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가 주류로 진입해 일상적인 결제 수단이 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런 추세를 앞당겼다.”

세계 최대 간편 결제 기업 페이팔의 댄 슐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온라인으로 열린 글로벌 IT 콘퍼런스 ‘웹서밋 2020’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이팔은 내년부터 가상 화폐를 활용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페이팔 이용자들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라이트코인 등 4개 가상 화폐로 전 세계 2600만 가맹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페이팔 이용자가 물건을 구입하고 가상 화폐로 결제하면, 페이팔이 실시간 환율을 적용해 가상 화폐를 달러로 바꾼 다음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①내년부터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페이팔의 비트코인 거래 화면. ②비자가 암호 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손잡고 출시한 직불카드. ③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버거킹 매장. /페이팔·코인베이스·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그동안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는 화폐로서의 교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투기성 자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슐먼 CEO는 지난달 CNBC 인터뷰에서 “가상 화폐가 일상적인 상거래에서 점점 더 많이 활용되면서 ‘자산'에서 ‘화폐'로 그 가치가 이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이용자 3억5000만명을 거느린 페이팔이 가상 화폐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자 시장은 환호했다. 가상 화폐 헤지펀드 블록타워캐피털의 스티브 리 투자 부문 디렉터는 Mint에 “비트코인이 지난 3년간은 ‘디지털 금(金)’이라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면, 앞으로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페이팔을 시작으로 결제나 금융 서비스를 접목한 화폐로서의 이용 시도가 계속해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자·페이스북 등도 도전장

페이팔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IT·금융기업들도 잇따라 디지털 화폐 결제 서비스에 진입하고 있다. 지난 2일 글로벌 신용카드 기업 비자(VISA)는 이르면 내년부터 스테이블코인 ‘USDC’로 결제할 수 있는 법인용 신용카드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 등 법정화폐와 연동돼 비트코인 같은 다른 가상 화폐보다 가격 변동성이 낮은, 가상 화폐의 한 종류다. 블록체인 업체 서클이 발행하는 USDC는 미국 달러와 1대1로 연동된다. 쿠이 셰필드 비자 가상 화폐 총괄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카드는 기업들이 USDC를 결제할 수 있는 최초의 법인카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자는 지난해 가상 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손잡고 가상 화폐 기반 직불카드인 ‘코인베이스 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 코인베이스 계좌에 남은 가상 화폐 잔액만큼 카드를 통해 온·오프라인 비자 가맹점에서 결제할 수 있다. 앨프리드 켈리 비자 CEO는 지난달 CNBC 인터뷰에서 “팬데믹으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면서 가상 화폐가 글로벌 거래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도 가상 화폐 ‘디엠(Diem)’을 이르면 내년 1월 출시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6월 달러·유로·파운드·엔화 등으로 구성된 통화 바스켓(꾸러미)에 연동되는 글로벌 통합 가상 화폐 ‘리브라(Libra)’ 출시 계획을 공식화했다. 30억명에 달하는 페이스북·와츠앱 이용자 및 페이팔·이베이·비자·마스터카드 등 쟁쟁한 협력사가 송금 및 결제에 리브라를 사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법정화폐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가 규제에 나서면서 주요 협력사들이 리브라 연합에서 탈퇴했다. 결국 페이스북은 통화 바스켓 연동 계획을 포기하고, 이름을 디엠으로 바꾼 뒤 달러에 1대1로 연동되는 가상 화폐를 발행하기로 했다.

◇각국 중앙은행 CBDC 연구 활발

디지털 가상화폐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화폐지만, 비트코인처럼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기 때문에 법정화폐와 같은 신뢰도를 갖고, 액면가도 고정돼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80%의 중앙은행이 CBDC 연구에 착수했다.

CBDC 개발에 가장 앞서 있는 것은 중국이다. 지난 10월 중국 선전시에선 시민 5만명에게 디지털 위안화 200위안씩을 나눠주는 대규모 CBDC 실험을 했다. 수퍼마켓 등에서 스마트폰 전용 앱을 활용해 QR코드로 결제하는 방식인데, 일주일간 결제 6만3000건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CBDC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제결제수단으로서의 위안화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스웨덴·캐나다·영국·일본·유럽연합·스위스 등 6개 중앙은행은 CBDC 연구그룹을 구성했다. 한국은행도 올 4월 CBDC 파일럿 테스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EY한영, 삼성SDS, 네이버라인 등과 함께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 중이다.

CBDC가 상용화되면, 비트코인 등 민간 디지털 화폐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블록체인 투자사 캐슬아일랜드벤처스의 닉 카터 파트너는 Mint에 “CBDC는 ‘탈중앙화’를 내건 진정한 의미의 가상 화폐와는 거리가 멀다”며 “정부가 CBDC 결제 시스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그 대안으로 비트코인의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야후파이낸스 인터뷰에서 “CBDC가 발행되면 가상 화폐부터 시작해 민간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돈이 보이는 경제 뉴스 MINT를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MINT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7676