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2020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대형 전광판이 수조로 변신했다. 실제는 아니었다. 네모난 수조 안에서 파도가 끊임없이 첨벙대는 모습의 디지털 아트였다. 광고만 띄우는 줄 알았던 도심 속 전광판에서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니 저절로 화젯거리가 됐다.

‘코엑스 파도’가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국내에서도 디스플레이 콘텐츠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1년 서울의 크리스마스를 밝힌 신세계 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 KT 광화문 사옥의 미디어월 등 디스플레이가 도심 속 중요한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빛글림의 박진형(33) 대표는 디지털 아트에 국내 최초로 구독 모델을 결합했다. 박 대표를 만나 디지테리어 서비스 ‘빛글림’을 개발한 이유와 사업 확장성에 대해 들었다.

디스플레이 콘텐츠에 구독 모델을 더한 '빛글림'의 박형진 대표.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의 전광판에도 빛글림의 콘텐츠가 나온다. 전광판을 가리키며 웃어보이는 박 대표. /더비비드
◇디지테리어계의 넷플릭스

미디어 파사드와 미디어월은 디지테리어의 일종이다. 디지털(digital)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다. 모니터나 프로젝터, 또는 실외 대형 전광판에 예술 작품이나 디자인 삽화를 띄워 전자 화면을 장식적 요소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계절에 맞게 공간을 꾸미거나, 인테리어를 위해 벽지의 문양이나 바닥의 소재를 고르는 것과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분위기에 맞게 화면을 자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빛글림은 디지테리어계의 OTT 서비스다. 기업이 월 구독료를 내면, 빛글림이 소유한 사진·회화·디자인 삽화·영상을 기업의 디지털 화면에 띄울 수 있다. 빛글림은 80개국 1000명 이상의 신생 작가와 계약해 15만점의 작품 소유권을 갖고 있다. 빛글림 디자인팀에 속한 작가 10명이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지하철 역에 있는 미디어 월과 행사장의 미디어 아트들. 모두 빛글림의 콘텐츠를 활용한 공간이다. /빛글림

2018년 창업 이후 국내외 200개의 기업이 빛글림을 이용한다. 서울시청, 코엑스, 인천국제공항, 코리아나호텔, 메가박스 등 도심 곳곳 대형 전광판에서 빛글림의 콘텐츠가 노출되고 있다. 전광판 규모에 따라 월 100만원에서 400만원의 구독료로 콘텐츠를 띄울 수 있다.

2020년 서울산업진흥원의 제4회 서울혁신챌린지 과제에 선정돼 1억2000만원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 받았다. 개발지원금으로 작품을 분류하고 추천하는 AI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콘텐츠를 원격으로 전광판에 띄우는 기술 등으로 3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사진작가 아버지 통해 알게 된 예술의 세계
어린 나이에 홀로 유학길에 오른 박진형 대표. 취업보단 창업을 꿈꿨다. /박진형 대표 제공

박진형 대표는 2007년 고등학생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2017년 귀국 후 바로 창업했다. “방학마다 귀국해 여러 기업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에어컨 기업의 수출팀, 3D 프린터 기업 등에서 일해봤습니다. 처음엔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 한 직장에 머물 엄두가 안 나더군요..”

콘텐츠와 기술을 접목해보라는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당시 전공 교수님은 ‘미래엔 인공지능 기술로 더 많은 노동이 자동화될 것’이라며 미래 먹거리를 항상 생각해두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알파고나 넷플릭스처럼 문화 산업에 기술이 접목된 사례를 자주 알려주셨죠. 산업 공학을 전공하며 서비스 기획법을 익혔고, 간단한 프로그래밍과 빅데이터 관리 요령도 배웠어요.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어요.”

창업 초기 박 대표의 모습.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실무 경험을 했고 동시에 여러 기업을 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알리고 다녔다. /박진형 대표 제공

창업 아이템은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사진학과 예술 기호학을 연구하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사업을 구체화했다. “사진작가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작가의 개인전을 함께 다녔어요. 유학길에 오른 뒤부턴 아버지가 맡은 해외 행사의 행정 업무를 돕기도 했고요. 실무를 도우면서 느낀 건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대중의 관심을 받기가 쉽지 않고, 신생 작가에겐 작품을 선보일 창구조차 거의 없다는 거였어요.”

◇전광판에 광고만 틀라는 법 있나요
빛글림은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로, 핸드폰이나 스마트 TV 앱을 통해 디스플레이에 원하는 콘텐츠를 띄울 수 있다. /더비비드

신생 작가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고민하다 발견한 곳이 디지털 디스플레이다. “도심 속 전광판, 사무 공간의 대형 TV 화면, 사무실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 공공장소나 건물의 미디어월 등이 모두 전시 공간으로 보이더군요. 집에서 TV를 보지 않을 때 디지털 액자로 화면을 활용하는 것처럼요.”

대형 화면에 예술 작품을 띄우는 서비스를 구상했다. 타깃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공간’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잡았다. “행사를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선 광고나 정보성 이미지 외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콘텐츠가 필요하죠. 그런데 전광판에 미디어 아트 작품을 띄우려면 영상 콘텐츠 제작 업체에 의뢰해야 하니 번거로워요. 단발성이라 단가도 높고요.”

구독형 모델로 운영하는 대신 기업이 부담하는 이용료를 낮추기로 했다. “이용료만 지불하면 빛글림이 알아서 큐레이션하고, 주기적으로 작품 목록을 변경합니다. 빛글림 디자인팀이 전광판 크기에 맞게 해상도를 최적화해 송출하죠. 소형 디스플레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기업 사무실 내 디지털 화면에 빛글림의 콘텐츠를 띄우는 식이죠. 앱에서 콘텐츠를 고를 수도 있고요.”

2020년 베트남 하노이 롯데타워 내부 디스플레이에 빛글림의 콘텐츠를 띄우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사진은 롯데타워 개관식에서 테이프를 자르는 박 대표의 모습. /빛글림 제공

구독형 서비스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그만큼 콘텐츠가 내실 있어야 했다. 2018년이후 2021년 빛글림 앱을 출시하기까지 15만점 이상의 디지털 콘텐츠를 수집하고 직접 제작했다. “넷플릭스가 직접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것처럼, 앱 서비스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 제작에 직접 참여했어요. 신생 작가는 물론이고 유명 작가까지 찾아가 계약했죠. 이용자가 작가의 작품을 띄우면 계약에 따른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방식이에요. 해외 디지털 갤러리 사이트를 뒤져보며 해외 작가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80개국 이상의 다국적 작가와 계약했어요.”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건 아니다. “보통의 전광판이라면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오히려 이용료를 내는 서비스라니요. 처음엔 기업 담당자들의 시선이 차가웠어요. 사업초기엔 운영이 어려워 해외 사업, 다국적 기업의 프로젝트에도 많이 지원했습니다. 처음으로 수주에 성공한 것이 2020년 베트남 하노이의 롯데타워 내부 소형 전광판이애요. 담당자의 별다른 관리없이 전광판 속 콘텐츠가 다채롭게 변한다는 점에서 기업 담당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테리어도 한류 콘텐츠로 성장 가능
디지털 아트에 국내 최초로 구독 모델을 결합한 박진형 빛글림 대표. /더비비드

지난 1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함께 전기차 내부 대시보드 화면에 예술 콘텐츠를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했다.

최근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9억원의 투자금 유치에도 성공했다. 투자금을 기반으로 이용자가 선호하는 작품에 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작품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빛글림이 갖고 있는 15만점의 작품에 일일이 태그를 달아 검색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고객사의 작품 선호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사별 맞춤 추천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죠.”

새로운 아이템일수록 수익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익 모델을 만들기 전까진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다양하게 펼쳐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품을 알아서 골라달라거나, 반대로 직접 작품을 고르겠다고 하고, 특정 사진을 넣거나 제외해달라는 등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참 다양하죠. 이런 요청에 대응하면서 빛글림도 성장했습니다. 운영진의 한계를 넘어선 요청들은 기술적으로 해결해보려고 했고요. 고객의 피드백이 미래의 사업 방향성을 결정 지을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