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레 비카스 칸두.

대전 유성구에 있는 인공위성 관련 기술과 부품을 개발하는 중소기업 ‘스페이스솔루션’에는 인도인 연구원 보살레 비카스 칸두(36)씨가 일하고 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2021년 3월에 입사했다. 이 직원을 영입하기 위해 이재헌 대표는 그가 박사 과정 중일 때 카이스트를 몇 차례 직접 찾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같은 연구실에 있는 한국 학생들은 대기업이나 연구실에 간다는데, 마침 인도인 학생이 일도 잘해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그가 수락해 스카우트했다”며 “창업 이래 쭉 연구 인력난을 겪다 보니 대학을 방문하거나 학회에 참석할 때도 항상 1순위는 함께 일하겠다는 사람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 단순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현장직을 넘어 기술력이 필요한 연구·개발(R&D) 인력마저 외국인이 채우고 있다. 뿌리산업의 단순 노무직에서 시작됐던 중소기업 인력난은 점차 심화되는 인구 감소와 청년들의 ‘대기업 선호’ 현상이 지속되며 심화되고 있다. 기술력을 가진 외국인 전문 인력, 석박사급 외국인 연구원들은 이제 ‘인력난’에 고전하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현장의 빈틈을 메우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이 같은 추세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이른바 ‘3D’ 업종에 속하는 비숙련인력(E9비자)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대비 지난해 10% 증가에 그친 반면, 기술력을 가진 전문인력(E7비자)은 2배(111%) 이상으로 늘었다. 국내 석박사 학위 소지자 등 연구인력(E3비자)은 25%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비자 발급 외에 전문·연구 외국 인력의 고용 현황이나 우리 중소기업들의 수요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실장은 “비숙련인력과 관련해서는 외국인을 데려와 각 사업장의 수요를 파악해 배치까지 도와주는 제도가 있지만, 전문·연구인력의 경우 기업이 스스로 구직자를 찾아야해 어려움이 많다”며 “과거 주로 대기업 협력사에 머물던 중소기업도 이제 기술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으니 R&D 인력난 해결을 위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직원 160명 규모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 기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개발팀 팀장은 베네수엘라인 알레시스 펑 티안(36)씨다. 이 회사는 개발을 잘할 수 있는 인력을 주변에 수소문하다가 한 직원의 소개로 베네수엘라인을 고용했다. 그는 2011년 한국에 와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 한 대기업에서 일했다. 이후 먼저 이직한 직장 선배가 “스타트업에서 더 치열하게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2022년 이직을 했다. 회사 관계자는 “똑똑한 연구원을 찾기 힘들고, 입사하더라도 기회만 생기면 이직하려 한다”며 “외국인 고용 방법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현장직 넘어 R&D 인력까지...중기 인력난에 아우성

최근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R&D 강화에 힘쓰고 있다.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 창업도 늘어나고 있는 데다가 중소기업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극심한 R&D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는 줄고, 청년들은 대기업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인력난은 더 이상 이른바 ‘3D’ 업종으로 불리는 제조기업 단순 노무직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 빈틈은 결국 외국인 근로자가 채우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외국인 전문·연구 인력의 수요는 계속 커지고 있다. 항알레르기성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스타트업 ‘카보엑스퍼트’ 박종태 대표 역시 연구원을 구하지 못해 고심하다가 박사 과정 중인 베트남인 제자에게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직접 해당 직원의 비자 전환 등 서류 절차를 챙겼다. 박 대표는 “함께 일하다가 베트남으로 돌아간 다른 직원은 현지 병원을 소개해줘 거래도 하고,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에선 도리어 외국인 R&D 인력을 찾기도 한다. ESG 설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아이이에스지’에는 오스트리아인 IT 개발자 폴 바인더(29)씨가 일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명문대를 졸업하고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글로벌 개발팀’ 리더로 회사에 합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외국인 직원이라도 많이 구하고 싶지만, 미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같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다 보니 유치가 어렵다”고 했다.

◇외국인 R&D 인력 수요 느는데, 현황 파악조차 못하는 정부

중소기업의 전문·연구 인력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수요는 계속 늘고있다. 2022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국내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외국인 이공계 석박사 인재에 대한 기업 수요를 조사·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 기업의 69%는 외국인 연구 인력을 현재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는 ‘어디서 얼마나 어떤 인력이 부족한지’에 대한 현황 파악이나 수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에 얼마나 많은 외국 인력이 고용돼 일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소기업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고 싶어도 주변의 소개를 통해 구할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직무에 딱 맞는 직원을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나마 최근 국내에 들어온 유학생을 전문·연구 인력으로 키워 활용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지만, 비자 전환 등 까다로운 조건이 걸림돌이 된다. 또 해외 인재를 한국으로 유치하기엔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정주 여건이나 처우가 좋지 않아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기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그간 비숙련인력 중심으로 인력 정책을 운영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도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한 외국 인력 유치에 필요성을 느껴 최근 여러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