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론, 우선주, 그린본드, 에스크로, 선순위 담보채권,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금융회사의 사모펀드 설명회에서나 들을 법한 전문 용어들만 연이어 흘러 나왔다. 지난 14일 찾아간 서울 강남의 한 미국 투자 이민 설명회장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반이민정책을 썼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이민확대, 무리한 이민단속 중단 등을 내세우고 있다.

새 대통령인 바이든 시대에 투자이민 트렌드는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서 찾아갔는데, 90만달러(약 10억원) 투자처의 복잡한 상품 구조와 원금손실 위험 리스크를 따져보느라 2시간 내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미국행 투자 이민(EB5)은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50만달러를 투자한 뒤 일정 기준 이상 일자리를 만들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은 미국 내 고용촉진지역(TEA)에 최소 90만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아무리 미국 영주권이 ‘제2의 인생 보험’이라고 해도 만기 5년 이상 소요되는 해외 투자처에 90만달러라는 큰 돈을 한 방에 투입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강연회장에서는 ‘원금 회수’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됐다.

이주알선업체 대표 A씨는 “5년 만기 후에 원금(90만달러)을 무사히 상환받을 수 있도록, 투자처의 신용등급은 물론, 주주 구성과 선순위·후순위 대출, 우선주 지분까지 따져보고 향후 상환 계획까지 꼼꼼히 살펴본다”면서 “미국 내 수백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원금 회수가 가능할 곳만 골라 소개해 드린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 이민은 간접투자의 경우 리저널 센터(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 운영 목적에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라는 곳을 통해 진행된다. 리저널 센터는 이민 신청 투자자에게 90만달러(최소 투자액)를 받으면, 공장이나 임대주택 건설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개발사에 송금한다. 돈을 보내고 나면 1단계 영주권(I526)을 받을 수 있다.

5년 이상 지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개발사는 원금에 일정 이율(연 0.5~1.5% 정도)을 붙여 상환하고 이를 리저널 센터가 중간에서 받아 투자자에게 배분해 준다. 이 과정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어야만 정식 영주권(I829)이 나온다. 관리 감독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한다고 한다.

미국 버몬트 주의 법무부 관계자가 투자이민(EB5) 프로젝트를 악용한 제이 피크(Jay Peak) 펀드 투자 사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일련의 투자이민 진행 과정이 사모펀드 투자와 매우 유사하다고 느꼈는데, 강연자도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라임이나 옵티머스 같은 사모펀드 부실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프로젝트 선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사모펀드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금융당국을 통해 항의라도 할 수 있다. 만약 미국에서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데, 이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행정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주공사마다 미국 변호사들이 여럿 포진해 있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US뉴스는 최근 은퇴해서 가장 살기 좋은 미국 도시 1위로 플로리다주의 사라소타(Sarasota)를 뽑았다. 사진은 사라소타의 비치.

미국 내 투자금 흐름을 한국에 있는 일반인이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기는 어렵다. 국내 유수의 운용사가 체크했는데도 미국 P2P(개인간 대출)에 투자했다가 원금의 절반도 못 건진 쪽박 펀드도 이미 나와 있다. 아니나 다를까, 투자이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에선 이민사기 관련 집단 소송이 여러 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가족을 위해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이민이지만, 파라다이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따져봐야 할 점들이 많다.

미국의 고용촉진지구(TEA)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 많은데 이때 고용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 영주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때문에 투자 이민을 원한다면 이주알선업체에만 의존하지 말고 반드시 본인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

또 10억이나 투자하면서 현지 실사는 꼭 해야 할 것 같은데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엔 쉽지 않으니 이 또한 딜레마다. 한국 내에 부동산이나 주식 자산이 많은 경우엔 이민 시점에 국외전출세 부담이 생길 수 있으니 세금도 잘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