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직장인들은 보통 오전 9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6시에 일과를 마감한다. 도매시장은 모두가 잠을 청하는 심야 시간대에 활기를 띤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도매시장 일대는 새벽에 버스로 점령당한다. 물건을 사입하려는 소매상이 전국에서 몰리기 때문이다.

양승우 대표(42)는 장사하는 사람도 밤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남대문 도매 사업자와 국내외 소매 사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남도마켓을 개발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남대문의 도매상품을 둘러보고 결제까지 할 수 있다. 양승우 대표를 만나 개발 스토리를 들었다.

도소매시장 연결 플랫폼 남도마켓을 개발한 양승우 대표. /더비비드

◇오픈마켓 1세대로 출발해 금융사 지점장까지

남도마켓은 남대문 도매 상인과 소매 상인 거래를 연결하는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다. 액세서리, 아동복, 패션, 꽃, 공예품 등 남대문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카테고리를 아우른다.

소매 상인은 비대면으로 신상품을 실시간 확인하고 사입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남대문 내 모든 매장의 모든 제품을 한 번에 묶어서 배송해 준다. 남대문 시장 상인회의 공식 파트너사다.

남도마켓은 남대문 시장 상인회의 공식 파트너사다. /남도마켓

양승우 대표는 전자 상거래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G마켓의 카테고리 매니저로 입사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상품기획자와 유사한 직무인데요. 명품 브랜드 구매대행 카테고리를 총괄했어요. 담당 카테고리의 매출이 잘 나와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별명도 붙었죠.”

잘나가던 중 우연히 근로 의욕을 확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제 카테고리에서 물건을 판매하던 셀러 분을 뵌 적이 있어요. 아버지뻘의 수더분한 어르신이셨는데요. 단 몇 달간 의류를 팔아 순이익 10억원을 벌어들였대요. 당시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직장 생활을 했지만 10억원이라는 액수에 충격을 받았어요.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쇼핑이라면 나도 빠삭한데.’ 창업을 해야겠다 결심했죠.”

양 대표는 G마켓 근무 당시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더비비드

퇴사 후 방송인 백보람, 걸그룹 LPG의 쇼핑몰을 1년씩 운영했다. 기대했던 만큼의 실적이 나오지 않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2011년 메트라이프생명에 입사했습니다. 기업재무관리, 개인자산관리, 세무컨설팅, 보험설계 등 다방면에서 전문지식을 쌓으며 지점장 자리까지 올랐죠.”

지점장 직함을 달자 연봉이 3억원까지 올랐다. “모교인 연세대로부터 연락을 받아 2년간 ‘성공한 선배와의 대화’를 주제로 한 특강도 했어요. 메트라이프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인들과 <21세기 인터넷 마케팅>, <한국의 전통시장론>, <슈퍼마켓 경영론>, <한국의 사라진 대기업> 등의 책도 공동 집필했고요. 그렇게 인지도를 쌓으면서 간간이 온라인 쇼핑몰 사업자들을 컨설팅했습니다.”

◇하루에 상인 100명 만나며 신뢰 확보

남대문 상인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남도마켓의 구성원들. /남도마켓

샐러리맨으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지만 늘 창업이 그리웠다. 온라인 쇼핑몰 컨설팅을 하다가 유의미한 변화를 발견했다. “15년 전만 해도 온라인 쇼핑몰의 주류는 여성복이었어요. 하지만 점점 남성복, 액세서리, 반려동물 용품, 아동복,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시장이 분화되더라고요. 여성복의 경우 주로 동대문에서 사입이 이뤄집니다.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하는 플랫폼도 잘 구축된 상태였죠. 반면 새로 부상하는 카테고리의 제품들은 대부분 남대문 시장에 밀집해 있는데 대표적인 도매 플랫폼이 없는 상태였어요.”

호기심을 느껴 남대문 시장에서 20년 가까이 액세서리 도매 일을 한 동생을 찾았다. “물어보니 도매 플랫폼을 준비하는 업체들로부터 여러 번 입점 제안을 받았대요. 하지만 남대문 시장 상인분들의 경계심을 완전히 푼 업체가 없었어요. 이미 운영 중인 플랫폼도 몇 군데 있었지만 높은 수수료나 사용료를 부과해서 상인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죠. 시장 상인들과 사이가 좋은 동생이라는 인적 자원도 있겠다, 제가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남도마켓은 액세서리, 아동복, 애견용품, 꽃, 성인의류 잡화, 인테리어 소품, 한복, 이불 등 남대문을 대표하는 상품 카테고리를 모두 아우른다. /남도마켓

2018년부터 남대문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준비에 착수했다. 동생이 ‘상도(商道)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도매 일을 관두고 손을 보탰다. “시장 상인들과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말 그대로 시장에서 살았어요. 하루에 100명 이상의 상인을 만난 적도 있죠. 이런 서비스 필요 없다며 문전 박대하시는 분은 다섯 번 이상 찾아뵀어요.”

상인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수요를 파악했다.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은 자동화된 플랫폼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진심’이었다. “시장 상인분들 대부분이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엄지족’입니다. 그만큼 연령대가 높아요. 플랫폼, 디지털화의 당위엔 동의하면서도 섣불리 도전하기가 꺼려지는 분들이죠. 그래서 도매 사장님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품 사진 촬영, 등록 등을 저희가 해주기로 했어요. 경쟁사들이 자사의 수익구조 개선에 혈안일 때 상인분들과 함께 호흡한 덕에 신뢰라는 자산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사입 삼촌이 하는 일 대신해드려요

남도마켓 서비스 화면과 남대문 시장에 걸린 홍보 현수막. /남도마켓

2020년 8월 남도마켓 법인을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 도매상 입점을 시작했다. 2021년 1월부터 소매상을 대상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했다. “액세서리, 아동복, 애견용품, 꽃, 성인의류 잡화, 인테리어 소품, 한복, 이불 등 남대문을 대표하는 상품 카테고리를 모두 아우르는 플랫폼입니다. 거래처 찾기, 상품 기획, 판매, 카탈로그 전송, 세금계산서 발행 등 여느 도소매 연결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모두 갖췄습니다.”

남도마켓에 입점한 도매상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IT기기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상품 사진 촬영, 상품 등록 등을 저희가 대신해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랫폼 운영과는 별개로 남도마켓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채널에 입점 도매상 홍보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남대문 도매상인분들을 위한 것이라면 뭐든 다 한다고 봐야죠.”

남도마켓의 구성원과 시장 상인의 다정한 모습. /남도마켓

셀러(소매상)의 경우 ‘선판매 후사입’도 가능하다. “nd pick이라는 상품 이미지 무료 사용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무료 제공된 사진으로 상세페이지를 만든 후 판매가 이뤄졌을 때 주문을 하면 되는 구조죠. 여기서 별도의 포장료를 지불하면 소비자에게 바로 배송도 해줘요. 사입을 위해 새벽에 시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물류 저장 공간 확보, 재고 처리 등의 압박 없이 판매를 할 수 있는 거죠. 제로 리스크에 가까워서 온라인 셀러 분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사입 비용 지원, 선정산 등의 서비스도 추진 중입니다.”

◇전 세계 소매상의 아마존 되는 게 목표

지난 5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설립 10주년 기념 디데이(창업경진대회)에서 청중상을 받았다. /남도마켓

지금까지 2500곳의 도매상이 입점했다. 남도마켓을 통해 판매용 제품을 찾는 소매상은 3만여 곳이 넘는다. 경쟁사와의 경쟁을 뚫고 남대문 시장 상인회의 공식 파트너로 선정됐다. 각종 기관으로부터 서비스의 필요성도 인정받았다. 신용보증기금 주관 네스트업 9기, 중소벤처기업부와 구글 플레이가 주관한 구글 창구 프로그램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4월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됐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설립 10주년 기념 디데이(창업경진대회)에서 청중상도 받았다.

“초창기때의 일이에요. 시장을 돌아다니다 76세 완구점 사장님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봤어요. 장난감을 아스팔트에 두고 촬영하더라고요. 그분에게 저희 서비스를 소개한 뒤 제품을 가지고 가서 예쁘게 찍고, 상품 등록을 해드렸어요. 빠른 시간에 상품이 팔리니 뛸 듯이 기뻐하셨어요.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죠. 남대문 시장은 대한민국의 제조업과 패션업을 이끌었던 능력 있는 생산자들이 한데 모인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도매상분들은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이끈 대단한 분들이신데 가속화되는 온라인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도매 상인들을 다양한 셀러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올해 가입 소매상 10만 곳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맞춰 서비스 전반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더비비드

가슴 철렁한 순간도 있었다. “앱 개발 경력이 부족한 개발자에게 초기 개발을 맡겼어요. 3개월이면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하더니 1년 3개월이 지나도 완성을 못하더라고요. 그 기간 동안 경쟁자들이 등장해서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플랫폼 출시 후에는 늦은 반응 속도가 발목을 잡았어요. 사용자는 많아지는데 플랫폼이 감당하지 못해, 가입자가 느는데 매출이 반토막나는 상황이 발생했죠. 이땐 정말 발을 동동 굴렸어요. 결국 개발자를 새로 고용해 로딩 속도를 반으로 줄였습니다. 지금도 그분들이 앱 개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고도화된 새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올해 가입 소매상 10만 곳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맞춰 서비스 전반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남도로보’라는 인공지능을 개발 중입니다. 남도로보를 활용하면 특정 액세서리의 디자인 유출을 방지하면서 이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매상에게 추천해 줄 수 있죠. 해외 사업도 중요한 축입니다. 남대문의 액세서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외국의 소매상이 먼저 알아보고 가입하는 걸 보고 외국어 서비스도 출시했는데요. 해외 거래처를 단기간에 3000개, 장기적으로는 3만 곳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전 세계 소매상의 아마존 같은 회사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