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올곧’ 사무실에서 만난 최홍국 총괄대표가 미국·싱가포르·멕시코 등 전 세계 30국으로 수출되는 자사 냉동 김밥 제품을 손에 들고 설명하고 있는 모습. 고1 때 신경을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된 최 대표는 평소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작은 사진). /고운호 기자·올곧

올해만 8월까지 냉동 김밥을 330만줄(약 176억원어치) 만들어 수출한 국내 1위 냉동 김밥 업체 ‘올곧’.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에서 이 회사를 창업한 최홍국(41) 총괄대표를 만났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 대표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고1이던 1999년, 최 대표는 교내에서 격투기 시범을 보이다가 바닥에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됐다. 또 신경도 많이 다쳐 열 손가락 중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른손 엄지뿐이다. 이 손가락으로 힘겹게 젓가락을 잡고 김밥을 집어 든 그는 “이 김밥 한 줄 만들려고 2년 동안 매주 쌀 100㎏으로 김밥을 만들어 먹고 또 먹어가며 최고의 맛을 찾았다”고 했다.

사고 이후 장애인 탁구 선수, 공인 중개사, 건설사 대표 등을 경험한 그는 2020년 냉동 김밥 회사를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즉석 밥처럼 20분 만에 급속 냉동하는 과정을 거쳐 김밥 품질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해외시장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밥을 말 때도 80%만 익게 밥을 지어서, 냉동 김밥을 나중에 전자레인지 등에 데워 먹을 때 맛을 완성할 수 있게 한 기술도 올곧 제품의 특징이다. 지금은 미국 트레이더조, 월마트 등 대형 마트에도 납품하고 있다. ‘16세 장애인’이던 그가 ‘냉동 김밥 신화’의 주인공으로 어떻게 변신했는지 들어봤다.

◇장애 후 탁구 선수, 건설사 대표 등을 거쳐

경북 구미에서 나고 자란 최 대표는 부상당한 뒤 5년간은 장애인 탁구 선수로도 활약하며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팔꿈치 염증이 심해져 결국 2007년 운동을 그만둬야 했고, 곧바로 공인 중개사 일에 뛰어들었다. 탁구를 하면서도 2년간 밤마다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해 공인 중개사 자격을 따둔 덕분이었다.

2년간 구미의 한 공인 중개사 사무실에서 공장 부지를 중개해 주면서 그는 제조업에 대한 꿈을 품었다고 했다. 천안, 청주 등지에 있는 산업단지와 공장에 지게차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보며 ‘공장에선 휠체어를 타고도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2009년 공인 중개사 일을 그만둔 뒤 공장을 지어주는 건설 회사를 차린 그는 한때 빚 20억원을 떠안고 회사 문을 닫는 시련도 겪었다. 하지만 알고 지내던 한 은행 지점장의 도움으로 다시 건설사를 다시 차렸고, 이후 10년간 계속 회사를 운영하며 구미, 양산 등에서 산업단지 조성과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맡았다.

◇“건설사 회장이 김밥 사업을?”

10여 년간 건설업에 몸담고 있던 그가 냉동 김밥 사업에 뛰어든 건 37세이던 2020년. “김밥 공장을 지어달라”는 한 김밥 업체를 만난 뒤였다. 최 대표는 “김밥 업체를 만나고 나서 ‘집에서 김밥을 만들어 먹기도 번거로운데, 차라리 냉동해서 파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식품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매년 5만㎞ 자가용을 몰고 전국의 쌀, 김, 채소를 유통시키는 업체와 가공 공장 등이 있는 전남 신안, 부산 등을 찾아다녔다. 당근을 몇 ㎜ 두께로 썰어야 할지, 깻잎은 몇 장을 깔아야 맛을 살릴 수 있는지 등 조리법을 바닥부터 배우고자 함이었다.

특히 냉동 김밥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은 수분을 가두는 ‘냉동 기술’이었다. 일반 냉동실이나 냉동 창고에 얼리면, 해동했을 때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문제가 있었다. 냉동 장비 종류조차 몰랐던 최 대표는 전국의 냉동 장비 업체를 수십 곳씩 수소문하며 “아무것도 모르니 제발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최 대표 눈에 들어온 것은 경기도의 한 냉동 장비 업체에서 찾은 ‘급속 동결기’였다. 영하 45도에서 20분이면 전부 얼려버리는 장비였다. 급속 냉동을 하면 수분이 흘러나오는 것도 막고, 부피가 커지는 것도 최소화할 수 있어 얼릴 때 김밥이 터지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밥과 김을 다루는 법도 새로 배웠다.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을 고려해 밥을 80%만 설익혀 제품에 활용했고, 부드럽고 얇은 김과 질기고 두꺼운 김을 배합하는 비율도 실험해 가며 ‘냉동 김밥용 김’을 만들어냈다.

◇까다로운 美 시장 뚫어

끈질긴 연구 끝에 2022년 냉동 김밥을 개발한 그는 처음에 유명 개그맨까지 모델로 써 가며 국내 시장에 제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좀처럼 인기를 끌지 못해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식품 수출 박람회 수십 곳을 다니며 거래처를 물색했고, 한 미국 바이어를 만나면서 첫 수출 제의를 받았다. 고기나 계란, 치자는 수출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어 유부 우엉 김밥 등을 대체품으로 만들어야 했고, 치자를 뺀 단무지도 따로 납품받았다.

그래픽=김성규

올곧은 지난해 5월 미국을 시작으로 싱가포르·멕시코·독일·남아공 등 세계 30국에 냉동 김밥을 수출하고 있다. 매출액은 2021년 6억7000만원에서 지난해 69억원, 올해는 1~8월에만 223억원을 기록해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말 두 번째 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하루 8만줄씩 만드는 김밥을 하루 32만줄까지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 대표는 “최근 순두부국밥, 황태국밥 같은 제품도 개발을 마쳐 연말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