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대 충주캠퍼스 로봇특수용접과 실습실에서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웃어 보이는 김종식 교수. /더비비드

10일부터 프랑스에서 다시 한번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전 세계 73개국 1383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제47회 리옹 국제기능올림픽이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은 만 17~22세 각국 청년이 분야별 직업 기능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정부는 입상자에 대해 상금과 병역 특례 등 스포츠 선수와 비슷한 혜택을 주고 있다.

2003년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용접 부문 금메달리스트 출신 김종식(41)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를 충주캠퍼스에서 만났다.

◇무작정 들어간 기능반에서 느낀 패배감

기능올림픽 용접 부문 금메달리스트 김종식 교수. 기술 인재의 산실 폴리텍대에는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교수가 여럿 포진돼 있다. /더비비드

기술 인재의 산실 폴리텍대에는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교수가 여럿 포진돼 있다.

김종식 교수를 비롯해 익산캠퍼스 양진호 교수(1995년 프랑스 기계설계 CAD 금), 남대구캠퍼스 이영호 교수(1997년 스위스 CNC/선반 우수), 포항캠퍼스 원현우 교수(2013년 독일 철골구조물 금), 포항캠퍼스 조성문 교수(1993년 대만 동력배선 은), 울산캠퍼스 정종민 교수(2003년 스위스 철골구조물 동), 울산캠퍼스 오세희 교수(2005년 핀란드 CNC Machining 은),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최병철 교수(2001년 대한민국 철골구조물 금) 등이 올림픽 메달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메달리스트들은 기능인 집안 출신이 많다. 김종식 교수도 기능인 집안에서 자랐다. “목수인 할아버지, 용접일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기계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기술직에 대한 두려움이나 편견 없이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죠.”

1학년 때 용접과 기능반에 들어갔다. “기능반은 기술 특기생을 양성하는 특수반인데요. 대회에 출전하는 2~3학년 선배들 위주라, 1학년인 제가 들어가기 쉽지 않았어요. 무작정 기능반 지도 교사를 찾아가 ‘할 수 있다’고 어필해 들어갔습니다.”

김종식 교수가 고등학생 때 모습. /본인 제공

첫 대회 성적은 불만족스러웠다. “처음 나간 대회가 고2 때 전북지방기능경기대회였습니다. 3위 안에 들면 전국대회 출전권이 주어지는데요. 동상을 받아 3위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같은 학교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2위 이내 입상을 해서, 교내에서 꼴찌 취급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 전북지방기능경기대회에선 은상을 받았지만 1등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1등에 대한 갈망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2001년 열린 제36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의환향을 기대했지만, 주변 평가는 기대 이하였다. “운 좋게 메달을 땄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전국대회는 일반인도 출전할 수 있는데요. 당시 1위 선수가 재소자라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가 금메달리스트가 됐거든요. 찝찝한 마음이 들어 기쁨을 만끽하진 못했어요.”

◇기어코 이룬 1등의 꿈

김종식 교수가 숫자 ‘1′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더비비드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 덕분에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양성 기관 역할도 하는 현대중공업에 특채로 입사했다. “용접 시범을 보이는 지도 교사를 보고 ‘아차’ 싶었어요. 차원이 다르더군요. 그날 이후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합숙 하면서 기초부터 다시 연습했습니다.”

지난한 훈련은 결국 그토록 꿈꿨던 1등, 그것도 세계 1등의 열매로 돌아왔다. 2003년 제37회 국제기능올림픽 용접 부문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기 도중 일본 선수가 저를 향해 비웃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더군요. 승부욕이 불타 최선을 다했고, 결국 금메달을 땄습니다. 운이 아닌 실력으로 1등을 따낸 거죠.”

뜨거운 축하가 쏟아졌다. 사내 포상금 1000만원을 받고, 1계급 특진을 했다. 그런데 이내 다른 고민이 들었다. “막상 목표를 이루니 허탈한 마음이 들더군요. 다른 목표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고, 이후 23개의 국가기술자격을 땄습니다.”

현대중공업 재직 시절 김종식 교수. /본인 제공

자격증만으로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론을 보강하기 위해 2005년 폴리텍대 울산캠퍼스 자동화시스템학과에 입학했다. 2012년엔 평생교육진흥원에서 기계공학과 학위를 취득했고, 부경대 산업대학원 기계시스템조선학과 석사, 일반대학원 금속공학과 박사까지 취득했다.

◇“덕분이에요” 한마디에 힘 얻어

제자들에게 용접 시범을 보이고 있는 김 교수. /더비비드

2020년 폴리텍대 충주캠퍼스 로봇특수용접과 교수로 임용됐다.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라 수업 방식이 남다르다. “20대부터 60대 학생까지 평일 저녁은 물론 주말까지 혹독하게 훈련시킵니다. 방학에도 쉬지 않죠. 의도적으로 시끄러운 환경을 조성해 실전처럼 지도합니다. 지난 7월 한 제자가 ‘뿌리기술 경기대회’에서 금상을 탔습니다. 시상식 날 ‘교수님 덕분이에요’ 한마디를 듣는데 그간의 노고가 다 사라지더라고요.”

폴리텍대 충주캠퍼스를 용접의 성지로 만드는 게 목표다. “어느 학교에도 뒤처지지 않는 최고 시설과 수업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비 하나 하나 제가 직접 살피고 관리하죠. 충주 하면 폴리텍대, 폴리텍대 하면 용접이 떠오르게 만들고 싶어요.”

용접 기술직은 대체가 어려운 직종이라고 했다. “용접은 자동화가 가장 느리게 이뤄지는 직군 중 하나입니다. 세밀한 작업이 필요해 모든 업무를 기계로 대체할 수 없죠. 우수한 후배들이 계속 들어오는 직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