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위기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거의 평생 한 악기에 손 놓은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과거에 미련을 가져선 안되니까요.”

음악을 오래 공부했던 양명준 씨는 기술인이 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더비비드

이미 발생해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시간과 노력 역시 매몰비용에 포함된다. 문제는 매몰비용이 커질수록 그동안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미래에 발생할 이익이 크지 않음에도 이전에 해온 것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를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싶다면 매몰비용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양명준(26) 씨는 기술인이라는 새 목표를 위해 10년 이상 연주했던 클라리넷을 내려놓았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덕분에 단 1년 반 만에 새로운 분야에서 첫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양 씨를 만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과정에 대해서 들었다.

◇음대생이 클라리넷 내려놓은 이유
양 씨는 오랜 기간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더비비드, 양명준 씨 제공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립 교향악단 입단을 목표로 음악을 공부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관악부에서 활동했어요. 클라리넷을 연주했죠. 취미로 연주를 해오다가 중학생 때 음악캠프를 다녀온 것을 계기로 음악에 열정이 생겼어요. 함께 연주할 때의 벅찬 마음과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에 감명받았거든요. 이때부터 음악에 미친 듯 빠졌습니다. 공부에 크게 흥미 없던 제가 하루 6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했죠.”

계명대 관현악과에 진학한 후에도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치고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악착같이 했어요. 해야겠다 결정한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하잖아요. 레슨, 연주 동호회 활동 등 대외활동에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결실도 거뒀습니다. 서울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대구시립교향악단에서 객원 연주가로 활동했어요. 지역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수석으로 임명된 적도 있어요.”

양 씨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고민하다가 새로운 선택을 내렸다. /양명준 씨 제공

외길만 갔던 그에게도 선택의 기로가 찾아왔다. “음대생들 사이에서는 ‘음악으로 성공하려면 무조건 유학을 가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저 역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계획에 제동이 걸렸어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2020년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혔거든요.”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최상급의 연주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쉽지 않은 길이니까요. 그러던 중 부모님께서 기술인이 되는 것은 어떻겠냐 제안하시더라고요. 부모님 두 분 다 중공업에서 20년 이상 종사하셨어요. 아버지는 국제기능올림픽 출신 엔지니어시죠. 두 분은 ‘음악은 성공이 확실하지 않은 분야고, 성공하더라도 보통 직장인 수준의 소득이 담보되지 않는 영역’이라며 우려를 표하셨어요. 반대로 기술은 배워 두면 굶어 죽지 않는 분야라고 설득하셨죠.”

클라리넷을 전공하다가 기술인 공부를 시작한 양명준 씨. /더비비드

물론 전공을 바꾸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진로를 틀기 전에 부모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다툰 적도 많았죠. 어머니께선 ‘1년 정도 학교를 다녀보고 안 맞으면 하던 것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는데 제겐 불가능한 얘기였어요. 음악 해본 사람은 알아요. 단 1주일만 악기를 다루지 않아도 손이 굳거든요. 음악에 진심이었던 만큼 새로 뛰어들 영역에도 혼신의 힘을 다할 생각이었어요.”

◇같은 예체능 출신 동기들과 머리 맞대며 공부
양 씨는 한국폴리텍대학 영남융합기술캠퍼스에서 입장이 비슷한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낯선 분야에 적응했다. /양명준 씨 제공

2021년 어머니의 권유로 한국폴리텍대학 영남융합기술캠퍼스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과에 입학했다. “메카트로닉스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통합한 개념입니다. 기계의 제어에 전자 기술을 적용해 자동화를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기계 버튼을 눌렀을 때 의도한 동작이 진행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걸 주로 배우죠. 세상에 기계가 존재하는 한 사장될 일 없는 장래가 유망한 분야죠.”

악보가 익숙했던 그에게 공학 용어는 외계어 같았다. 처지가 비슷한 동기들과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 “체육을 하다가 온 친구, 요리를 하다 온 친구 등 저 같은 예체능 출신 동기가 많았어요. 모두 공학은 처음이지만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어요. 어린 나이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그룹 스터디를 꾸려서 전공 지식을 반복 학습했어요. 서로 퀴즈를 내면서 용어에 익숙해졌고요. 그야말로 발버둥을 쳤죠.”

한국폴리텍대학 입학 후 그룹 스터디를 꾸려서 전공 지식을 반복 학습했다. /양명준 씨 제공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6시간씩 클라리넷 연습을 하며 키웠던 맷집이 낯선 환경에서 빛을 발휘했다. “메카트로닉스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 강의에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PC 기반 제어, PLC 기반 제어, CAD를 이용한 2D 및 3D 모델링 등 생소한 용어와 과목에 적응하려면 수업에 충실해야 했거든요. 매일같이 캠퍼스 내 자동화시스템 기기로 실기 연습도 했어요.”

◇새 출발하고 싶다면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결실은 달콤했다. “노력한 만큼 학점이 잘 나왔습니다. 실기 시험에서는 웬만하면 100점을 받았어요. 학과 과정과 연계해 생산자동화산업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성과가 척척 나오니 자신감이 붙더군요.”

양 씨가 단기간에 이룬 성취들. 왼쪽부터 생산자동화산업기사 자격증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사원증. /양명준 씨 제공

성실함은 취업 기회로 이어졌다. “지난 8월, 학과장님의 추천으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별정직 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뭐든 하려고 하는 의지를 높게 평가받은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직장과 합이 맞으면 재직하면서 석사 진학까지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좋은 조언과 기회를 동시에 얻게 되어 기뻤습니다.”

현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하이테크베어링시험평가센터에서 근무중이다. “베어링이란 기계의 움직이는 부분과 고정되는 부분을 연결하고, 움직이는 부분을 지지 및 제어하는 부품입니다. 자동차 바퀴와 자동차 본체 축을 연결하는 부품을 떠올리면 돼요. 기계가 돌아가는 메커니즘과 환경을 가까이서 보고 관련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요. 연구원들을 도우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기계 공학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데이터 정리법, 깔끔한 서류작업법 등의 사회생활 노하우를 전수받는 중입니다.”

양 씨의 목표는 자동화 분야의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더비비드

자동화 분야의 엔지니어가 되는 게 목표다. “현재는 역할이 제한적인 별정직 직원으로서 일을 배우는데 초점 맞추고 있는데요. 추후 보다 넓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회사 규모가 작더라도 입사해서 기술인으로서의 경력을 쌓고 싶어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자격증 등 스펙을 더 쌓아서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대기업에도 지원하고 싶어요. 마음먹은 일은 빨리 일정 궤도에 올려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이라 그런지 자동화 기술 분야에서 빨리 자리 잡고 싶어요.”

진정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고 싶다면 뒤돌아보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흔히 ‘일단 경험해 보고 결정하라’고 조언하는데, 그 말이 어떤 영역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책임 없는 말일 수도 있어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심사숙고하세요. 만약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과거에 대한 미련은 버리세요. 저 역시 새로운 것에 몰두하기 위해 음악에 대한 기억을 삭제했어요. 덕분에 생소한 전공에 빨리 적응했습니다. 전공은 지금의 내가 만들어 가는 겁니다. 과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도전하고 있는 현재의 제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