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오랜 시간 고착화된 문제 중 일부는 종종 ‘관행’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아 마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모나지 않을 뿐더러 혹여 문제로 인식하더라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일부처럼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당연시하는 불편에 의문을 제기하고, 직접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설때 비로소 창업가의 여정이 시작된다.

의약품 산업은 까다로운 규제로 인해 혁신이 더딘 분야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의약품 거래 분야는 특히 IT 기술의 손길이 크게 닿지 않은 분야다. 외부인의 눈에는 단조롭기만 한 약국의 일상에서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 의약품 B2B 전자상거래 플랫폼 ‘약올려’를 운영하는 가진웅 룩인사이트 대표는 의약품 유통 분야 물밑에서 혁신의 기회를 포착했다.

지난 2001년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구호 아래 국내에서 의사는 진료와 처방, 약사는 의약품 조제를 각각 담당하는 의약 분업이 본격 시행됐다. 이후 지금처럼 약국은 처방전 기반의 조제만을 담당하고, 병원 도매는 의사와 거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가진웅 룩인사이트 대표 /룩인사이트

◇문전약국의 페인 포인트는

가 대표가 제약회사에 근무할 당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고착화된 의약품 유통 시스템으로 인해 국내 1400여개 *문전약국들이 짊어지고 있던 페인 포인트였다. 현행 약사법상 약국은 전문 의약품을 도매상으로부터 사입해 환자들에게 판매하고, 이때 마진은 남길 수 없도록 돼있다.

*문전약국: 종합병원 및 의료기관 인근에 자리해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은 환자들이 바로 들러 약을 조제받을 수 있도록 운영되는 약국

문제는 국내 의약품 도매가 약 4000여개에 달하는 1·2차 유통업체를 통해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수요처를 찾지 못하거나 유효기간이 남았음에도 업계 관례상 유통 불가 취급되는 의약품에 대해 유통업체에서 반품 거절로 인해 환불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약품 소매 업체인 약국은 잔존 의약품을 그대로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약국의 손실로 이어진다. 실제 손실 규모를 전체 약국 수로 추산하면 한 곳당 연간 평균 5000만원에 달한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따르면 약국이 환자에게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때 약값의 30%만 환자로부터 받고, 나머지 70%는 3개월 후 건강보험공단에서 수령하게 된다. 이 3개월의 공백으로 인해 도매상은 약국과 불가피하게 외상 거래를 진행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국내 전체 문전약국의 연 매출 8조원 중 약 2조원의 외상 부담을 도매상이 견뎌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2조원의 자금을 무리 없이 운용할 수 있는 대형 통합 도매상이 없기에 외상 채권 부담을 분산시키고자 지금처럼 3500여개의 1차 도매상이 난립하게 됐다.

이처럼 통합된 의약품 B2B 유통 시스템의 부재는 폐기 약품의 환불 불가, 3500여개 도매상의 중복된 의약품 배송 경로 및 공차 운행 등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켰음에도 약국들은 그저 짊어지고 가야할 시장의 관행 정도로 인식해왔다. 더욱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 수집 경로조차 극히 제한된 탓에 목소리를 내기 이전에 문제 인식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약올려 서비스 화면 /룩인사이트

◇병원 도매와 문전약국을 연결, 새로운 생태계에 도전

가 대표는 업계 전반 및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 각자가 가진 페인 포인트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2019년 의약품 반품 보장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의약품 B2B 커머스 플랫폼 ‘약올려’를 선보였다. 약올려의 단기적 목표는 분산된 유통의 통합과 플랫폼 선결제 시스템 적용에 따른 마진 확대로, 약국에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오랜 기간 단절된 병원 도매와 문전약국을 연결해 의약 산업 생상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그 일환으로 약올려에는 약국이 의약품을 구매하는 시점에 추후 발생할 반품을 미리 보장하는 포인트를 선제 지급하는 ‘낱알반품포인트’ 제도를 업계 최초로 도입, 실제 반품이 필요한 의약품 발생 시 증빙자료 검증 후 예치금으로 전환해 이를 구매에 대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약올려 출시 직후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올해 1월 월 거래액 20억원 달성 이후 7월 30억, 11월 50억 등 매월 거래액을 갱신하며 2024년 연 거래액 400억원을 돌파했고 월평균 성장률(CMGR)은 약 21.4%에 육박했다. 문전약국을 비롯해 약 1900여개 약국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했으며 월평균 주문 건수와 재구매율은 각각 1만1000건, 88.4%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투자자와 정부의 관심도 뜨겁다. 약올려는 2023년 3월 스파크랩으로부터 시드(Seed) 투자를 유치했으며, 지난해 8월 중소벤처부의 팁스(TIPS) 프로그램에 최종 선정돼 5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했다.

2025년의 시작을 앞둔 가진웅 대표와 룩인사이트의 인재들이 그리는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이들은 국내 1위 문전약국 유통 통합 플랫폼으로의 자리매김과 함께 의약품 유통 데이터 전문 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그리고 있다. 가 대표는 “회원 약국들의 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리 주문이 필요한 의약품 종류와 수량을 알맞은 시기에 추천해주고, 주문에서 재고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디지털화해 약사들이 업의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약올려는 규제의 장벽을 넘어 산업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며 의약품 유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무릇 혁신은 용기있는 자의 몫이라는 표현처럼 관행의 껍질을 부순 가진웅 대표와 약올려가 터놓은 새로운 물꼬가 의약품 유통 생태계에 큰 물결로 자리잡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