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주말에는 BEST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언제부턴가 ‘건조기’가 신혼 필수 가전제품 목록에 올랐다. 세탁이 끝난 축축한 옷을 금세 보송보송하게 말려준다.

그런데 건조 시간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건조기 사용 후기를 찾아보면 옷감이 줄어들었다며 아우성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옷감 수축과 섬유 탈락은 건조기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정보영 피플파이 대표(49)는 아끼는 옷은 건조기 대신 빨래 건조대에 널어 자연 건조했다. 하지만 속도가 늘 아쉬웠다. 빨래 건조대를 사용하면서도 건조 속도를 올려 줄 방법을 찾아 나섰다. 빨래를 널기 전 옷을 탁탁 털던 것에 착안해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 ‘스윙’을 고안했다. 옷감과 시간을 모두 놓칠 수 없었던 정 대표를 만났다.

◇흔들흔들 움직이는 빨래

피플파이의 모션 빨래 건조대 스윙. /피플파이

피플파이의 모션 빨래 건조대 스윙은 이름처럼 ‘움직이는 건조대’다. 겉보기엔 언뜻 일반 건조대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빨래 건조봉 양옆으로 작은 레일이 있다. 레일을 따라서 건조대가 좌우로 반복해서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이 옷감에 미세한 충격을 주면서 빨래 건조 속도를 높여준다. 소비 전력은 약 5w(와트)로 형광등 한 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 달 내내 사용해도 전기료는 약 1000원 내외에 불과하다.

빨래가 마르는 시간을 33% 줄여준다. 열풍을 사용하지 않아 옷감이 상할 염려가 없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에서 세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건조 시간 단축, 구김 완화, 40㎏의 하중을 버틴다는 내용의 시험성적서를 각각 받았다. 상황에 따라 표준·리프레시·야간 등 3가지 모드를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다.

◇고민거리에서 출발한 아이템 기획

대학시절(왼쪽)과 제약회사 재직 시절(오른쪽). /정보영 대표 제공

2002년 동국대 광고학과를 졸업했다. 곧장 모 제약회사에 BM(브랜드매니저)으로 입사했다. 5년간 유아용품(베이비헬스케어)을 담당하다 브랜드 전략 컨설팅 회사 WK마케팅그룹으로 이직했다. “고객사의 기업 운영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는데요. 이렇다 할 경험 없이 이론만으로 설명하자니 늘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사내벤처 공모전이 열렸다. “회사의 경영진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에요. 고객사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직접 브랜드·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고민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인공눈물을 넣고 있는 정 대표. 집안 곳곳에 인공눈물을 뒀다. /정보영 대표 제공

당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눈’이었다. “안구건조증이 심했어요. 집안 곳곳에 인공눈물을 뒀을 정도였는데요. 어느 날 눈에 상처가 난 것 같아서 안과에 갔더니 담당의가 ‘상처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더군요. 안압이 높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곧 시력이 떨어지거나 녹내장이 올 거란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치료법은 듣지 못했어요. TV·노트북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는 조언이 그리 와닿지 않았죠.”

이때 안대 개발을 계기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 뒤를 이은 아이템이 빨래 건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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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33% 빨리 말려주는 건조대 스윙 개발 노트

1. 상품 기획의 첫걸음은 자료 조사부터

건조기의 먼지 필터. 60도 이상의 열풍으로 건조하는 옷감은 더욱 빠르게 상한다. /피플파이

2010년대 접어들면서 건조기, 스타일러 등이 속속 등장했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건조기나 스타일러를 보면서 갖고 싶다는 마음 반, 너무 비싼 가격에 대한 반감 반이었어요. 여전히 일반 빨래 건조대를 쓰는 분이 많은데요. 아이디어 상품은 딱 한 끗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어디에도 없는 포인트를 하나 더해보기로 했죠.”

독립 법인을 세웠지만 WK마케팅그룹 대표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섬유 소재별로 건조시간을 조사하고, 자료 조사가 여의찮을 땐 직접 옷감을 말려가며 데이터를 기록했습니다. 조사할수록 시중 빨래 건조기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건조기의 먼지 필터에 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대부분 옷감에서 빠져나온 미세 섬유더군요. 그렇게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를 구상했습니다.”

2.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2017년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를 개발하던 모습. /피플파이

2017년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 개발에 착수했다. 접이식 빨래 건조대에 모터를 달아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능을 더하기로 했다. “빨랫감을 움직이도록 해 바람을 일으킨다는 게 핵심 아이디어였습니다. 옷을 건조대에 널기 전에 탁탁 털어주면 남은 물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면서 주름도 약간 펴지는데요. 건조대에 걸어두는 내내 옷이 흔들거리면 비슷한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죠.”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빨래 건조대는 기본적으로 접이식 형태인데요. 건조대 전체를 흔들기 위해서는 모든 부품의 금형(똑같은 형태를 반복적으로 만들기 위한 금속 틀)이 필요했죠. 손바닥만 한 부품의 금형 하나 파는 비용이 족히 1000만원은 됩니다. ‘중소기업에서 할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구나’ 싶더군요. 애써 외면하며 한동안 다른 아이템 개발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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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출시한 피플파이 모션 빨래 건조대 스윙의 모습. 건조대 양옆으로 레일을 만들어 안정적인 움직임을 만들었다. /피플파이

5년 뒤인 2022년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건조기가 생각보다 시장을 많이 장악하지 못했어요. 여전히 건조기 보급률은 30%에 미치지 못했죠. 건조기의 불편함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에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 개발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빨래 건조봉 양옆으로 작은 레일을 만들었어요. 레일을 따라 건조대가 좌우로 반복해서 움직이도록 했죠.”

3. 객관적인 수치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라

(왼쪽부터) 건조, 구김 완화, 내하중 테스트 시험 성적서. /피플파이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에서 세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먼저 건조 시간입니다. 섬유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33% 빨리 말려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옷감을 털어주면서 주름을 개선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는데요. 이에 대한 구김 완화 테스트 시험성적서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옷감도 걸 수 있도록 하중 테스트를 했더니, 24시간 동안 40㎏의 무게를 거뜬히 버텨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 가지 테스트를 하는 데에 든 비용은 약 400만원이다. “대기업은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항목별로 수십 가지 조건 값을 설정한 다음 제일 좋은 결괏값을 찾아냅니다.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죠. 가령 빨래 건조대에 80㎏인 직원이 올라타도 끄떡없었어요. 40㎏부터 120㎏까지 수치를 달리해가며 테스트하면 100㎏ 하중을 견딘다는 시험성적서를 받을 수도 있겠죠. 시험성적서의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건 소비자 가격입니다. 테스트 횟수를 최소화해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건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중요한 전략 중 하나죠.”

4. 사용자가 느낄 법한 불편함에 주목

표준, 리프레시, 야간 등 3가지 모드가 있다. /피플파이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능을 더했다. “사용 환경에 따라 바꿔가며 쓸 수 있도록 3개의 작동 모드를 마련했습니다. 표준 모드는 30분 작동과 5분 정지를 반복하는 총 275분의 코스입니다. 더 빠르게 말리고 싶을 땐 리프레시 모드를, 조용한 밤엔 야간 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빨래 건조대를 사용하며 늘 불편했던 부분은 간단한 방법으로 개선했다. “긴 바지나 코트를 걸 때마다 아랫부분이 바닥에 닿곤 했는데요. 바퀴 포함 123㎝로 높이를 확 높였습니다. 롱코트를 걸어도 바닥에 끌리지 않죠. 빨랫감이 많지 않을 땐 좌우 옷걸이는 접어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도 있어요.”

◇토끼를 이기는 거북이

활짝 웃고 있는 정보영 대표. /더비비드

2023년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모션 빨래 건조대 ‘스윙’을 출시했다. 빨래 건조대 스윙을 개발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상품을 출시했다. “여성들의 생리통을 완화해 주는 ‘허브온팩·허리온팩’, 물리치료사의 테이핑 노하우를 담아 만든 종아리 전용 테이프 ‘다리피팅’, 탄탄한 모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탄모샴푸’ 등 종류도 다양하죠. 이제 눈 뜨는 시간엔 제품 개발 생각만 해요.”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는 평균 4년이 걸린다. 아이겟백을 개발할 때부터 그랬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을 때 제일 듣기 좋은 말은 ‘이런 거 이미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는 말이에요.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만들지 못했던 제품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는 칭찬으로 들리죠. 이미 잘 팔리는 아이템을 박리다매로 만드는 건 대기업이 잘하는 일이에요.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이란 골리앗과 싸우려면 ‘독창성’이란 무기는 필수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제품 개발에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디더라도 꾸준히 나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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