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KRX)가 이달 초 발표한 ‘K-뉴딜지수’를 두고 각종 잡음이 나오고 있다. K-뉴딜지수는 정부가 국가 재정과 민간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뉴딜펀드’의 투자 지표로,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분야에서 시가총액이 큰 40종목(분야별 10종목)을 선정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거래소가 외부 자산운용사가 처음 고안한 BBIG 관련 지수를 자신들이 개발했어야 할 ‘뉴딜지수’로 둔갑시킨 뒤, 해당 운용사에만 일정 기간 지수 사용 독점권을 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 발표로 뉴딜 분야에 시중 자금이 대거 쏠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독점권을 받은 운용사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뉴딜지수 이용 권한이 없다 보니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를 상장시킬 수 없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거래소의 잘못된 일 처리로 시장 혼란과 불만만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스피 연중 최고 -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와 환율이 표시돼 있다. 코스피는 나흘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연중 최고점(2443.58)을 기록했다. 이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7개월여 만에 1180원 아래로 떨어진 1179원에 마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거래소, 미래에셋 고안 지수로 ‘뉴딜지수’ 만들어 잡음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BBIG 분야의 주요 종목을 담은 지수(인덱스)를 고안해 지난 7월 초 한국거래소를 찾았다. 거래소에 BBIG 관련 지수 개발을 요청하고, 이를 토대로 관련 ETF를 상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운용사는 직접 지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지수 구성 및 산출 방식을 정리한 뒤 거래소에 지수 출범을 요청하거나 민간 업체 등에 원하는 지수 개발을 의뢰한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민간 업체를 통하면 원하는 포맷대로 쉽게 지수를 만들 수 있지만, 거래소에서 만든 지수가 공신력이 크기 때문에 거래소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이 고안해서 거래소에 제출한 지수 이름은 ‘KRX BBIG 스타12’였다. BBIG 분야 ‘스타 종목’ 12개를 담았다는 의미다. 거래소는 이 지수를 ‘K-뉴딜지수’로 이름을 바꿔 출범시켰다. 마침 거래소가 정부의 ‘뉴딜펀드’ 시행 방침에 부응하기 위해 ‘뉴딜지수’를 개발하려고 하던 시기에 미래에셋이 지수를 만들어 찾아와준 것이다.

지수 종목 구성과 산출 방식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거래소는 그 대가로 미래에셋에 6개월간의 지수 사용 독점권을 부여했다. 해당 기간 뉴딜지수를 활용한 ETF 및 상품 출시를 미래에셋만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러자 삼성, KB 등 다른 대형 운용사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공적 성격의 지수를 출시해놓고, 다른 운용사들은 가져다 쓰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거래소는 운용사들의 반발에 독점 사용 기간을 3개월로 단축했으나 시장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2018년 업계의 요구로 지수 관련 아이디어를 처음 낸 운용사에 6개월간 독점 사용권을 부여하는 '룰'을 마련했고, 다른 운용사들도 이러한 권리를 누려왔다”며 “미래에셋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K-뉴딜지수가 있는데 쓰지도 못해 황당"

하지만 다른 운용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BBIG라는 것이 미래에셋이 처음 만든 개념도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 등에서 많이 써온 용어여서 독점권을 부여받을 만한 아이디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뉴딜지수는 다른 테마 지수와 달리 정부의 막대한 자금 투입 계획으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지수인데, 이를 특정 회사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일종의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애초에 거래소가 뉴딜지수를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고 모두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KB 등 대형 운용사들은 뉴딜 관련 ETF 출시를 3개월이나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민간 지수개발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새로운 뉴딜지수 개발을 의뢰한 상태다. 기존 뉴딜지수와 구성 방식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자 거래소는 에프앤가이드에 “(독점권 제도라는)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는 지수 개발을 자제해달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뉴딜지수 저작권을 앞세워 법적 대응을 하거나 지수를 못 만들게 할 계획은 없다”며 “다만 상도의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미래에셋을 제외한 다른 운용사들은 에프앤가이드 지수가 나오는 대로 ETF를 만들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상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 달 7일쯤 상장이 예정된 미래에셋 ETF보다는 3~4주가량 출시가 늦어지는 것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특정 테마 ETF 주도권을 초반에 빼앗기면 나중에 만회하기가 어렵다”며 “'K-뉴딜지수'가 버젓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