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에 가야 돈을 벌죠. 헬조선 투자를 누가 하나요?”

1년 전만 해도 이런 자기비하적인 발언들이 난무했던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가 변하고 있다. 박스피는 지난 2011년 이후 코스피지수가 항상 1800~2600선 사이 박스권에서 오르락 내리락 해서 붙게 된 별명이다.

‘박스피’로 불렸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4일 사상 처음으로 2700선을 돌파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1877조원으로 뛰었다.

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의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13%로,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천조국의 다우지수(6.7%)나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일본 닛케이지수(10%), 전세계 시가총액 2위라는 중국 상하이지수(4%) 등 주요국 증시를 크게 압도하는 성과다. 코스피지수는 연초 이후 수익률도 24.3%로 상당히 좋았다. 아르헨티나(31.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7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의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13%로,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증시로 흘러 들어온 거대한 유동성이 또다른 유동성을 자극하면서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에서 59조5800억원 어치 주식을 매수했다. 1~11월 개인 투자자 거래 비중은 65.3%(한국거래소 자료)에 달한다. 외국인 매수세도 커지는 모습이다. 외국인은 지난 달부터 지금까지 7조4700억원 어치 한국 증시를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다.

달러 약세 현상이 강해지면서 한국에 투자하는 이른바 ‘K펀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이 몰릴 정도로 문전성시다.

7일 금융정보업체 팩트셋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열흘간 ‘아이셰어즈 MSCI 코리아’ 상장지수펀드(ETF)에 총 5억4792억달러(약 6000억원)가 순유입됐다. 이 상품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운용하는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네이버, 셀트리온 등 한국의 주요 대형주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편득현 NH투자증권 부부장은 “2021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5~6%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장을 주도할 곳은 신흥국이고, 그 중에서도 인도, 중국의 성장률이 가장 높을 전망”이라며 “하지만 한국은 세계 경제가 V자형 반등을 할 때 수혜가 있을 산업들을 앞 두 나라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철강, 화학 등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초 산업과 자동차, IT, 선박 등 내구재, 2차전지와 바이오 등 첨단 신산업까지 포트폴리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과거에 시가총액 1위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상승하면 수급의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면서 나머지 주식들은 하락하곤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유동성이 풍부해 그럴 일은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오히려 삼성전자 초강세로 지수가 하방 경직성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2696.22)보다 35.23포인트(1.31%) 오른 2731.45에 마감한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증시 광풍 속에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우려스럽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출 한도가 바닥난 증권사들은 신용융자 서비스를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개인투자자의 신용융자 잔고는 18조382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치다. 신용융자잔고는 외국인 매수세가 거세지면서 코스피가 상승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지난 달부터 한 달 만에 1조8000억원이나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난 3일(현지시간) 심층분석 ‘빅리드’ 섹션에서 전 세계에서 거의 모든 자산이 다 오르고 있다(everything rally)면서 “백신이 시장의 과열 파도를 일으킨다”고 평가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부양책에 흠뻑 빠져 백신 효과만 보고 실물경제의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는 경고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고 F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