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틱톡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뉴즈의 김가현 대표. /더비비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폭설에 갇힌 적이 있어요. 현장에 설치된 지도는 눈에 가려졌고 휴대폰은 먹통이었죠. 두려움이 닥쳐온 순간, 저보다 앞서간 사람이 눈 위에 새긴 화살표를 발견했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혼란스러운 세상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사람이 되겠다고요.”

‘화살표’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나운서 시절 난민이나 야생동물 같은 사회의 사각지대를 보도했고, 무턱대고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친구들이 안타까워 블록체인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숏폼 플랫폼 틱톡에서 IT 정보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콘텐츠를 공유한다. 론칭 1년 만에 총 조회수 10억회를 달성했다. 다음 화살표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틱톡 선생님’ 뉴즈의 김가현(32) 대표를 만났다.

◇틱톡 콘텐츠는 자극적이라는 편견 깬 스타트업
뉴즈는 숏폼 플랫폼 주로 틱톡에 올리는 숏폼 교육 콘텐츠를 만든다. /뉴즈

뉴즈(NEWZ) 뉴미디어 스타트업이다. 숏폼 플랫폼 ‘틱톡’을 중심으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같은 어려운 용어를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콘텐츠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일컫는 말)의 휴대폰 속 선생님으로 등극했다. 팔로워는 19만명에 달한다.

콘텐츠의 성공을 토대로 크리에이터 양성 사업에 뛰어들었다. 틱톡 공식 1호 숏폼 교육 MCN(다중채널네트워크) ‘메이저스’를 운영 중이다. 방송인이나 유명 지식인뿐만 아니라 청담동 헤어 디자이너, 의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크리에이터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크리에이터를 발판으로 브랜디드 콘텐츠나 IP(지적재산권) 활용 비즈니스까지 펼치는 중이다.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클린콘텐츠 캠페인 공모전’에서 대상과 장관상을 받았다. /김가현 대표 제공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클린콘텐츠 캠페인 공모전’에서 대상과 장관상을 받았다. 선정적인 콘텐츠가 많은 숏폼 플랫폼에서 정보성 콘텐츠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현재 아산나눔재단의 기업가정신 플랫폼 마루에 입주했다. 모두 단 2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3등급 받던 고등학생에서 외신이 인용하는 기자로

마음먹은 건 꼭 해내는 투지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만 해도 3~5등급 받던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어느 날부터 연세대가 너무 가고 싶은 거예요. 친구들과 선생님은 ‘네가 어떻게 거길 가냐’는 반응이었는데 기어코 해냈어요. 연대 신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현해 나갔어요. 음치지만 밴드부 보컬에 합격해서 축제 무대에 섰고, 연기를 못하지만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재주가 없어도 하고 싶으면 일단 도전해야 직성에 풀렸거든요.”

김가연 대표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해 아나운서, 기자 등으로 일했다. /김가현 대표 제공

대치동에서 신촌까지, 기나긴 등하굣길은 ‘언론인’이라는 꿈의 토양이 됐다. “학교를 오가는 대중교통에서 종이신문을 읽었는데요. 관심은 점점 ‘시사를 현장에서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커져갔어요. 전남 CBS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KBS 우리말 겨루기 연출, IT 매체 블록인프레스 기자 등 언론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죠.”

언론인은 그의 천직과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앞장서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었어요. 2018년 친구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모습을 봤어요.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려 블록체인 미디어에 입사했어요. 제 전략은 ‘전문가의 입’을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바이낸스 창업자 자오창펑, 링크드인 공동창업자 에릭 라이, 테크크런치 공동창업자 마이클 애링턴 등 블록체인, IT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을 단독 인터뷰했어요. 코인텔레그래프에서 제 기사를 인용할 정도였죠. 2019년 블록체인 업계에서 선정한 최고의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케이팝의 제왕보다 높은 조회수 찍은 콘텐츠의 비결
김 대표는 아나운서로 언론인의 경력을 시작했다. 블록체인 미디어에서 기자로 활동할 때 바이낸스 창업자 자오창펑 같은 IT 분야의 리더를 주로 인터뷰했다. /김가현 대표 제공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 나갔지만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IT 기사 독자 대부분이 3050 남성에 국한됐습니다. 아쉬웠어요. 이 분야에 정통하면 좋은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잖아요.”

텍스트로 어려운 테크(tech) 정보를 전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 “저만 해도 ‘블록체인’, ‘인공지능’ 같은 단어가 헤드라인에 걸려 있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이런 단어가 주는 위압감이 진입장벽 역할을 하거든요. 영상으로 눈을 돌렸어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 여력은 안 될 것 같아 망설이니 틱톡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친구가 제안하더라고요. ‘숏폼 플랫폼에서 부담 갖지 말고 한번 시도나 해봐.’”

초창기에 올린 콘텐츠가 JYP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 가능성을 엿봤다. 인기 캐릭터 펭수보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적도 있다. /김가현 대표 제공

친구의 조언은 뜻밖의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첫 영상으로 블록체인을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를 올렸어요. 올리자마자 조회수 1만건을 기록했어요. 그 다음에 업로드한 ‘SNS에서 프라이버시 지키는 꿀팁’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어요. 순식간에 틱톡 주간 조회수 톱 4위로 올랐죠. 5위는 유명 가수이자 프로듀서 박진영 씨 계정에 올라간 콘텐츠였어요. 이때 숏폼을 ‘춤추고 노래하는 콘텐츠 위주의 플랫폼’으로 여겼던 생각에 균열이 갔어요. 정보 콘텐츠가 케이팝의 제왕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니까요.”

그를 더욱 놀라게 한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런 내용의 댓글이 5000개 이상 달렸어요. 틱톡의 주요 이용자인 Z세대가 결코 IT, 테크 소식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이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춰 맥락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콘텐츠가 부재했던 것에 가까웠던 거죠.”

김가현 대표가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김가현 대표 제공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에서 먼저 창업을 권했다. “일 욕심은 많았지만 창업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요. 그런데 미래학자인 정지훈 박사님께서 법인화를 제안하셨어요. 망설이던 와중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어요. 본인 역시 유명 크리에이터인 EO 스튜디오의 김태용 대표님이 투자 의향을 밝히셨어요. 용기를 얻어 2020년 3월 뉴즈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뉴스, 저는 뉴즈 봐요

스마트폰 꿀팁 같은 생활 정보부터 메타버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등의 시사 이슈까지 다방면을 다뤘다. 기자 출신이라 취재는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건 메시지였다. “타깃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웹툰을 그릴 수 있게 됐어요. 기성 언론에선 기술의 어두운 면에 주목해 ‘웹툰 작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프레임으로 이 사안을 다룰 확률이 커요. 뉴즈는 반대로 기술과의 공존에 방점을 둡니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려주니 웹툰 작가는 스토리텔링에 더 신경 쓰는 게 좋겠죠?’라고 마무리하는 식이죠. 기술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겁을 줘선 안되니까요.”

초등학생 뉴즈 팬들이 보낸 감사 편지들. /김가현 대표 제공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는 뺐다. 대신 쌍방향 소통이라는 틱톡의 특징을 십분 활용했다. “전문가를 초빙해서 라이브 방송을 자주 했어요. 고민 상담이 주된 주제인데요. 어떻게 내 꿈을 찾는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마스크 의무화’ 같은 사회 이슈를 두고 찬반 투표나 토론도 진행합니다. 그날 공유한 정보를 토대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죠. 재미있는 점은 이 친구들이 온라인에서 접한 정보를 저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로 실천에 옮긴다는 점이에요. 학습 창구로서 숏폼 콘텐츠의 가능성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그렇게 뉴즈는 ‘울타리 밖의 학교’가 됐다. 자녀의 스마트폰 시청 습관에 예민한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믿고 보는 뉴즈로 자리매김했다. “크리에이터에 대한 어린 세대의 애착은 남다릅니다. 포털 검색을 통해 회사 주소를 찾아내서 선물을 보내온 구독자들이 많아요.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편지를 써준 아이도 있었어요. 그 친구들의 시선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주는 거죠. 너무 고맙죠.”

◇숏폼은 일시적 신드롬이 아니라 차세대 매스미디어
(왼쪽부터) 장동선 뇌과학자, 코리안훈, 김 대표, 유아나. 메이저스 소속 크리에이터들이다. 오상진 대표와 함께 한 김 대표 모습. 오상진 아나운서를 내세운 숏폼 콘텐츠도 기획 중이다. /김가현 대표 제공

뉴즈를 만난 어린 구독자들의 호기심은 증폭됐다. 경제, 금융, 사회 등의 이슈를 다뤄 달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기자 시절 부지런히 쌓은 전문가 네트워크가 떠올랐다. 각 분야 전문가들을 크리에이터로 양성하면 제2, 제3의 뉴즈가 탄생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2021년 1월, 숏폼 교육 전문 MCN 메이저스 네트워크를 론칭했다.

지난 1년간 장동선 뇌과학자, 정지훈 미래학자, 오상진 아나운서 등의 유명인을 포함한 300명의 크리에이터를 양성했다.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총 팔로워는 770만명에 달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선두를 달리는 대체불가능한 인물 위주로 선발했습니다. 모두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미래 세대에게 인사이트를 주겠다는 강한 책임의식을 지닌 분이죠.”

숏폼과 전문가 집단의 만남은 국내외 유수의 기업과 기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LG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페덱스, 유니버설뮤직, 소니픽쳐스 같은 글로벌 기업과 협력했습니다. 세계적인 온라인 공개 수업 플랫폼인 코세라와도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었죠. 숏폼엔 국경이 없어요. 해외에 있지 않아도 해외 광고주를 유치할 수 있는 비결이죠.”

◇단 1분이 기회의 차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김 대표는 1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더비비드

1분짜리 영상의 교육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1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나운서 시절에도 단신뉴스 한 꼭지에 30~40초를 할애했어요.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포맷이죠.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정보를 전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기술 소식에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뉴즈는 관문 역할을 해요. 7살 팬이 ‘뉴럴링크가 뭔진 모르지만 뉴즈 언니 나오니까 보겠다’라는 댓글을 단 적이 있어요. 이 단어를 접해본 아이는 훗날 그렇지 않은 아이와 기회에서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요. 기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계의 ‘북극성’을 꿈꾼다. “친구에게 ‘너는 내게 북극성 같은 존재야’라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아나운서, PD, 기자에서 스타트업 대표까지 거친 변종의 삶이 누군가에게 귀감이 된 것 같아 기뻤어요. 미래 세대가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정보의 대중화를 이끄는 게 저희의 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