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옳은 일을 추구하며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에 투자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트렌드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수십년째 심각해지고 있는데다 올해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지난해 호주 산불 등 전지구적 재앙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시장에 형성된 것이 주요인이다.

여기에 친환경 정책을 앞세운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고, 문재인 정부도 ‘그린 뉴딜’을 핵심 정책으로 삼으면서 관련 산업이 급부상한 것도 ESG 투자 열기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각종 ESG 펀드를 출시하며 투자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다.

◇ESG 투자가 ‘착한기만 한 투자’?..."수익률도 높아"

ESG 투자를 ‘수익률은 조금 떨어지지만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에 투자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시장에서는 ESG 투자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출액, 영업이익, 주가수익비율(PER) 등의 재무적 요소만 고려하는 것보다 ESG 항목까지 고려해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전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규제 등 기업이 지켜야할 환경보호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점, 소셜미디어 활성화로 악덕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 등의 응징이 빈번해지는 점, ‘오너 리스크’ 등 후진적 지배구조로 인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ESG는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로 ESG 기준을 잘 지킨 기업들의 실적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는 ‘인테그로(Integro)’라는 펀드가 있는데, 이 펀드는 전 세계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신흥 기업들로만 구성돼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으로 구성된 ‘MSCI KLD 400 지수’의 지난 30여 년간의 평균 수익률(10.7%, 지난해 기준)이 우량 기업으로 구성된 ‘S&P 500 지수’의 수익률(10.2%)보다 더 높았다. 최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 세계에서 가장 분명해진 것은 기업 중 고객과 직원,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들이 미래에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ESG 펀드 규모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미국 CNBC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ESG 펀드 규모는 올 하반기 들어 사상 처음 1조달러(약 1142조원)를 돌파했다. CNBC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유럽에서 ESG를 투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는 펀드 수는 2703개로 지난 3월 말(2584개) 대비 5%가량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최근 수년간 ESG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투자 상품을 적극 개발·출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일본·네덜란드의 공공연금 등을 비롯한 주요 연기금들은 기금 운용의 투명성 확보 및 장기 수익성 제고를 목적으로 책임투자 도입을 확대하는 중이다.

국민연금도 전체 운용자산(약 752조원)의 4% 수준인 ESG 투자를 내년까지 59%(약 450조원)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ESG 펀드 쏟아지는 중...차별화는 ‘글쎄’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와중에 정책적 훈풍까지 불고 있다. 지지율 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앞서고 있는 조 바이든 미 대선 후보가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데다 문재인 정부도 친환경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등의 친환경 관련 종목들의 주가도 들썩이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ESG 펀드들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ESG펀드의 일종인 SRI(사회책임투자) 운용 펀드는 지난해 말 31개에서 지난 16일 기준 42개로 늘었다. 설정액은 3176억원에서 4751억원으로 49.6%나 증가했다. 올해 SRI 펀드 평균 수익률도 12.03%로 국내·해외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 평균 수익률(각각 3.6%, 11.16%))보다 높다. 지난 6개월 수익률은 30%를 넘는다.

올해 ‘슈로더글로벌지속가능성장주증권투자신탁(주식-재간접형)’, ‘미래에셋지속가능ESG채권증권투자신탁(채권)’, ‘NH-Amundi 100년 기업 그린 코리아 펀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아름다운SRI그린뉴딜’ 등 ESG 펀드들이 끊임없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국내 ESG 펀드들이 다른 주식형 펀드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 인기 대형주 위주로 자산을 담고 있어서 IT(정보기술), 4차산업혁명,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등 다른 인기 테마 펀드들과 자산 구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덩치가 큰 SRI 펀드인 ‘마이다스책임투자증권투자신탁(주식)’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박혜진 연구위원은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액티브 ESG 펀드는 대형 혼합·성장주 위주로 운용되고 있으며 포트폴리오의 평균적인 ESG 수준은 일반 국내 주식형 액티브펀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며 “현재 제공되는 투자설명서 상의 정보만으로 펀드의 ESG 수준을 판단하기 쉽지 않아서 ‘그린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