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입니다. 김진환 경기대 겸직교수가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타트업에게 그레이존은 항상 해답없는 숙제와 같은 존재입니다. 김 교수는 “규제 개혁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한숨은 짙고 길었다. A 대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니, 가상자산사업자(VASP)를 받았다고 벤처기업 인증을 취소하는 게 말이 되냐고”

가상자산사업자는 국내 블록체인 산업에서 유일한 등록제도이다. 가상자산 관련 사업 운영을 위해서 반드시 금융당국에 사전 등록을 마쳐야 한다. 일종의 가상자산 라이선스인 셈이다. 그의 기업은 작년 8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수리를 완료했다. 올해 5월 벤처기업확인기관으로부터 벤처기업 인증 취소 공문을 받았다. 현행 벤처기업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은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는 2018년 10월 벤처기업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가상자산 관련업을 벤처기업 업종에서 제외했다.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 중 하나인 두나무는 작년 12월 벤처기업 확인 취소처분을 받았다. 벤처기업이 받는 세제, 금융, 인력, 광고 관련 모든 혜택이 사라진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각종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서도 제외될 확률이 커졌다.

A 대표는 창업 이후 정부 정책이 가상자산 산업에 부정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느끼곤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법률에 명시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분야는 ‘암호자산 보관 및 관리업’으로 ‘암호자산 매매 및 중개업’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가상자산을 보관, 관리, 교환, 매매, 알선 또는 중개하는 활동 모두가 제외 대상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가상자산 사업 전체를 무도장, 도박장 등과 동일시 한다는 의미다. 벤처기업 인증 제외 대상에는 무도장, 주점, 불법게임 개발, 도박장 등이 포함된다. 그는 법리상 다툼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취소 처분 철회 요청서를 보냈다. 창업가의 마음을 담았다.

‘저희는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으며 성실히 사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법망을 피해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를 받지 않고 위법하게 사업하는 이들이 단속되어야 마땅합니다’ ‘취소 처분은 저희와 같이 법을 준수하며 일하는 기업에 대한 역차별입니다’ ‘블록체인 업계 전반의 사기 저하 및 악영향이 예상됩니다’

물론 기적은 없었다. 취소 처분 철회 요청서에도 취소 처분은 확정되었다. A 대표는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며 핀테크에 눈을 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자산의 시대가 열릴 것을 예감한 그는 안락한 은행원의 길을 박차고 2년전 창업자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설립한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은행과 증권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 기업으로는 최초로 팁스(TIPS)에 선정되었다. 정부 및 각종 공공기관의 주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그는 정부의 대처를 아쉬워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진흥시키자면서 가상자산은 배제하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비트코인 성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가상자산 산업의 규제 완화를 약속하는 가운데 왜 우리나라만 아직까지도 가상자산의 위험성만 볼까?”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2조 달러 (약 2700조)를 넘어섰다. 가상자산 전후방 산업을 비롯하여 토큰증권과 같은 블록체인 연관 산업도 늘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상자산 업체에 대한 규제가 풀릴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계속 배척만 하면 결국 미국이나 일본이 이 시장을 다 가져갈 거야” “지금의 규제가 과연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까?”

그는 요즘 사업보다는 규제 개혁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 가상자산 기업을 대변할 변변한 단체가 없는 상황에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단다. 틈만 나면 국회 토론회에 참여한다.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서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창업자가 사업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지 규제개선까지 신경써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벤처기업 인증 취소가 최종적으로 확정되고 며칠 후 그는 벤처기업협회로부터 ‘우수벤처기업 인증서’가 회사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