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일 고려대 교수

제롬 파월(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세계 최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공급량을 결정하는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에 따라 전 세계의 금리·주가·환율이 요동친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연준 산하 12개 지역연방준비은행 중 하나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개최한 잭슨홀 미팅에서 중요한 선언을 했다. 평균물가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ing·AIT)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평균물가목표제란 고용 등 실물경제 안정을 위해, 지난 몇 년간 인플레이션이 아주 낮다면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연간 관리목표치(2%)를 웃돌아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언론들은 연준의 통화 정책 역사에 중요한 한 획이 그어졌다고 평가한다. 어떤 의미일까? 조직 내부 사정은 내부자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김진일(53)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미국 연준에 총 9년간 근무했다. 한국의 현직 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오랜 근무 경력이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대책이 2단계에서 2.5 단계로 강화된 탓에 인터뷰는 연구실 방문 대신 31일 오전 11시부터 전화로 이뤄졌다.

김 교수는 향후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상당히 일어날 때까지 2년 이상, 길면 5년까지도 통화량을 계속 늘릴 것”이라며 “그 기간에 주가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난 3월 기자회견장에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美 통화정책, 40여년 만의 대전환

―연준에는 언제 근무했나.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 시절인 1996~1998년 미국 워싱턴 D.C.의 연준 이사회에서 처음 근무했다. 조사통계국(Division of Research and Statistics)에서 경기 모형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는데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같은 투자 부문이 내 업무였다.

이후 버지니아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다가 2003년에 다시 연준 이사회에 가서 2011년까지 일했다. 이번에는 통화정책국(Division of Monetary Affairs) 소속이었다. 퇴직 당시 직함은 선임 이코노미스트였다.

두 번째 재직 중간에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가 발생했고, 연준 의장이 앨런 그린스펀에서 벤 버냉키로 바뀌었다. 지금도 대체로 1년에 한달 정도 연준 본부에 머물며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파월 의장이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어떤 의미인가?

“안 그래도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연준에서 일하다 은퇴한 사람과 지난 주말에 그 이야기를 했다. 지난 1979년 10월 폴 볼커 연준 의장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도입한 인플레이션 중심 통화정책이 막을 내렸다는 언론의 평가에 동의하셨다.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 미국은 연간 10%가 넘는 물가상승률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볼커 의장은 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그 정책이 성공해 물가가 안정되면서 이후 연준의 정책 기조는 물가가 상승할 조짐을 보일 경우 금리를 높여 물가를 잡는 것이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지난 41년간의 통화정책 방향이었다.

이후 2006년에 취임한 버냉키 의장은 연준의 의사결정이 너무 비밀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해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을 했다. 그러한 작업의 하나로 2012년 1월에 물가관리 목표치를 수치로 제시했는데 연간 2%였다. 향후 물가상승률이 연간 2%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면 사전에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제롬 파월 현행 의장은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물가는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할 수 있다며 연간 물가가 2% 이상 상승하더라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것이 평균물가목표제이다.”

―평균물가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연준은 통화정책을 할 때 우리가 수시로 접하는 월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아니라 3개월마다 국민소득(GDP)과 함께 발표되는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이라는 지표를 쓴다. 지금까지는 이 지표가 올해 2%를 넘을 것 같으면 금리를 올려서 물가 상승을 억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년 전부터 올해까지의 물가상승률을 모두 더해 평균을 내고 그 평균치가 2%를 넘지 않으면 통화 긴축(금리 인상)을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몇 년 동안 수치의 평균을 내는가?

“그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의 영향만을 고려한다면 3년 정도로 잡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 상황이 지속하여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면 상당히 긴 기간, 예를 들어 10년 평균치를 목표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런 디테일이 사실 매우 중요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하지 않나? 연준은 9월 15~16일(현지 시간) 열리는 공개시장조작위원회의 정례회의 때부터 이 기간을 얼마로 할지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물가목표제의 의미는 미래 물가보다 과거 물가를 통화정책의 중요 지표로 삼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은 올해나 내년, 후년 등 대략 앞으로 몇 년간의 중기 물가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해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과거의 물가지표도 정책결정 요소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발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좋은 것 아닌가? 왜 문제가 되나?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물가가 낮을 경우 더 많은 양을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에만 해당하는 일이다. 장기적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고 해 보자. 사람들은 지금 당장 물건을 살 필요가 없다. 나중에 사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전화기의 가격이 다음 주에 더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다음 주까지 기다릴 유인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가 되지 않고, 기업들도 수요가 없어서 생산과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다. 앞으로 반도체 가격이 내려간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생산 기업이 투자할 리가 없다. 물가 하락 혹은 장기 저물가는 이런 부작용을 가져온다.”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도 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도 전혀 없지는 않고, 0~2% 대에서 오래 머물러 있는 것만 해도 경제에 좋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이번 발표는 물가 안정보다, 안정적인 시중 자금 공급(금융안정)을 통한 고용 등 경제 성장의 호전에 중점을 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향후 미국의 물가는 어떻게 되나? 3년이나 5년 평균치가 2% 이내로 유지된다면 내년이나 후년의 물가가 3% 이상으로 치솟도록 통화정책을 쓰게 되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략 연 2.2%나 2.5%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하락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왜 연준이 갑자기 이런 정책을 도입했나?

“코로나 사태로 고용이 너무 좋지 않다. 또 최근 미국 내 인종 갈등으로 인한 폭력시위 때문에 고용의 중요성이 더 두드러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은?

“기존의 통화완화 정책이 더 확대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금까지는 물가가 0.2%에서 2%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앞으로는 2.2~2.5%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제로(0)금리는 유지되고 양적완화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중앙은행의 금융회사 자금지원과 기업자금 지원도 확대될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건물./위키피디아

주가 상승 여력 생겨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하면 연준이 장기간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또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어 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가와 금리, 환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먼저 한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이 있는 주가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미국 주가는 어떻게 될까?

“통화량이 늘어나니까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 것 같은가?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일어날 때까지 통화량을 계속 풀 것이다. 2년 이상, 길면 5년까지 볼 수 있다. 그 기간 증시에 자금이 모자라지 않게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증시가 버티지 않을까?”

―그러나 지난 27일(현지 시각) 파월 의장의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선언 이후에도 주가가 예상만큼 크게 오르지 않았다.

“이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해석 방향에 따라 환호하는 사람도 있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이 통화 완화 정책을 쓰면 선진국의 자금이 신흥국으로 몰려가면서 한국 같은 신흥국 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지 않나?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들어올 것이다. 다만 선진국에서 돈이 돌아오는 속도나 양은 예전만 못할 수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주가만 오르고 실물 경제는 좋지 않은 괴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의도된 괴리라고 봐야 한다. 지금은 금융 부문을 부양해 실물 경제를 끌어주기를 바라는 정책을 쓰고 있다. 다만 그 효과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가는 거품이라고 봐야 하나?

“과거의 통화정책과 달리 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금융회사나 기업, 개인들이 서로 신뢰가 깨어져서 금융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현상을 교훈으로 얻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융거래 당사자들 간에 신뢰가 깨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통화완화 정책을 쓰고 있다. 주가가 오르는 것은 그러한 정책의 결과이다. 다만 연준이 주가 상승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는 모르겠다. 연준도 어느 선이 거품일지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지난 27일 화상 방식으로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관리목표치인 2%를 넘더라도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등 통화완화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장기 금리 상승 가능성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앞으로 채권 가격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단기 금리가 낮아지니 단기 채권 가격은 당분간 계속 올라가게 된다. 문제는 10년 혹은 30년 만기의 장기채권인데,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장기 금리는 더 올라가게 되므로 장기 채권 가격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단기 채권과 장기 채권 간의 금리 곡선이 연결되지 않고 단절되는 것 아닌가? 채권 시장의 수익률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혼란이 올 수도 있는데.

“미국은 아직 그것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러한 상황이 생기면 중앙은행이 채권 시장에 직접 개입해 채권수익률관리(yield curve control) 정책을 쓰게 된다. 일본은행이 벌써 이 정책을 쓰고 있다.”

―환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달라. 미국이 코로나 사태 이후 이렇게 돈을 많이 풀었는데, 미국 달러화 가치는 어떻게 되나?

“돈이 도는 속도가 줄어서 돈이 안도니까 돈을 그렇게 많이 푸는 것이다. 그런데 달러화가 너무 많이 풀려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려면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깨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달러 외에는 대안이 없다. 사람들이 대안으로 중국 위안화를 살까? 금도 통화수단으로서 달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상황 나빠지면 마이너스 금리도

연준은 이번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물가안정을 뒷순위로 돌리는 정책을 썼다.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면 어떤 정책 카드를 더 쓸 수 있을까?

―경기가 더 나빠지면 연준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

“먼저 평균물가목표제를 어떻게 달성할지 그 방법을 놓고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 채권 금리가 내려오지 않으면 채권수익률관리(YCC)에 나설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제로 금리에 이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수도 있다. 파월 의장은 지금은 마이너스 금리를 안 쓰겠다고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쓸 수도 있다.”

―만약 백신이 연내에 나오고 상황이 좋아지면?

“추가 조치 없이 지금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게 될 것이다.”

―연준 내에서는 물가 안정에 주력하는 매파(강경파)와 경제 회복을 중시하는 비둘기파(온건파)가 항상 대립해 왔다. 이번의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에서는 이런 갈등이 없었나?

“파월 의장의 연설과 그날 함께 발표된 선언문들을 보면 12명의 지역연준 총재와 5명의 연준 이사 등 17명의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도입에 동의한 것 같다. 다만 향후 세부실행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변화. 연준은 2000년 닷컴거품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 사태 때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대폭 낮췄다.


한국 상황, 한은 전망보다 더 나빠

한국 상황으로 화제를 돌려 보기로 했다.

―한국의 코로나가 다시 재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기존의 경기전망을 수정해 올해 경제성장률(GDP·국내총생산 기준) 전망치를 마이너스(-) 1.3%로 낮췄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2.2%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적당한 수준의 시나리오인가?

“한국은행 발표 후 당장 지난 주말에 상황이 더 나빠졌다. 경기 전망은 최근에는 수일전까지의 자료를 사용하는데, 지난달 27일 이후 상황을 반영하면 더 안 좋아졌을 것이다. 결과가 더 나쁘게 나올 것 같다.”

―미국에 비추어 봤을 때 한은의 대응책은 충분한가?

“미국과 유럽의 경제 상황이 다르듯이, 한국도 상황이 다르다. 한국 상황에 맞도록 조치를 차근차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은이 돈을 풀었으나 기업들이 여전히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고, 돈은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려가 집값과 주가 폭등을 불러왔다. 통화정책의 부작용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참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주제이다. 지금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돈 없어서 힘들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반대로 이렇게 어려울 때는 좀비 기업들이 청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통화 정책은 그 양극단의 주장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한은도 나름대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요한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연준에서는 이자율이 너무 높다는 불만의 편지와 너무 낮다는 불만의 편지가 절반 정도씩 오면 정책이 잘 됐다고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집값 폭등 문제는 한은이 통화정책을 정할 때 고려 대상이 아닌가?

“미국 연준이나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이라고 할 때 자산과 같이 이미 생산된 재화의 물가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 등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물가에 반영이 안 된다. 다만 전세와 월세 가격은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은 물가 안정이 아니라 뒷순위 정책 목표인 금융안정 시각에서 다뤄진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 것이 한은의 일차 목표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은 통화정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 간섭, 큰 영향 없어

딱딱한 통화정책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듯해 연준 경험으로 화제를 돌려보기로 했다.

―연준 의장은 보통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지금은 제롬 파월 의장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이 너무 큰 것 아닌가?

“과거의 미국 대통령들은 통화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지켜주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 그렇다고 해도 연준의 회의나 의사결정 시스템이 바뀌지는 않았다. 파월 의장의 정책은 연준의 자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나온다. 물론 파월 의장이 대통령과 경제에 관해 의견 교환을 하더라도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 수준이고 통화 정책 결정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체제하에서도 연준의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다고 본다.”

―과거 연준에서의 근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연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파월 의장이 갖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판단하나?

“의장마다 개인적인 성격이 다르다. 그린스펀 의장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해 마에스트로로 불렸다. 반면 버냉키 의장은 토론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의제 설정은 당연히 그가 직접 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인 재닛 옐런 의장은 버냉키 의장 시절에 부의장을 했으니 버냉키 의장과 같은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현행 파월 의장은 변호사 출신이라서 경제 관련 배경을 가진 다른 의장들과 출신이 다르지만, 의장이 되기 이전에 몇 년동안 연준 이사를 했다. 그는 예전 사람들보다 더 개방적이다. 이번에 잭슨홀 미팅에서 온라인 회의를 할 때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고 나왔고, 실수를 신경 쓰지 않고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토론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연준에 있을 때 그린스펀, 버냉키는 의장으로, 옐런은 부의장으로 함께 일했다. 그 사람들의 스타일은 각각 어떻게 달랐나?.

“그린스펀은 자료를 매우 잘 알고, 실무 담당자와 이야기해도 밀리지 않았다. 그쪽에 아우라(권위)가 있었다. 금융 시장 변화에 대응을 잘했다. 반면, 버냉키와 옐런은 거시경제학 분야에서 나름대로 한 길을 개척한 사람이니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쪽에 비중을 더 많이 뒀다.”

2014년 한 자리에 모인 미국 연준 의장들. 왼쪽부터 앨런 그린스펀, 폴 볼커, 벤 버냉키./위키피디아
재닛 옐런 전 미국 연준 의장./위키피디아

―연준의 조직 문화는 어떤가? 비밀스럽고 보수적이라는 평가는 맞는가?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것은 맞는데 외부로 나가면 안 되는 민감한 정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정책의 의도를 너무 자세히 공개하면 나중에 안될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도 있어서 그동안 비밀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그 바람에 시장 참여자들이 연준의 의사결정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06년 버냉키 의장 취임 이후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를 많이 했다.

시장 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연준은 원래 보수적이다. 그래서 이번에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하면서 이렇게 많이 변화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금융시장과 통화정책 환경 변화가 상당히 컸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과 다른 점은?

“한은의 의사결정 과정은 미국 연준과 거의 같다. 미국 연준은 민간과 정부의 성격이 혼재하는 반면, 한국은 국가기관이다.

연준은 107년 전에 처음 출발할 때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이 경제 곳곳에 신축적으로 공급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금융시장 안정을 우선적인 목표로 둔 것이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목표를 바꿔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정책을 폈다. 그러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금융시장이 중요해졌다. 한국의 경우에는 2011년쯤 한국은행법 개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이 한은 책무의 하나가 됐다.”

‘코로나 후유증' 30년쯤 갈 듯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9월 말이나 10월에 나오면 경제 혹한기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형이 계속 나오니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생활의 패턴이 바뀌었는데 백신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얼마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 자신할 수 없다.

뉴욕의 9·11 테러 사태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 이후에 생각보다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그전에는 미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이 한국에서 고속버스 탈 때처럼 쉬웠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검색이 강화되고 불편해졌다. 9·11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면 예전 생활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의 후유증은 30년은 가지 않을까. 도시에 사느냐, 아니면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니 아예 도시 밖에 나가 사느냐가 생활 변화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이길지 시간이 흘러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사태와 정면으로 부닥친 한국 경제의 향후 과제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산업 재편이 이뤄지고, 자영업자와 대기업 관계도 조정되면서 경제 기반이 많이 흔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경제를 흔들어 놓을 때에는 누군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버릴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숫자가 낮12시 28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11시부터 20분간 하기로 했는데 ‘내부자의 속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90분 가까이 흘렀다. 김 교수는 끊임없는 기자의 질문에 오랫동안 답변하는 와중에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생각하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는 이날 정부의 코로나 대책 강화 조치에 인터뷰까지 겹쳐 점심 약속을 잡지 않았다. 김밥을 사서 연구실에서 혼자 먹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