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의 전공은 물리학입니다. MIT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연구 조교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주요 일과는 입자 가속기로 입자들을 충돌시킨 뒤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빅데이터 분석인 셈이죠. 우주 생성의 비밀을 밝히던 윤 대표가 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을 거치면서입니다. ‘알파고 충격’으로 너도나도 AI 분야에 뛰어들고 있었고, 산업 현장에서는 통신과 센서 기술의 발달하며 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 단위의 정밀한 데이터들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데이터를 AI가 다루기 시작하면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겠구나’라고 생각한 윤 대표는 곧바로 기계를 뜻하는 라틴어 ‘마키나(machina)’와 로큰롤의 ‘락스(rocks)’을 합친 ‘마키나락스’를 창업했습니다.

마키나락스는 제조 현장의 AI 전환을 도와주는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정해진 일만 하던 기계에 ‘지능’을 부여해주는 일입니다. 현장에 필요한 AI를 만들어 주는 것부터 이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기계 고장을 예측해 유지보수를 효율화하는 등 다양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산업에 특화된 AI를 통해 공장 ‘자동화’를 넘어 ‘지능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AI가 산업 곳곳에서 효과를 입증하면서 마키나락스도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가 지난해 선정한 ‘2023년 세계 100대 AI 기업’에 이어, 올해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비롯해 현대, SK, 한화, LG 등은 마키나락스의 투자자이자 고객사이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윤 대표와 만나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처음 한 말은 “글자가 굉장히 크네요”입니다. 일반적인 명함 글자보다 두세 배는 컸습니다. 마키나락스의 솔루션이 필요한 제조 현장이 대부분 어둡고, 무엇보다 현장 관계자들의 나이대가 높아 작은 글씨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글자 크기를 키웠다고 합니다. 마키나락스가 바라보는 시장이 제조 현장이라는 점이 명함에서부터 드러난 겁니다.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 /마키나락스 제공

1. 물리학과에서 제조 현장으로, AGI 미래를 봤다

-MIT 박사 출신으로 두 대기업에 있었습니다. 물리학과 출신이 대기업에선 무슨 일을 하나요?

”MIT 박사 과정을 마치고 삼성전자에서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게 됐습니다. 이때 글로벌 반도체 장비 회사와 AI를 활용하여 장비 이상 여부를 탐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무렵에 그 회사에서 영주권을 포함한 스카웃 제안을 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안이 창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AI 프로젝트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고 이 같은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AI가 발전하고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제조 등 산업 현장에서는 AI를 안 쓸 수가 없는데, 그때는 이런 것들을 해줄 수 있는 인력이나 기술 제품들이 시장에 없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AI가 넷플릭스 콘텐츠를 추천해주고 번역을 해주는 등 디지털 세상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공장에 쌓이는 데이터들을 사람 수준의 일반인공지능(AGI)이 다루기 시작하면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하던 것이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2017년 제조 현장의 AI 전환을 도와주는 스타트업을 창업을 하게 된 겁니다.”

-물리학과와 대기업, 제조 현장은 낯설었을텐데요.

”사업 초기에는 제조 현장에서 AI에 대한 이해도 낮고 기대도 굉장히 막연했어요. 알파고 기술을 공장에 적용해 불량률을 낮춰주고 설비의 이상을 탐지한다고 하면, 대부분 ‘AI로 불량률을 0%로 낮출 수 있느냐’ ‘설비 고장도 100% 잡아낼 수 있느냐’는 말이 되돌아 왔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20년 이상 일하신 분들은 ‘데이터에 적힌 숫자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라는 식의 반응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거부감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은 제조 현장에 IT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제조 현장에 AI를 적용하려고 공장에 방치돼 있던 컴퓨터의 먼지를 털어내고 여기에 AI 소프트웨어 설치해서 구석에 앉아 작업하곤 했습니다.”

2. “AI?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고수들과 공생”

-결국 AI는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는 말. 현장 직원들의 경계심이 컸을 수도 있습니다.

“고객센터나 번역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인간의 업무를 ‘대체’한다는 소식이 많지만 제조 영역에서의 AI는 애초에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을 담당합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는 등 산업용 로봇이 하는 영역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거죠. 무엇보다 산업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AI가 아닌 숙련된 현장의 ‘고수’들입니다. 현장에서 오래 일한 직원들은 소리만 듣고도 장비의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생겼을 때도 대응 방법 등을 본능적으로 알아냅니다. 이렇게 현장의 고수들이 있어야 AI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뭐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그 결과를 비교해가면서 솔루션을 고도화할 수 있는 거죠. 결국 산업현장에서 AI와 노동자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입니다. 서로가 할 수 없는 일을 돕는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조 현장마다 필요한 솔루션이 다를 것 같은데요.

”제조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AI를 적용해주는 작업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모든 공장이 설비와 생산 제품은 물론 생산 방식도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반도체를 생산해도 어떤 방식과 공정으로 하는지에 따라서 적용해야 하는 AI도 달랐던 겁니다. 그래서 제조 현장에서 필요한 AI 솔루션들을 찾아 활용할 수 있게끔 B2B 솔루션을 만들게 됐어요. 그게 바로 2021년 출시한 ‘런웨이’라는 플랫폼입니다.”

“현장에서 AI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필요합니다. 런웨이는 수요예측·생산최적화·품질관리·이상탐지 등 기업들이 원하는 AI솔루션을 모아 둔 종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AI가 뇌의 역할을 한다면 이 뇌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나 공장 로봇 등 다른 시스템과의 연결을 도와주는 겁니다.”

3. 로봇과 설비의 이상 탐지, 제조 최적화까지...5000개의 AI 개발 경험

-AI가 제조현장에 적용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은 수년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널리 보급되지 못했는데요. 제조현장에선 AI가 뾰족하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길 바랄겁니다.

”런웨이 기능 중에 대표적으로 ‘이상탐지’ 솔루션이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는 수백대의 로봇들을 사용하고, 이 로봇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고장나게 됩니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시점에 고장나면 생산 라인이 멈춰버리고 그만큼 피해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숙련자들이 기계 소리나 진동을 느껴서 고장이 예상되는 로봇을 수시 점검하는 식으로 관리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에 AI를 적용하게 되면 AI가 로봇이 고장 직전 진동이 강해지고 온도가 올라가는 등 관련 데이터로 특유의 패턴을 학습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전에 사람이 보지 못했던 고장 직전의 다양한 패턴을 분석해서 5일에서 빠르면 2주 전에도 로봇의 고장을 예측할 수 있는 겁니다.

-고객사에 따라 솔루션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AI가 특정 작업 로봇의 기능이상만 점검할 수 있다면 그건 고객들이 기대했던 AI는 아닐겁니다.

“최근에는 전기차 충전소를 만드는 회사와도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런웨이를 통해 지난 4월에 이상 징후를 탐지했고 실제로 약 세 달 후에 해당 장비가 고장났습니다. 그만큼 AI가 조기에 고장의 징조를 발견해 사전에 조치할 수 있는 거죠. 재미있는 부분은 로봇마다 브랜드는 물론이고 작업 방식과 고장 이력, 부품 교체 주기가 모두 다른 만큼 각각의 로봇을 위한 AI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로봇 200대가 있으면 AI도 200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희는 지금까지 약 5000개의 AI를 개발한 경험이 있습니다.”

-공장의 문제를 찾는 것뿐아니라, 고객들은 AI를 통해 생산량 증대, 생산비용 감축도 기대할텐데요.

“런웨이로 생산 최적화를 이룬 사례도 있습니다. 전자제품 생산 라인에 가보면 회로기판 위에 부품을 올리는 설비가 있거든요.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이 설비가 기판 위에 어떤 순서로 부품을 배치하는지가 해당 작업을 완료하는 시간을 결정합니다. 예전에는 이 설비의 알고리즘을 작업자 경험에 기초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 작업에 AI를 적용하니까 지난 10년 동안 작업자가 최적화한 작업 속도를 6주 만에 7%나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사람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AI로 개선하면서 비용 절감을 일으킬 수 있는 겁니다.”

마키나락스 창업 초기 모습. /마키나락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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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리 확보한 데이터가 강점, 퍼스트무버의 이점”

-다른 산업에도 특화된 AI를 앞세운 기업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 솔루션과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여러 제조 데이터 학습의 결과물인 AI 런웨이만의 강점은요?


5. 챗GPT와 다른 제조 AI의 원칙, “반복의 속도가 질보다 우선한다”

-2017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셨으면 생성형AI로 인한 변화를 체감하셨을 것 같은데요.

-챗GPT 같은 범용 AI로는 할 수 없나요?

-생성형AI가 나오면서 제공하는 솔루션의 종류도 다양해졌을 것 같은데요.

-문제는 수조원을 투자하는 AI 모델 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스타트업은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마키나락스 팀원들. /마키나락스 제공


6. LLM의 발전이 AI 솔루션의 범위를 확 넓히는 이유

-LLM의 빠른 발전을 제조 AI에 적용하면 솔루션의 범위와 용례가 훨씬 넓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 이후 이걸 돈으로 바꾸는 법이죠. 로보틱스, 자동화 시장이 아직 머니타이제이션이 취약하기도 하고요.

-하반기 IPO를 예정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