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난 주식, ‘언젠가 오르겠지’라며 희망회로만 돌리고 버티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올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는 한국 코스닥 시장에서 최근 눈물의 손절을 단행했다. 블랙록을 울린 종목은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탑3로 이름을 날렸던 신약개발기업 헬릭스미스(옛 바이로메드)다. 지난 2005년 기술력이 뛰어난 유망기업으로 뽑히며 코스닥에 입성한 기술특례 상장 1호 기업이기도 하다.
지난 3월 블랙록은 헬릭스미스 지분을 5.08% 보유했다고 밝히면서 2대 주주에 올라섰다. 당시 블랙록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보유 주식 수가 100만주가 넘었다. 하지만 이달 초 블랙록은 최대 70%의 손실을 떠안은 채, 보유 지분을 대부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지난해 헬릭스미스의 신약 임상 성공 기대감이 고조되었을 연초 무렵부터 주식을 사들였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전세계 여러 법인들이 수차례에 걸쳐 분산 매입했다. 매입 단가는 다양한데, 최고 주식 매입 단가는 24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작년 9월 헬릭스미스의 임상 3상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블랙록의 대박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헬릭스미스 주가는 가파른 우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블랙록도 미련이 남았는지 올 4~6월에 걸쳐 6만~7만원대에 주식을 추가 매입해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70%라는 최악의 성과로 투자를 매듭진 블랙록도 지금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타이밍만 엿보면서 그대로 방치했다면 더 낮은 가격에 손절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주 2817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주당 가격은 3만8150원.
일반적으로 유증은 증시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유증으로 주식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기존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운영자금 조달이나 채무 상환이 목적인 유증은 현금 흐름이 나빠져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이 많이 선택하는 편이다. 은행 대출이나 채권 발행은 기간도 정해져 있고 이자를 내야 하지만, 유증은 그런 부담이 없어서다.
유증 발표 이후, 헬릭스미스 주가는 요동치고 있다. 유증 소식이 알려진 18일부터 주가는 29% 하락했다. 21일 종가는 3만6900원이었다.
한편, 헬릭스미스 주주들은 회사의 갑작스런 유증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헬릭스미스는 신약 개발을 주로 하다 보니 아직은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적자 기업이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382억원 손실이었다. 실적을 중시하는 기관이나 외국인보다는 꿈과 스토리를 원하는 소액 개미 비중이 86%로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주주들은 “이미 1년 전에 1500억원 규모의 유증을 했고 작년 가을 임상 실패 후엔 2년간 유증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더니 말을 바꿨다”면서 “최대주주인 김선영 대표(6.05%)조차 이번 유증에 참여하지도 않는데 어떤 주주가 이런 유증을 받아들이겠느냐”면서 주주 집단 행동에 나설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