 창업가와 산업 전문가 사이의 세대 간 간극과 충돌은 비교적 적은 편인데 우주항공, 소부장과 같은 제조 스타트업들은 조직 내부의 세대 차이 문제가 간혹 발생한다. 이들은 창업 초기엔 기술을 개발하는 박사와 연구원 중심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 스케일업을 하려면 제조·양산과 운영에 능통한 전문가를 영입해야 하는데, 문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젊은 창업가와 연륜으로 무장한 운영 전문가 간 사업 문법이 어긋나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스케일업 시기에 창업자가 함께 일하기 편한 주니어들로만 조직을 구성하면서 경험 부족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는 사례도 발생 한다. 결국 성장기에는 제조, 세일즈, 재무 등 각 요소별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서로 융합되는 것이 스케일업의 핵심이다.
외부환경의 성장을 스타트업의 성장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처럼 자본의 유동성이 풍부해져 모든 산업과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모두가 환희에 젖어있을 때 스타트업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외부 환경의 성장을 스타트업의 성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블루포인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는 벤처 호황기와 최근의 혹한기를 거치며, 호황기에 양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이 혹한기에는 독이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질적 성장 없이 양적 성장만 지속되면 아마추어리즘이 극복되지 못하고 회사를 지배하게 된다. 계절이 여름이든 겨울이든 내실 있는 질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호황기에는 외부 시장의 성장과 함께 스타트업의 규모도 커지는데 이 때 내부 역량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시장의 영향인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혹한기에는 회사 규모와 실적이 줄어들더라도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혹한기는 한정된 자원으로 핵심을 찾아가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의 첫 투자사, 두 번째 팀
블루포인트의 지난 10년은 초기 투자를 잘하기 위한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경험을 기록한 브랜드북을 최근 제작했다. 스타트업의 첫 투자사이자, 이들의 성장을 돕는 두 번째 팀이란 의미를 담아 ‘First Investor, Second Team’이란 제목을 붙이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생태계 관계자는 물론 스타트업과 액셀러레이터가 낯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좀 더 친숙해지길 하는 마음을 담았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일까? 블루포인트는 계속해서 초기 스타트업의 담대한 비전과 혁신을 사랑할 것이다. 아울러 성장기에 접어든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아마추어리즘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새로운 지원 방법을 또 한번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