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식물성 간편식 스타트업 브라잇벨리(Britebelly) 김지현 대표. 채식하는 이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바란다는 김 대표. /더비비드

3년 전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친구를 따라 이태원에 있는 비건(엄격한 채식주의) 식당을 찾은 적이 있다. 콩으로 만들어진 고기는 ‘고기’라 부를 수 없을 만큼 텁텁했다. 소 한 마리가 1년에 뿜어내는 방귀·트림만으로 10㎏이 넘는 메탄이 만들어진다며 열변을 토하는 친구 눈치를 보면서 정말이지 ‘겨우’ 그릇을 비웠다.

지금은 사정이 확 달라졌다. ‘맛 없는 식재료’로 치부됐던 ‘대체육’ 시장은 최근 3년 새 눈에 띄게 성장했다. 대체육이란 콩이나 해조류 등 비동물성 재료를 가공해 고기처럼 만든 식재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비건식품’ 보고서를 통해 2021년 신규 비건 인증을 받은 식품이 286개라고 발표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151% 늘었다.

브라잇벨리에서 만든 대체육 간편식 '플랜트왕교자', ';플랜트볼 카레라이스'. /브라잇벨리 캡처

이제 채식은 일종의 문화가 됐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길거리마다 비건 레스토랑이 하나씩 문을 열고 있고, 편의점에선 콩고기 육포를 볼 수 있다. 대체육을 이용한 간편식도 인기다. 식물성 간편식 스타트업 브라잇벨리(Britebelly)가 만든 비건 함박 스테이크는 2021년 8월 출시한 후 78만개 넘게 팔렸다. 브라잇벨리 김지현 대표(44)를 만나 고기의 미래를 들었다.

◇수미상관(首尾相關)이란 이럴 때 쓰는 말

브라잇벨리(www.organica.kr)는 식물성 고기인 대체육을 활용한 간편식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그동안 대체육은 햄버거 속 패티나 샌드위치 부재료에 불과했는데, 브라잇벨리는 대체육을 메인 재료로 전면에 내세웠다. 함박스테이크, 파스타, 만두, 짜장면 등 못 만드는 게 없을 정도다.

건강스낵을 들고 있는 김 대표. /김지현 대표 제공

어릴 적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아버지가 신기했다. “아버지께서 채식주의자입니다. 11살 때 소 도축 장면을 직접 본 뒤로 고기를 일절 입에 대지 않으세요. 처음엔 육고기만 안드시다가, 지금은 생선도 안 드세요. 어릴 적엔 그런 아버지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음식일 뿐인데 고기를 먹으면서 왜 죄책감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2000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한 언론사 기자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13년간 증권가부터 외교부, 국회, 청와대까지 드나들며 특종을 찾아다녔습니다. 30대 중반에 10여 명의 팀원을 이끌고 최우수 부서상을 받았을 만큼 꽤나 인정받았어요.”

'더인베스터’가 개최한 '제1회 더인베스터스 초이스 시상식'에 참석한 김 대표(왼쪽). /김지현 대표 제공

올바른 먹거리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은 재직하던 회사의 계열사였던 건강식품 브랜드였다. “친환경 자연식 수프, 주스 등을 만들었는데요. 건강스낵을 일본 고급 편의점에 납품하고 연 매출이 10억원으로 뛰는 것을 보며 건강한 음식을 찾는 사람이 더욱더 많아질 것이라 짐작했죠.”

2017년 귀국해 온라인 영문 경제전문매체인 ‘더인베스터’의 책임자가 됐다. 이때 스타트업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지금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된 기업들이 당시엔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어요.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저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20년 5월 쿠팡의 채용담당이사로 이직했다. 주로 임원 채용을 담당했고 인턴까지 포함해 1년 5개월간 약 30~40명을 뽑았다. “기업문화와 잘 어울리는지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어요. 문제를 해결할 때 신중하게 접근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더라도 빨리 시도하고 그다음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이 스타트업과 잘 어울렸습니다.”

브라잇벨리 함박스테이크를 맛본 게 전환점의 계가 됐다. “식품업에선 맛이 곧 사업성이죠. 아버지 같은 채식주의자는 물론 저처럼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간 경력이 브라잇벨리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대체육 2세대의 등장

브라잇벨리는 ‘2세대 대체육’을 자처하며 서양 식단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체육 메뉴를 선보였다. /더비비드

대체육은 브라잇벨리 이전에도 있었다. 브라잇벨리(www.organica.kr)는 ‘2세대 대체육’을 자처한다. “대체육이라고 하면 대부분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patty)를 떠올리는데요. 미국에서야 하루걸러 햄버거를 먹는다지만 아시아에선 그렇지 않잖아요. 서양 식단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체육 메뉴를 기대하는 수요가 높습니다. 딱 그 점을 노리고 있죠.”

작년 8월에 출시한 함박스테이크는 7개월 만에 78만개 넘게 팔렸다. 이후 유니짜장면, 마파두부, 프랜트볼 파스타 등을 잇따라 출시했다. 모두 전자레인지 또는 에어프라이기로 5분 이내에 조리 가능한 간편식 형태다. “비건 레스토랑은 많은데 비건 간편식은 흔치 않죠.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비건식단을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콩을 고기로 둔갑시키기 위한 실험실이 사무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비비드

콩으로 만든 고기임을 잊게 하려면 오감(五感)을 완벽하게 속여야 한다. 빨간 고기색을 내기 위해 비트, 파프리카에서 추출한 천연색소를 활용했다. 허브와 양파, 마늘을 이용해 콩 냄새를 빼고 식물성 지방을 적절히 배합해 육즙을 만들어냈다. 가장 큰 난관은 식감이다. 고기 특유의 불규칙한 조직감과 탄력을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새 버전의 대체육을 먹어봅니다. 어떤 날은 염도를 좀 낮추고 어떤 날은 물성을 더 추가하는 식인데요. 고기와 똑같은 맛을 내는 대체육을 만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미리 말하지 않으면 콩으로 만든 고기란 사실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까진 만들어냈다고 자부합니다.”

전자레인지에 4분간 돌리면 마파두부밥이 완성된다. 고기 없이도 감칠맛은 충분했다. /더비비드

당장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저조차도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고기를 끊지 못합니다. 대체육은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4인 가족이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 3개월간 자동차를 타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고기를 끊을 수 없다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 대체육을 먹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구를 지키겠다고 자신의 건강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식물성 고기가 무조건 건강한 식단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오히려 고기의 감칠맛을 내려다 나트륨 함량이 높아지거나 값싼 GMO(유전자 조작 농수산물)로 만들어 영양분이 부족할 수 있죠. 브라잇벨리는 GMO 식재료를 배제하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일반 육류 대비 포화지방을 80% 이하로 낮추고 단백질 함량은 10% 이상 높였죠.”

◇채식이 진지한 주제가 아닌 사회

브라잇벨리가 개발한 비건 간편식. 앞으로 한 달에 하나씩 신메뉴를 공개할 계획이다. /브라잇벨리

브라잇벨리(www.organica.kr)에게 경쟁자란 없다. “독보적이라거나 선두주자란 의미가 아닙니다. 과거엔 작은 스타트업이나 개인 식당에서만 만들던 대체육을 이젠 대기업에서도 만드는데요. 다른 대체육 제조업체와 정해진 파이를 두고 자리 싸움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시장을 키워나가는 것에 더 가깝죠. 파이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선택지는 점점 더 다양해질 겁니다.”

같은 이유로 당장은 업계 1위보다는 ‘시장 키우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2022 내추럴 프로덕트 엑스포’를 다녀온 뒤 많은 충격을 받았어요. 전 세계 약 132개국, 3500여 업체가 참가하는 미국 서부지역 최대 건강‧자연식품 전문 박람회인데요. 기존의 맛을 완벽하게 구현한 비건 브라우니를 맛보고 깜짝 놀랐죠. 최근엔 브런치 카페 몽크스델리와 새로운 비건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대체육으로 우리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수출해 K-비건을 알리고 싶습니다.”

(왼쪽부터) 우제진 CPO, 이익선 연구원, 김정은 연구원, 김진수 연구원, 정재연 연구원, 김지현 대표, 사업개발 담당 김지윤, 디자이너 최서진 /브라잇벨리.

채식하는 이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아들이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꼭 토마토를 빼고 먹습니다. 왜 먹지 않느냐고 묻지 않아요. 그저 아들의 취향이겠거니 하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유를 묻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채식하는 사람에겐 ‘왜?’란 질문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대단한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가 있어야만 고기를 끊을 수 있을 거란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채식이 더는 진지한 주제가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