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IT 커머스 기업 텐핑의 고준성 대표.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서 시작해 직접 상품까지 제작하기 시작했다. /더비비드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수 없이 생기고 있다. 아무리 신박하고 좋은 기술을 갖춘 쇼핑 플랫폼도 소비자 눈에 띄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표 상품이나 브랜드를 내세우는 게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IT 커머스 기업 텐핑의 고준성(49) 대표가 기회를 잡은 방법이다. 고 대표를 만나 온라인 커머스 성공 방정식을 들었다.

◇문학소년 자아 숨긴 카이스트생

느릅나무 뿌리의 껍질인 유근피로 만든 ‘유근피 비누’. /텐핑

텐핑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UUU몰의 대표 상품은 ‘유근피 비누’다. 유근피는 느릅나무 뿌리의 껍질이다. 동의보감에 염증 치료제 중 하나로 소개돼 있다.

텐핑은 유근피로 여드름 피부 완화에 도움이 되는 비누를 만들었다. 화학 재료를 쓰지 않아 피부가 민감한 사람도 자극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피부 진정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출시 2년 만에 18만개 판매를 넘었다.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uw7yk3)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진로는 다르게 흘러갔다.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카이스트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카이스트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했다. “28살이었죠. 취미로 쓴 소설이 학내 문학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숨겨뒀던 문학 소년의 자아를 표출하기로 마음먹었죠.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병역 면제권을 포기하고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한 언론사의 기자로 입사했다. 꿈을 이뤘다 생각했는데 거기까지였다. 근무 환경이 이상향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바로 퇴사했다.

텐핑 설립 4년 차에 직원들과 파티 중인 모습. /고준성 대표 제공

2004년 포털 다음에 입사해 IT 플랫폼 기획 업무를 맡았다. “글에 광고를 달아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저처럼 글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돈 벌며 글 쓸 수 있길 바랐거든요. 2009년에는 광고 기술에 대한 특허를 냈어요. 광고가 포함된 특정 링크를 게시하면 게시자와 클릭한 소비자의 정보가 기록되는 기술이죠. 이런 광고 시스템에 흥미를 느껴, 제일기획으로 이직했어요.”

제일기획 입사 4년 차,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특허 기술을 발전시킨 아이디어를 사내 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개인이 마케터가 돼 링크와 함께 광고 글을 올린 후 수익을 쉐어받는 플랫폼을 구상했어요. 회사를 설득해 창업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유근피 비누를 만드는 모습. 각종 천연 오일과 유근피 베이스를 섞어 제조한다. /고준성 대표 제공

2015년 1월 제일기획이 주주로 참여하는 형태로 텐핑 법인을 설립했다. “개인이 마케터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어요. ‘광고 글을 올리며 돈 버는 알짜 부업’으로 알려지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후 외연이 확장되면서 마케팅 전문가까지 회원으로 유입됐고, 플랫폼이 광고대행사의 역할도 하게 됐습니다. 종합 마케팅 플랫폼으로 정착했습니다.”

창업 초기 초점을 맞췄던 ‘개인들의 참여’가 잊혀진 게 아쉬웠다. “과일 장사하셨던 부모님이 떠올랐어요. 마케팅은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만, 물건을 사고파는 건 진입 장벽이 낮잖아요. 그래서 떠올린 게 ‘개인이 판매자로서 제품 판매와 홍보도 할 수 있고, 소비자도 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소비자끼리 쇼핑 친구를 맺으면 서로 물건을 살 때마다 일정 금액을 환급받는 시스템이에요. 쇼핑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구조죠.”

◇플랫폼 개발 앞서 마주한 뜻밖의 재료

비누를 성형한 다음 금형프레스로 찍어내는 모습. /고준성 대표 제공

전자 상거래 플랫폼 개발에 앞서 차별화 전략을 짰다. “두 가지 방법이 떠올랐어요. 오픈 마켓(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온라인 몰)처럼 다양한 상품군을 보유하거나, 독자적인 대표 상품을 내세우는 거죠. 전자는 상당한 자본이 필요해요. 후자가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만의 대표 상품이 있으면 열성 소비자가 생기고, 플랫폼 홍보까지 되는 선순환을 기대했어요.”

2019년 2월 대표 제품 후보 물색에 들어갔다. “고민하던 중 한 직원이 유근피라는 천연재료를 내밀었어요. TV 프로그램에서 이걸로 피부 관리하는 사람을 봤다면서요. 직원들과 반신반의하며 유근피 가루로 팩을 해봤는데 정말 피부가 맑아지는 것 같더군요. 어떤 직원은 무좀을 없애는 데도 효과를 봤다고 해요. 이걸 세안 비누로 만들면 반응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유근피를 이용한 비누가 시장에 없어서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죠.”

완성된 비누 모습. /텐핑

곧바로 제조사를 찾았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회사에서 비누를 제작하긴 어렵잖아요. 여러 비누 제조사를 둘러봤어요. 그 중 천연비누 제작에 특화된 회사와 손을 잡았어요. 먼저 재료를 구체화했어요. 피부 진정에 좋다는 병풀추출물과 편백수, 코코넛오일, 동백오일 등 자연에서 나온 성분으로만 구성했죠.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량 생산하는 비누와 달리 960시간 동안 저온숙성을 해요. 그 과정에서 천연 글리세린이 생성돼 보습력을 만듭니다.”

좋은 재료로 공들인 만큼 효능 입증에 신경 썼다. “화장품은 효과를 알리려면 꼭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해요. 완성된 제품으로 각종 테스트를 의뢰했어요. 세명대학교 화장품임상연구지원센터에서 한 달간 임상 시험 한 결과, 피지량이 16.6% 감소한 걸 확인했습니다. 한국분석시험연구원에서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순한 제품이라는 인증도 받았죠. 이 외에도 엄격하기로 소문난 독일 피부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더마테스트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어요.”

◇4000개 판매 그친 첫 6개월을 넘긴 힘

플랫폼 구상안에 대해 발표 중인 고 대표. /고준성 대표 제공

1년 간의 개발 끝에 유유유 유근피 비누가 탄생했다. 예부터 천연 소염제로 쓰인 유근피의 효능을 살린 세안 비누다. “여드름 원인균인 아크네균, 모낭염 등 6가지 유해균을 99.9% 제거합니다. 파라벤, 페녹시에탄올 등 화학성분을 이용하지 않아 자극 없이 사용할 수 있죠.”

2020년 1월 UUU몰오픈과 동시에 유근피 비누를 출시했다. 첫 6개월간 4000개가 팔렸다.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이었다. “전략 수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구매 후기가 점점 쌓이는 거예요. 재구매율도 늘더군요. 낯선 제품이라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도 후기를 보고 구매를 결심한 거 같아요. ‘재료가 신기해서 샀는데 신세계를 경험했다’ 같은 반응을 볼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드름 때문에 고생하던 아이를 위해 샀는데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분의 후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장문의 후기를 보니 울컥하기까지 했죠. 그해 10월부터 전담 마케팅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홍보했어요. 하나둘씩 올라온 후기들이 이젠 1만건이 넘습니다.”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uw7yk3)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도처에 있다

유근피 비누를 들고 웃어보이는 고 대표. /더비비드

비누에 이어 유근피로 만든 샴푸바와 린스바, 필링 젤, 진정 팩 등을 출시했다. 제품의 인기에 힘입어 플랫폼도 흥하고 있다. “50여개 업체가 저희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이용자 수도 점점 늘고 있죠. 대부분 유근피 비누를 주기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가입한 분들이에요. 처음부터 플랫폼 홍보만 했으면 이렇게 순조롭지 않았을 거예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을 잘 기획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비 창업자에게 아이디어를 잘 포착할 것을 강조했다. “한우물만 파는 것도 좋지만, 좋은 길은 생각보다 여러 군데에 퍼져있어요. 유근피라는 천연물로 IT 플랫폼을 활성화한 것 처럼요. 뭐든지 다방면으로 생각해보세요. 창업은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해 세상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일이에요. 좋은 아이디어와 그걸 실행할 열정이 있다면 도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