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들어가는 전기 부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조명’입니다. 선박 조명(마린 라이팅) 분야에선 우리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점유율 1위를 자랑합니다.”

대양전기공업 서영우(52) 대표는 선박용 조명을 시험하는 라인을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로 47년 된 이 업체는 중국·튀르키예 등 세계 33국에 선박용 조명을 수출한다. 작년 매출액 1342억원 중 절반이 수출에서 나왔다. 전 세계의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LNG(천연가스) 운반선은 물론 군함에도 이 회사의 선박용 조명이 투입된다. 유독 남다른 기술력을 자랑하는 덕분이다.

선박용 조명 시장에서 1990년대부터 줄곧 세계 1위인 대양전기공업의 서영우 대표가 회사 내 대형 암실에서 테스트용 조명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대양전기공업의 조명 제품은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LNG(천연가스) 운반선은 물론 군함에도 투입되고 세계 33국에 수출된다. 서 대표는 “지난해엔 회사 매출 절반이 수출에서 나왔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선박에 쓰는 조명은 물과 진동, 염분, 폭발을 견딜 수 있어야만 한다. 엔진 때문에 생기는 진동으로 쉽게 조명이 꺼져도, 작은 불꽃 하나가 인화성 가스와 만나 불이 붙어서도 안 된다. 길게는 6개월씩 검사 절차를 밟는다. 그만큼 기술 개발과 검증 조건이 까다롭다. 서 대표는 “선박 조명은 보통 바닷물에 자주 잠기는 등 염분이 많은 환경에 노출되기 쉽고, 그만큼 부식도 쉽게 될 수 있어 예민하게 제작해야 한다”면서 “적도나 북극, 영하 60도부터 영상 50도까지 온갖 극한 환경에서도 조명이 부식되지 않도록 수백 번 검사를 거쳐 제품을 만든다”고 했다.

회사는 본래 서 대표의 아버지인 고(故) 서승정 사장이 1977년 부산에서 시작했다. 첫 이름은 ‘대양전기제작소’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 선박업체들은 조명을 독일·일본 등에서 전량 수입해 왔다. 서승정 사장은 대한조선공사(현 HJ중공업)에서 10여 년간 선박 내 전기 설계를 맡았던 경력을 살려서 선박 조명의 국산화에 착수했다. 제품 개발 초기엔 보름씩 배에 올라 선원들과 운항에 나서며 같이 먹고 자는 일이 적지 않았다. 실제 선박에서 생활하면서 제품을 고쳐 나가야만 고품질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서다. 10여 년을 꼬박 연구에 매달린 끝에 선박용 조명 국산화에 성공,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업계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월에는 ‘스마트 조명 제어 시스템’의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선박 구역에 따라 조명이 스스로 조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선박 내부 복도에 들어가는 조명은 사람이 통행할 때만 켜지고, 엔진룸에선 시간에 따라 스스로 조도를 바꾸는 식이다. 이를 통해 근무시간 외에는 밝기를 평소의 5%까지 줄이고 탄소를 절감하는 기술이다. 서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선박이 늘어나는 만큼 조명 시스템도 스마트로 바뀌는 추세”라고 했다.

이 회사가 조명 기술만 남다른 것은 아니다. 2006년에는 세계에서 넷째로 바다의 97%를 탐사할 수 있다는 6000m급 무인 잠수정도 개발했다. 2009년에는 함내외통합통신시스템(ICS) 사업을 우리 기술로 독자적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이른바 ‘군함의 신경망’으로도 불릴 만큼 핵심적인 통신 체계 중 하나인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업체들은 해당 시스템을 독일·프랑스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서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 해군 함정의 100%가 이제 우리 회사의 ICS를 쓰고 있다”면서 “ICS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술인 만큼, 반드시 국산화에 성공해야 한다고 보고 개발을 시작했고, 결국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는 철도 배전반 사업도 하고 있다. 철도 배전반은 철도 차량에 설치된 모든 전기 기기의 작동과 제어에 쓰이는 전력을 수전하고 배전(전기를 최종 소비처에 공급)하는 장치다. 현대로템에 납품, KTX와 SRT에서도 대양전기공업 제품을 쓴다. 4년여 전부터는 일본 전자회사 히타치를 통해 대만 철도에도 납품하고 있다.

대양전기공업은 요즘도 매년 전체 직원 370명 중 90명(약 24%)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다. 앞으로 AI(인공지능) 연구 및 투자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서 대표는 “연구·개발 인력이 4분의 1인 우리는 거의 스타트업이나 다름없는 회사지만, 창업주인 아버지가 ‘애국을 위해선 밑바닥 기술부터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만큼 앞으로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