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8000억원을 투입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 7위(운송량 기준)의 초대형 국적항공사 출범을 눈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과 경영권 분쟁 중인 3자연합 측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고, 독과점 문제와 노조 반발 등이 남아 있어 통합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6일 정부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공식화했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과 대한항공도 이날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 인수 안건을 의결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번 통합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내 항공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인수 방안은 산은이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면, 한진칼이 이 자금으로 자회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이다. 산은은 8000억원 중 5000억원으로 한진칼이 새로 발행할 주식을 인수해, 한진칼 지분 10.7%를 보유하게 된다. 나머지 3000억원은 향후 한진칼이 보유하게 될 대한항공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교환사채에 투자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인수 자금(총 1조8000억원) 마련을 위해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이 중 7300억원은 한진칼이 참여하고, 나머지 1조7700억원은 기관투자자 등 민간에서 끌어오겠다는 계획이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양대 항공사 체제 유지 시 내년 말까지 두 회사에 4조8000억 규모 정책 자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아시아나에 대한 추가 감자, 매각 추진 시 채무 탕감 등으로 채권단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돼 연내에 조속히 통합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은은 지난 9월 아시아나 매각이 한 차례 무산된 후 국내 5대 그룹과 항공사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에 인수 의향을 물었다. 그러나 모두 거절한 반면, 한진그룹이 인수하겠다고 나서 아시아나는 두 달 만에 새 주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한진그룹 측은 내년 하반기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이후 1~2년 내 아시아나를 흡수통합한다는 방침이다. 이로써 1988년 창립한 아시아나는 30여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1년내 갚아야 할 두 회사 빚만 10조… 아슬아슬 동반비행

1·2위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국내 항공 산업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저비용 항공사(LCC)를 포함해 11개 항공사(항공면허 기준)가 난립한 상태지만, 이번 계약으로 LCC 3곳(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포함 5개 항공사가 한진그룹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1곳의 초대형 항공 그룹과 복수의 LCC로 항공업계가 재편되는 것이다.

산업은행 자금 지원받은 대한항공, 어떻게 아시아나항공 인수하나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한 항공업체 임원은 “지금과 같은 항공사 난립이 지속한다면 항공업계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는데 이제라도 재편돼 다행”이라면서도 “대한항공 역시 코로나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상황이라 이번 합병이 ‘아름다운 동행’이 될지 ‘잘못된 만남’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 7위권 항공사의 불안한 시작

대한항공은 지난달 기준 항공기 164대, 아시아나항공은 79대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항공기 243대, 자산 40조원을 보유한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항공사가 등장하게 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19년 여객과 화물 운송 실적 기준 대한항공은 19위, 아시아나는 29위로 두 항공사의 운송량을 단순 합산하면 세계 7위권이다. 앞으로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도 단계적으로 통합해 현재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을 넘어서는 대형 LCC로 재탄생하게 된다.

화려한 외형과 달리 두 항공사의 속사정은 좋지 않다. 코로나로 유동성 위기에 놓인 두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국책은행이 쏟아부은 돈은 5조원에 육박한다. 아시아나항공 3조5400억원, 대한항공 1조2000억원 등이다. 그럼에도 돈이 부족한 대한항공은 조만간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신청할 계획이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두 항공사가 자력으로 생존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 인수를 위해 앞으로 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민간 회사에 사실상의 공적 자금을 이렇게 투입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번에 양대 항공사의 통합이 무산되면 두 회사에 막대한 정책 자금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고 산은은 설명했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지금과 같은 양대 항공사 체제를 유지할 경우 내년 말까지 양사에 4조8000억원 규모의 정책 자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조원 단기 부채와 코로나로 미래 불투명

업계에선 이번 인수 계약으로 새 주인을 찾은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급한 불은 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부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비율은 지난 6월 기준 2291%에 달한다. 자본 잠식률은 56% 수준이다.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부채만 4조7979억원인데, 대한항공의 단기 부채와 합하면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칫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빚더미에 눌려 동반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두 항공사 직원 2만7000여명의 인건비 부담도 크다. 두 항공사는 지난 4월부터 순환 유급·무급 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새 수익원(源)으로 떠오른 화물 사업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올 3분기 대한항공은 화물 운송 덕분에 영업이익 76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 2분기(1485억원)보다 흑자가 크게 줄었고,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이익도 지난 2분기 1151억원에서 3분기 58억원으로 급감했다. 코로나 종식 전까지는 여객 매출의 90%를 담당하는 국제선 여객 회복도 기대할 수 없다.

글로벌 항공업계에서는 코로나 위기를 넘지 못하고 파산하는 항공사가 줄을 잇고 있다. 다국적 항공컨설팅 업체 시리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영업을 중단한 항공사가 43개에 달한다. 버진 애틀랜틱(영국), 아에로멕시코,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항공 등이 올 들어 파산했다. 미국 델타항공은 3분기 순손실 54억달러(약 5조9000억원)를, 일본 전일본공수(ANA)는 영업 손실 2800억엔(약 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델타항공은 지난 4월 미국 정부로부터 54억달러를 지원받았지만 자금이 바닥나 조종사 2000명의 감원을 계획하고 있고, ANA는 항공기 30대를 매각하고 3년 안에 35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산은이 자체적으로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한항공에 과제를 맡기는 모습”이라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성공적 합병과 이를 통한 국내 항공 산업 재편을 위해서는 여러 난관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