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쯤인가 SBVA를 둘러싸고 온갖 잡음이 들렸고 한국 스타트업계가 웅성거렸습니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VC로서 한 길을 걸어온 SBVA가 혹시나 흔들릴까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그리곤 손정의 회장의 친동생인 손태장 미슬토 회장이 SBVA를 인수했습니다.
2000년 설립된 SBVA는 누적 운용 자산이 2조5000억원 이상인 데다, 300개 이상 스타트업에 투자해 한국에선 규모로도 ‘빅3′에 들어갑니다. 당근, 트릿지, 아이지에이웍스, 루닛, 크림, 네이버Z 등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의 아자이브, 고투, 싱가포르의 아이유노, 카로, 중국의 왕딩통, 송구어, 나이지리아의 오페이 등에 투자했습니다. 작년에 최대 주주가 소프트뱅크에서 디에지오브로 바꿨고 올해 사명도 ‘SBVA’로 바꿨죠. 디에지오브는 2000년대 게임회사 겅호를 창업해 ‘일본 거부 톱30′에도 드는 손태장이 창업한 회사고, 이준표 SBVA 대표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습니다.
오늘의 레터는 이준표 SBVA 대표 인터뷰입니다. 곧바로 손태장 회장의 인수 배경부터 물어봤습니다. 읽기편하게 질문과 답의 순서를 바꾸려다가 그대로 뒀습니다. 사실 주된 이야기는 ‘벤처캐피털 대표의 창업 스토리’입니다. 이 대표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해드립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중퇴한 이준표 대표는 대학 재학 중인 2001년 에빅사를 창업해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 매각했고, 다시 2007년 엔써즈를 창업해 미국 기업에 매각한 연쇄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참, 잘 정돈된 ‘신문(新聞) 인터뷰’를 원하는 분은 아래 링크입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원문 보기] “아시아 넘버1 VC 되겠다”... 이준표 SBVA 대표 인터뷰
1. 한국인 대학생 창업가에게 신주쿠에서 야키니쿠 사주던 손태장 회장
-손태장 미슬토 회장님과의 인연은?
”저희가 원래 매년 한국에서 ‘소프트뱅크벤처스포럼’을 열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들을 다 초대하고, 소프트뱅크 본사에서도 오셔서 서울에서 개최했어요. 제주도 해비치에서도 한 적이 있고요. 나름 벤처 커뮤니티에서는 꽤 큰 행사였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2016년이었나 2017년이었나, 그때 포럼에서 한 연사분이 펑크를 내셨어요. 그때가 막 북한이 한국을 공격한다는 기사가 나올 때였습니다. 한 달 남겨놓고, IT 회사의 굉장히 높으신 분이었는데 안 오신다고 했어요. 마침 제가 싱가포르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행사 키노트가 손태장 회장님이셨어요.”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사실 제 모티베이션은 ‘펑크 난 연사 대신 포럼 스피치를 부탁드려야겠다’였는데, 그냥 얘기하면 아무리 친해도 오실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을 보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손 회장님도 한국 국적자시고요. ‘그래, 그러면 한번 진짜 가볼까’라고 대답하셨어요. 소프트뱅크벤처스 포럼 키노트를 갑자기 손태장 회장님이 맡으셨죠. 저도 뱉은 말에 책임져야 하니까, 손 회장님이 한국 스타트업들을 만날 수 있도록 쭉 어레인지를 했어요.”
“카이스트 총장님께 부탁해서 카이스트로 모시고 가서, 카이스트에서 정말 끝내주는 기술 기업들이 피칭하게 했어요. 손 회장님은 ‘한국에 투자도 좀 해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클래스팅에도 투자하셨고요. 그다음에 제가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대표가 되면서, 회사 어드바이저를 해달라고 부탁드렸죠.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매년 오셨죠.”-손태장 회장님과는 그전부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나요?”손태장 회장님이 소프트뱅크벤처스를 인수하자, 주변에서 ‘손정의 회장의 동생이기 때문에 연이 됐냐’는 오해가 많았어요.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스타트업 창업을 두 번 했거든요. 첫 번째 창업을 대학교 3학년 때 했는데, 원격 지원 소프트웨어였지만 그다지 잘 팔리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돈을 내고 스타트업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쓰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아는 일본 친구가 ‘일본에 와서 팔아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일본에서 팀을 만들고 한 6개월간 도쿄 친구집에 머물면서 영업을 다녔어요. 2002년인가 2003년인가 그때였습니다.”
“당시 도쿄대에 다니다가 창업했던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동업자가 있었어요. 아사노 상이라는 분인데, 말하자면 몰락한 재벌의 후계자였습니다. 이 분이 돈을 대고 이 친구가 비즈니스를 했죠. 이 아사노라는 분의 비서가 재일교포였어요.”
“한국인 학생 창업가가 도쿄 와서 고생하니까 너무 불쌍했던지, ‘내 여동생 남편이 IT 쪽 사업을 되게 잘하고 있는데 한번 만나보겠냐’면서 소개를 해줬던 게 손태장 회장님이에요.”
-손태장 회장님을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나요?
”대학생때 만난 거죠. 근데 이분은 그때도 본인이 만들었던 회사들이 성공해서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기업가가 되어 있었죠. 사실 저를 만나줄 이유가 없었죠. 불쌍했는지, 어떤 연민이 느껴졌는지, 저를 엄청 도와주셨어요.”
“본인 회사에 초대해 일본의 소프트웨어 첫 유통 계약도 해주셨죠. 주말에는 신주쿠에서 한식도 사주시고요.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이어졌죠. 사실 손태장 회장님이 저희 회사인 SBVA의 어드바이저 하던 시절에도 제가 그룹과 관련된 부탁을 드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형님으로서, 선배로서, 손태장 회장님께 조언을 구하고 했던 거지. 이렇게 SBVA의 대주주가 될 거라고는 몰랐죠. 계획했던 게 아니고 그런 재미있는 인연 덕분입니다.”
-은인이시네요. 생각해 보면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본인은 일단 성공을 했는데, 본인이 재일교포인데, 똑똑한 카이스트 출신의 젊은 창업자가 도쿄에서 창업하고 있으면. 당시 몇 살이었나요?
”제가 스물둘, 셋 정도였어요. 손태장 회장님은 72년생이시고. 제가 간 게 2003년이니까 당시 30대 초반이셨죠. 저랑 딱 10살 차이 나시니까요.”
-이준표 SBVA 대표는 연쇄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창업자 출신인 투자자인 거죠.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취미로 코딩해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죠. 한동안은 거기에 너무 빠져서, 그 어린 나이에 벤처나 스타트업 같은 단어를 떠올렸던 건 아니지만, ‘내가 이걸로 학교를 안 다니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했었어요.”
“실제로 PC 통신, 그때 천리안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동호회 같은 데 들어가서, 제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막 빠져들고 있는데, 아버지가 ‘대학은 가야 되지 않냐’라고 하셔서, 공부해서 카이스트로 갔고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게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겁니다. 미국 스탠퍼드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공대생들 중에서 창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각 학교별로 한 3~4명씩 초대해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같이 보냈던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걸 갔는데, 그 당시에 연사로 오셨던 분들이 야후 창업자인 제리 양, NVIDIA 창업자인 젠슨 황 등이었어요. 젠슨 황은 심지어 저희 학생 한 20명을, 당시 막 시작했던 NVIDIA 사무실에 불러서 피자를 사주시면서 ‘너희들도 창업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어요.”
-20여년 전에 젠슨 황을 만났네요. 젠슨 황은 당시에도 트레이드마크인 가죽잠바 입고 있었나요?
”기억이 안 납니다. 여튼 되게 젊으셨죠. 한국에 돌아와서 나도 창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컴퓨터 사이언스 전산과를 전공했고, 제 룸메이트가 산업디자인과를 했던 친구인데 그 친구를 꼬셔서 창업을 했어요. 당시에는 사람들이 자기 컴퓨터에 있는 이메일이나 프로그램들을 밖에서 접속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었거든요.”
“전문가들은 그때 리모트 데스크탑 같은 걸로 접속해 화면을 불러냈는데 좀 어려웠죠. 제가 클라이언트를 웹브라우저에서 자바나 액티브엑스로, 아이디랑 패스워드만 치면 자기 컴퓨터 화면을 불러올 수 있는 걸 만들었어요. 좀 조잡하긴 했지만요.”
-대학생이 창업하기엔, 시드 머니가 없었을텐데요?
”당시 정보통신부 창업경진대회라는 데에 소프트웨어를 냈는데, 덜컥 그 분야 1등을 해서 상금 1억 원을 받았어요. 그걸 시드머니로 회사를 만들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잘 안 되니까 일본 갔고, 거기서 손태장 회장님도 만났죠. 그 당시에 소프트뱅크가 한국에서 ‘소프트뱅크 커머스 코리아’라고 큰 소프트웨어 유통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프트뱅크하고도 첫 인연을 맺었죠. 당시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의 눈에 띄고 첫 투자를 받았었고요. 그게 첫 회사의 시작이었습니다.”
2. 장병규 의장 “준표야, 재밌는게 있는데 와서 들어볼래”
-학생 창업치고는 굉장히 운이 좋은 상황이네요. 물론 개발력이라는 실력도 있었겠지만요.
”제가 은인이 되게 많은데, 당시 정보통신부에서 했던 창업 경진대회의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 데이콤의 신사업 담당 상무셨어요. 되게 좋게 봐주시고요. 대회가 끝난 이후에 사무실로 불러서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나중에 데이콤이 저희 소프트웨어를 약간 공동 사업 형태로 본인들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것도 도움을 주셨고요.”
“첫 창업회사인 에빅사의 한국 사업은 데이콤이 인수했어요. 일본 사업은 그 당시에 일본 지사장이었던 친구가 스핀오프 했어요. 여기는 지금 일본에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서 ‘EVIXAR’라고 검색해 보시면 아직도 24년 된 기업으로 살아있고, 제가 뽑았던 친구가 지금 대표이사로 있고요. 제가 창업자로 남아 있습니다. 지분은 없습니다만, 제가 만들었던 소프트웨어와 히스토리는 아직 남아 있죠.”
-에빅사를 중도에 매각한 이유는?
”한국 사업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당시만 해도 B2B 소프트웨어로 한국에서 돈을 벌기에는 좀 일렀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사업이 잘 성장하기도 어렵고요.”
“두 번째로 공동 창업자들이 휴학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징집 영장이 떨어져서 군대를 다들 가야 했어요. 그 창업 멤버 중 하나가 지금 루닛의 창업자인 백승욱 의장입니다. 백승욱은 카이스트 방송국 동아리 후배인데, 공동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에요. 그 친구도 군대를 갔어야 했고, 같이 창업했던 다른 친구도 군대를 갔어야 했고요. 저는 운 좋게 당시 병역 특례 제도로, 곰플레이어를 만든 그래텍이라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래텍 병특 출신인거네요?
”거기서 병역 특례를 3년간 했고요. 그때 기업이라는 걸 제대로 배웠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학생이었잖아요. 비록 투자는 받았지만, 모든 것들을 그냥 책을 보고 했어야 했던 때입니다. 재무부터 모든 걸요. 너무 힘들었던 건,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
“당시는 선배 창업자들이 후배들과 많이 교류하던 시기도 아니고, 벤처캐피털이 당시에도 있긴 했지만, 시드 투자를 해줬다고 지금처럼 VC가 붙어서 도와주는 때는 아니었고요. 모든 걸 맨땅에 헤딩하면서 해야 했던 게, 사실은 지금의 밑거름도 됐지만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경영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공동 창업자들은 어떻게 대우해야 되는지, 직원들은 뽑아서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봤던 사람들이 아무도 없던 시기였죠. 어찌 보면 에빅사를 잘 성장시키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텍은 당시엔 네이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벤처의 대표주자’ 중 한 곳이었죠.
”그래텍이라는 회사는 당시에 엄청난 성장을 할 때였어요. 제가 병특으로 입사할 때는 강남파이낸스센터에 네이버와 한 층을 같이 쓰던 시절이었어요.”
“당시에 배인식 대표님과 이해진 의장님이 아주 가깝게 교류하시던 시절이었죠. 당시 그래텍이라는 회사의 창업자 네 분은 삼성전자 출신들이셨어요. 회사가 굉장히 잘 구조화되어 있었어요. 재무팀, 인사팀, 법무팀부터 해서, 개발 쪽은 CTO 산하에 프론트 개발팀과 백엔드 개발팀이 있었죠. 저는 그래텍이라는 회사에서 개발도 하고 신사업도 기획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던 3년이었습니다. 당시 배인식 대표님이 스물넷, 스물다섯이었던 저에게 막중한 임무를 많이 맡겨주셨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스케일러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쓰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설계를 해야 되고 어떤 걸 고민해야 되는구나’부터 ‘이런 것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하고 또 제휴와 비즈니스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최전선에서 배울 수 있었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 창업자들도 그런 기업의 경험이 있는 게 아마 ‘트라이 앤 에러’를 줄일 수 있는 되게 중요한 방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병특 끝내고 다시 두번째 창업? 장병규 의장이 도와주셨다고?
”병특 생활이 끝나고 또 끓어오르는 이 욕망을 주체를 못하고 동료 창업가들을 좀 찾고 있었는데, 당시에 소프트뱅크벤처스가 EIR 제도라는 걸 만들어서 저한테 오퍼를 했었어요. VC가 창업가에게 급여를 좀 주면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같이 하고, 대신에 이 창업가가 창업을 하게 되면 거기에 투자를 제일 먼저 하는 거죠.”
-전직 창업자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진짜 창업하게 되면 시드를 태워주겠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창업가에게 오피스도 주고 급여도 좀 주면서 정보도 주잖아요. 포트폴리오들에게 조언도 받고. VC는 이 창업가가 창업했을 때 제일 먼저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요. 미국은 그걸 많이 합니다. EIR 제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액티브하게 하지는 않는데요. 그게 제가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처음 조인했던 때였고요. 심사역은 아니고 EIR로 들어갔죠.”
“그때 크래프톤의 창업자이자, 학교 선배셨던 장병규 의장님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준표야, 재미있는 기회가 하나 있는데 너 와서 좀 들어볼래?’라고요. 엔써즈의 대표 창업자였던 김길연 대표를 소개해 줬어요.”
-이미 준비 중인 엔써즈 프로젝트에 공동창업자로 참여하는 형태?
”맞습니다. 장병규 의장님이 ‘엔써즈라는 동영상 검색 회사를 만들려는 팀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 너처럼 미디어 회사에서 일을 해봤고 기술도 알고 하는 친구가 여기 공동 창업자로 하면 좋을 것 같겠다’라고 소개했죠. 코파운딩 팀이 만들어졌었고, 엔써즈라는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 합류했었습니다. 이게 두 번째 회사고요.”
“엔써즈라는 회사는 앞의 회사에 비해서는 다들 경험들도 좀 있고 각자의 전문성도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잘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투자자는 장병규 의장님이셨고요. 그리고 제가 참여하면서 소프트뱅크벤처스까지 또 투자를 했죠.”
-당시 장병규 의장님은 첫눈으로 엑싯해서 자금이 있던 상황이죠?
”사실은 그때 장병규 의장님이 그걸 파시고 약간의 휴식기였는데, 그때 후배들에게 투자를 하셨어요. 당시 본엔젤스 만들기 전입니다. 개인적으로 엔써즈에도 투자했죠. 너무 감사한 선배죠. 인생에 큰 은인 중 한 분이시죠.”
“당시 엔써즈는 지금 돌이켜봐도 대한민국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모았던 회사였습니다. 카이스트, 서울대, 포항공대의 전산과 중에서도 좋은 인재들이 모였죠. 그때 모토가 ‘Beyond Google’이었어요. 동영상 검색에 있어서는 우리는 구글보다 잘할 거다라는 모토로 만들었고 실제로도 정말 끝내주게 검색을 잘했습니다.”
-엔써즈는 말하자면 동영상 검색 서비스 벤처였던건가요?
”짧게 설명을 드리면 그 당시만 해도 구글 비디오 검색이 굉장히 후졌어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검색하면 인기 있는 동영상 몇백 개가 똑같은 게 나왔습니다. 분간할 방법이 없어서 구글의 크롤러가 모으기만 한 거죠. 근데 엔써즈는 동영상을 긁어와서 동영상을 분석해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동영상의 DNA라고 표현하는데, 몇 가지 특징점을 뽑으면 이 동영상이 아무리 변형이 되고 아무리 편집이 돼도 같다는 걸 알 수 있죠. 전 세계에 있는 동영상을 긁어서 같은 걸 다 묶어요. 그룹핑이 되잖아요. 그룹핑이 되면 저희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이 그룹이 클수록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걸 추정할 수 있죠. 검색 결과에 제일 중요한 건 랭킹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또 보잖아요.”
“이 그룹의 크기와 얼마나 최근에 올라왔느냐에 대한 시의성을 합쳐서 랭킹을 내려봤더니 너무나도 압도적인 검색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만반의 준비를 해서 공식 서비스 런칭을 했습니다.”
-구글보다 좋은 동영상 검색 기술이었는데도 시장에선 안 먹혔다?
”일단은 포털들이 본인들 카페나 이런 데 있던 영상들을 저희가 크롤링해서 가져가는 거에 대해 대단히 불편했고요. 차단을 했어도 긁어올 수도 있긴 했는데, 보니까 프라이버시 이슈도 있었어요. 왜 이 포털들이 불편했냐 하면 저작권이 없는 영상들이 엄청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예요.”
“당시에 유튜브도 마찬가지였고요. 암묵적으로 그냥 묵인하던 시절입니다. 저희가 이걸 다 긁어내니까 그 당시에 너무나도 많은 컴플레인들이 들어왔고요. 저희도 이걸로는 머니타이징을 못하겠다 생각했죠. 뭐냐 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좋은 콘텐츠 결과를 보여주지만, 이게 다 불법인데 이걸 어떻게 수익화를 시키지라는 고민을 했고, 결정을 내렸어요. 그 검색 엔진을 닫았습니다.”
뉴스레터 쫌아는기자들은 주 3회 발송하는 유료 레터입니다. 오늘은 무료 콘텐츠는 여기까지 입니다. 전문은 유료 구독자에게 제공합니다. 유료 구독자에게는 지난 3년간 발송한 전체 유료 콘텐츠를 공개합니다. 아래는 원문에 있는 ‘질문’과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3. 삼성과 계약 맺었던 엔써즈... 대기업에 매각했다가 길을 잃었다
-정말 아깝다. 무조건 가야 되는 건데.
-수익을 내는 스타트업으로 한 단계 나간 거네요? MBC 이후엔 당연히 다른 방송국? 삼성전자와도 계약했다고 들었어요.
-삼성의 스마트TV와 협업한 스타트업인 셈인데, 엄청난 돈을 벌 기회를 잡았다?
-삼성과는 대당 계약하는게 나았을텐데, 아쉽네요. KT로 팔리곤 순조롭게?
-두번째 창업도 그렇게 ‘아웃’되는 길? 아니면 절망의 순간에 반전?
-100번의 PT, 말은 쉽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 그레이스노트에 두번째 창업 회사를 다시 넘긴거네요.
4. 두번 창업 때마다 투자해준 소뱅벤처스... 엑싯한뒤 소뱅벤처스에 입사
-두 번 창업하곤, 곧바로 VC의 심사역으로 변신한건가요?
-직접 투자자로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엑싯은 했지만, 돈은 충분치 않았다? 왜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입사했나요?
-이준표 대표, 본인이 만든 스타트업보다 이 대표가 투자한 회사들이 밸류가 더 높네요.
5. SBVA는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나
-SBVA가 투자할 스타트업을 고르는 기준은 뭔가요?
-SBVA는 아시아 넘버 1 VC가 되겠다는 목표죠? 근데 어떤 기준으로 넘버1인 거죠?
-정량적인 목표는 없나요. 아시아의 테크 스타트업 100곳 이상 투자한다든가.
-규모로는 아시아 넘버 1 쉽지 않겠죠?
-도쿄대 공대생이든 아니면 난양공대생이든, 창업할 아이템을 잡았을때 ‘일단 서울에 가서 먼저 SBVA를 가장 먼저 만나고 싶다. 내가 맞는지 틀린지 한 번 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하도록?
-SBVA에서 돈 태워준다면 돌아가 동료들에게 ‘SBVA에서 시드 태워준다’고 자랑하는?
-현실적으로 규모는 비전펀드과 같은 곳을 이길 수가 없으니까.
-아시아 넘버1, 언제까지 이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