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2021년 말, 베이스벤처스에 투자 심사역으로 합류했다. 라인과 구글을 거쳐 VC에 오면서 가장 투자하고 싶은 회사들은 ‘B2C’, ‘글로벌’, ‘소프트웨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었다. 보고 배우고 고민했던 것이 그런 분야였고, 고정비가 크게 들어가거나 이코노믹스를 매우 세부적으로 관리하고 예측해야 하는 사업에는 관심도, 자신도 크지 않았다. 특히, 입사 후 6개월 만에 전반적인 투자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고, 크고 작은 기존 물류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내가 물류 스타트업에 투자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김용재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2022년 9월, 베이스의 강준열 파트너님이 메신저에 회사 소개 자료와 함께 메시지를 하나 올리셨다.

“노리 창업했던 김용재 대표님의 재창업 회사인데 관심 있으신 분?”

베이스는 구조상 대표 혹은 파트너라도 심사역 없이는 직접 딜을 진행할 수 없는, 통상의 다른 VC와는 다른 반대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저 메시지에 일주일 내로 아무도 답장하지 않으면 내부에서는 검토 의향이 없는 것으로 처리가 된다. 노리라는 교육 스타트업은 익히 들어 익숙했고 연쇄 창업가 출신 대표님이라는 점에 이끌려 안내 자료를 열었다. 그런데 물류 사업이었다. ‘왜지?’ 교육 소프트웨어로 대교에 매각까지 경험한 대표님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물류 사업으로 재창업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것이 딜리버스에 대한 첫 단상이다.

◇모든 택배의 빠른 배송화

그런데 풀려는 문제가 흥미로웠다. 국내 택배 시장은 매해 두자릿 수 이상 성장하며 매출액 규모 8조, 물동량 기준 49억 건을 기록하는 거대 시장이다. 이 중에서 쿠팡이 커버하는 빠른 배송의 규모는 물동량 기준 20%이고 나머지는 일반 택배를 이용하는데, 이 나머지 80%를 대상으로 로켓배송에 준하는 빠른 당일 배송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택배가 쿠팡처럼 빠르게? 당연히 너무 좋지.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말처럼 쉬우면 기존 택배사는 그걸 왜 안하나?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김용재 대표님을 처음 만나 뵀다. 일반적인 택배 집화 및 운송 과정은 여러 대리점과 터미널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오랜 세월과 비용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기존 택배사 입장에서 쉽게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여간해선 쉽지 않다. 옥천 허브에 택배가 갇히는 밈이 계속해서 나오는 (구글에 검색하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딜리버스는 전체 물동량의 80% 비중인 소형 화물(의류, 화장품, 도서 등)만 취급하여 화물 트럭을 최대한 채우고 소형 화물에 최적화된 효율적인 분류기와 공간을 마련, 매일 고객사의 배송 정보 및 지역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에 기반해 동선을 최적화하는 알고리즘(AI 딥러닝 다이내믹 클러스터링)을 만든 다음, 효율적으로 라스트마일 배송을 하면 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렇게 배송을 하면 크고 복잡한 공간, 장비, 트럭, 프로세스 등이 필요 없고 고정비와 변동비가 모두 낮아서 기존 고객사가 사용하는 택배 가격을 맞추면서도 당일 배송이 가능하단다. 심지어 이익까지 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김용재 대표님은 이 내용을 너무 쉽고 조곤조곤 설명해 주셔서 솔직히 그렇게 미덥지 않았다. 이 논리에 무조건 허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딜리버스의 광주 물류 허브 /딜리버스 제공

◇모두가 이기는 구조

그렇게 지내던 중 문득문득 딜리버스가 떠올랐다. 평균적으로 10~20개의 스타트업을 동시에 검토하는데, 그 당시에 만나던 회사들은 누구도 김용재 대표님만큼 사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거나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에 대한 호기심이나 투자하기 싫었던 영역을 더 파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택배의 빠른 배송’은 우리가 모두 원하는 미래라고 생각됐다. 화주사도, 소비자도, 운송기사도, 딜리버스 입장에서도 되기만 하면 너무 좋은 ‘Win-Win-Win-Win’ 구조가 아닌가라는 생각. 위대한 기업이 되는 7가지 전략을 소개하는 ‘세븐파워’라는 책에 나오는 카운터포지셔닝이나 전환 비용과 매우 잘 부합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 이대로 그냥 근거없이 흘려보내면 심사역으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

그런 마음에 성수동의 자동 택배 분류기(소터기)를 직접 보러 가서 1호 고객이었던 지그재그의 물건들이 당일 배송되는 현장을 보면서 조금씩 확신이 생겼다. 대표님과 한참을 마주앉아 인간 김용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왜 건축학과를 가셨는지, 왜 전략컨설팅을 하셨는지, 왜 교육 사업을 창업하셨는지, 창업을 왜 또 하시는지, 왜 하필 물류사업인지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대화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금의 가설과 아이템은 그 효용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부분이었다. 노리를 하실 당시에는 이것이 정말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인가를 증명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던 반면, 딜리버스는 그 구조 자체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Win-Win-Win-Win’ 형태여서, 훨씬 더 빠르게 시장에서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부분은 이 회사의 주주명부였다. 기관투자를 받기 전, 이 회사에는 이미 상당수의 개인 주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전부 김용재 대표님의 가족, 동료, 친구들이었다. 개인들이 투자할 때의 조건이 그렇게 유리하지도 않았다. 김용재 대표님을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부분이나, 김용재 대표님께서 이분들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부분들이었다.

김용재 딜리버스 대표 /딜리버스 제공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투자까지

이코노믹스에 대한 가설 검증되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 물류 스타트업에 대한 투심(투자심의위원회)은 역시나 어려웠다. ‘계획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잘 안된 물류 기업들도 계획은 다 말이 되었다’라는 평에 사실 심사역이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슈퍼패스를 써서 통과시켰다. 베이스의 투심은 의사결정권자 4명 중 3명 이상 찬성해야 하는 구조인데, 2명만 찬성하는 경우에는 심사역이 연간 정해진 한도 내에서 슈퍼패스를 써서 통과시킬 수 있다. 거대한 시장, 분명한 가치 제안, 대표님에 대한 믿음으로 쓴 슈퍼패스였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투자 후에 생각만큼 수월하게 가진 않았다. 물론, 계획대로 가는 회사는 없다. 계획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하는 회사는 있어도(한 2%?) 그대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딜리버스도 예정된 고객사들의 온보딩이 더뎌 물동량이 빠르게 늘지 않아 큰 월 손실이 계속해서 유지됐다. 성수에서 이천으로 확장 이전하고 분류기 추가 구입으로 인한 고정비 지출도 컸다. 그런데 그 때도 나는 조바심이 나고 불안했는데, 김용재 대표님은 한결같이 담담하고 유연했다. 본질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고 늘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그 답에 맞춰 계속해서 계획을 수정해 나가면서 고객 프로파일링/영업과 운송 효율이라는 2가지 레버를 계속해서 실험, 개선해 다달이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결과적으로 딜리버스는 현재 결제 후 평균적으로 7시간 만에 배송이 완료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올웨이즈, 무신사스튜디오, 지그재그, 젝시믹스 등의 큰 고객사뿐만 아니라 중소 고객사도 활발하게 사용하는 물류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첫 투자 이후 1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두 번째 투자를, 조금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진행했다.

◇미친꿈을 위대하게

최근 베이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내부에서 슬로건을 새로(사명도 같은 이유로 베이스인베스트먼트에서 베이스벤처스로 변경) 정했다.

‘미친꿈을 위대하게’

창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소 무모하고 거대하고 순진하고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것 같은 미친 꿈들을, 베이스의 고유하고 다양한 자원을 모두 쏟아부어 위대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베이스가 투자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제1의 조건은 ‘창업자가 미친꿈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모든 택배의 당일 배송화’는 누가 들어도 미친 꿈이다. 자세히 얘기하긴 어렵지만 김용재 대표님은 그 미친 꿈의 초기 가설 검증에 본인 돈을 수억 원 이상 태우는 미친 짓을 보여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일 배송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주를 넘어선 물류 인프라 구축’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기반으로 그토록 노련한 대표님의 꿈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 10년간 나타난 새로운 서비스 중 가장 혁신적이었던 것은 단연 쿠팡의 로켓배송이다. 한 사람이 1년에 평균적으로 택배를 127회 이용하는 시장에서 딜리버스가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큰 임팩트를 주며 성장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