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첫 창업 2년 만에 네이버에 인수·합병을 성공한 에이지프리 김지현 대표. /더비비드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대기업 인수·합병을 꿈꾼다. 에이지프리 김지현 대표(37)는 25살에 창업한 코딩 교육 플랫폼을 2년 만에 네이버에 인수·합병시켜 엑시트에 성공했다. 성공적이었던 첫 창업이었지만 우연히 친구의 진로 고민을 듣고 정작 주변을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두 번째 창업을 결심했다. 김 대표를 만나 ‘천직’을 찾는 법을 들었다.

◇최연소 영화제 초대 감독이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

(왼쪽부터) '비디오 키드'로 불렸던 초등학생 시절과 하와이 국제영화제에 최연소 감독으로 초청받았던 모습. /에이지프리

성균관대 영상학과 06학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단편 영화를 찍는 게 취미였어요. 친구들과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고는 했죠.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중학교를 자퇴할 정도로 영화에 미쳐있던 시절이었어요. 각종 영화제에 출품해 수상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하와이 국제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에 최연소 감독으로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상학과에 진학했지만, 우연히 듣게 된 교양 수업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졌다. “대학 입학 교양과목이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며 재미를 느꼈어요. 코딩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는 게 제가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와도 비슷하더군요. 영화는 카메라라는 도구로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코딩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셈이죠.”

대학 졸업을 앞둔 2011년,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2011년 어느 날, 애플이 아이폰 4S를 출시한다는 소식으로 세상이 들썩였어요. IT 산업 위주로 세상이 변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죠. 코딩을 전문적으로 배워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 대학원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학과에 진학해 인간이 컴퓨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을 연구했어요.”

김 대표는 카이스트 문화기술 대학원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학과를 졸업했다. /에이지프리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매 수업이 난관이었다. “이공계 전공생인 동기들에 비해 코딩에 대한 기본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과제 하나를 해내는 것도 쉽지 않았죠. 제가 이틀 동안 붙잡고 해결했던 프로그램 코드 문제를 옆자리 동기가 5분 만에 푸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어요. 비전공생의 설움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매 순간 도망치고 싶다가도, 코딩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코딩 수업이 어렵기도 했지만, 며칠간 밤을 지새워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러다 문득 사람들에게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코딩을 쉬운 언어로 배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창업한 지 2년 만에 네이버에 인수·합병 성공

네이버 커넥트재단에서 사업 국장으로 일했던 시절의 김 대표. /에이지프리

2013년 카이스트 대학원 동기들과 코딩 교육 플랫폼 엔트리를 창업했다. “엔트리는 게임처럼 명령어 블록을 하나씩 맞추며 프로그래밍 원리를 쉽게 학습하는 플랫폼이에요. C언어, 자바, 파이선 등 프로그래밍 언어가 한글로 해석돼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카메라로 생각을 표현했던 것처럼, 어린 학생들도 프로그래밍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학생용 교육 플랫폼으로 사업 방향을 좁혔죠.”

문을 연 지 2년 만에 국내의 유일한 코딩 교육 플랫폼으로 주목을 받으며 네이버에 인수·합병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딩 교육 열풍이 불던 시기였어요. ‘소프트웨어야 놀자’라는 코딩 교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던 네이버와 협업하다 인수·합병까지 제안받았죠. 교육 프로그램인 만큼 비영리로 확장하자는 취지에 공감해 흔쾌히 수락했어요. 교육 자료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 뒤 공교육 교과 과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전국 모든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엔트리로 코딩 교육을 받고 있어요.”

10년간 비영리 기관 네이버 커넥트재단에서 사업 국장으로 일했지만, 우연히 친구의 고민을 듣고 회의감을 느꼈다. “네이버 커넥트재단에서 유아부터 성인까지를 대상으로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했어요. 쥬니어네이버의 교육 프로그램과 개발자를 양성하는 부스트 캠프까지 총괄했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중 친구의 진로 고민을 듣게 됐어요. 가장 친한 친구가 코딩은커녕 육아로 경력이 단절돼 생계를 위한 취업도 어려워하고 있더군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정작 주변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소수를 위한 직무 교육에만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을 위한 진로 선택지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2년간의 사업 구상을 거치며 확신이 들었어요. 퇴사하고 두 번째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에이지프리’하게 ‘천직’을 찾을 수 있는 공간

누구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 '천직'. /에이지프리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가장 먼저 일본 시장을 분석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 현상을 마주한 나라예요. 일본은 이미 재취업 희망자를 위해 오프라인에서 직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더군요. 우리나라는 오프라인 직무 교육 기관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가 부재했어요. 비어있는 시장이라는 점을 확인한 거죠. 한 차례 교육 플랫폼을 성공시켰던 경험을 토대로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직무 교육 시장의 문제를 파악했다. “사업 구상을 위해 온라인으로 사람을 모집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직무 교육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기관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더군요. 고령화로 두 번째 취업에 도전하는 중장년층의 문제에 주목해 시작했지만, 20~30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국비 지원 정책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복잡하다고 생각해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어요. 반면 학원은 좋은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홍보가 안 돼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어요. 그래서 이 둘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이지프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비비드

교육 기관을 섭외하기 위해 전국을 돌았다. “온라인으로는 도배나 타일 같은 직무 종류를 배우기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어요. 지역별로 존재하는 교육 기관을 찾아가 기술 장인에게 직접 배우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프라인 학원을 제휴하기 위해 3달 동안 500군데가 넘는 곳의 문을 두드렸어요. 사업 취지를 들어보지도 않고 나가라며 문전박대하는 곳도 많았지만,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해 입점 제안을 수락한 곳도 있었습니다.”

지난 1월,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의 ‘에이지프리’를 설립하고 1000개의 오프라인 직업 교육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천직’ 구축에 들어갔다. 직무 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파악한 뒤 이들을 쉬운 방식으로 잇는 데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천직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인 직무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이용자가 궁금해할 만한 월 수익, 교육 프로그램, 국비 지원 제도 신청 방법 등의 정보까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어요.”

2025년에는 취업 연계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기술직 채용이 채용 사이트가 아닌 밴드나 카페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폐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서비스를 구상했어요.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계약하는 곳도 있더군요. 투명한 채용 절차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실질적으로 기업과 연계해 취업을 지원하는 채용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에요.”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아산나눔재단과 주변의 든든한 지원

아산나눔재단 창업지원센터 '마루'에서 웃어 보이는 김 대표(왼쪽 인물)와 공동창업자 신용우 이사. /에이지프리

올해 초 카카오벤처스와 한국투자파트너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고 4월에는 아산나눔재단 창업지원센터 ‘마루′에 입주했다.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아산나눔재단에서 업무 공간을 제공받아 초기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제공받은 것뿐만 아니라 입주 기업들과 고민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중이에요.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서 고민할 만한 인사나 노무 문제를 의논하면 자기 일처럼 흔쾌히 도와주기도 해요. 창업자들 간의 네트워킹으로 큰 버팀목이 돼 줍니다.

에이지프리 단체 사진. /에이지프리

카이스트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맺어진 팀원들도 큰 힘이 됐다. “현재 에이지프리 구성원은 모두 카이스트 석사 과정 중에 만난 친구들입니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직무 교육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저의 목표를 듣고 흔쾌히 함께해줬습니다. 카이스트, 서울대 출신으로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춘 팀원들과 일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제 자부심이에요.”

◇평생 배우는 것이 인생의 목표

평생 배움을 놓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김 대표. /더비비드

당면한 과제는 에이지 테크(Age Tech) 기업으로 고령화 시대의 변화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은퇴 후 소득 공백과 재취업이라는 문제를 작은 단위인 직무교육 연결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에이지프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직이 ‘1000개의 직업이 모인 곳’이라는 의미인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 100여개의 직업군을 구축할 예정이에요. 누구나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천직을 떠올렸으면 해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천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계획이나 사명감이 없어도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한 발짝만 내디뎌 보세요. 창업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도를 통해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평생 배움을 놓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학습 근육을 계속해서 키우고 싶어요.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것만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움을 통해 제 가치를 높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천직을 통해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결국 저를 위한 말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